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씨가 2일(토) 오전 9시30분 와싱톤한인교회에서 김영봉 목사와의 대담 시간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한층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감동을 받은 독자라면 누구나 도대체 작가 신경숙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봤으리라. 베스트셀러의 명성이 바래지 않게 토요일 아침이지만 많은 한인들이 대담 자리를 메웠다.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됐나, 주변의 반응은, 본인의 어머니와의 관계 등의 개인적인 질문부터 작품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으며, 개인 신앙과 종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심스런 질문이 이어졌다. 대담은 김영봉 목사와의 1대1 대담과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총 2시간 동안 진행됐다.
16살 10대의 나이에 도시로 유학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탄 기차간에서 엄마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신 작가는 “6월 11일 밤 11시 57분 기차였다. 아직도 하나의 사진처럼 그 날의 풍경이 머릿 속에 찍혀있다. 칠흙같은 밤, 기차 안의 풍경이 자세히 보이는 기차안에서 어머니에게 헌사 처럼 바치는 소설을 써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고향집을 떠나오는 10대 소녀의 가슴에 지펴진 작은 불씨가 30년이라는 세월을 타고 다듬어져 태어난 소설이 바로 오늘 날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세르비아, 이스라엘어로 번역돼 주목받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다.
실제로 <엄마를 부탁해>는 2007년과 2008년 한국 창작과 비평에 4번의 연재를 했던 소설로 쓴 기간은 총 1년 남짓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쓰여졌던 소설이라고.
그는 “소설이 출판되고 여러가지 반응을 접했다. 첫번째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무서워서 못읽었다, 두번째 엄마와의 특별한 스토리가 없어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세번째 공감이 많이 가고 내 이야기 같았다 였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다 같지는 않다”라며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반응들이 오히려 좋았다. 소설은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안에서 각자 다른 개인적 생각이 이루어지고 마침점은 독자가 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 작가는 대담을 끝맺으면서 “소설 속 박소녀와 같은 희생적인 엄마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가족에서뿐 아니라 개인이 사회에, 사회는 개인에, 선생님은 학생에게, 학생은 선생님에게 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친밀감이라는 측면에서 소설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신앙과 문학’의 연결고리를 찾는 다소 예민한 주제에서도 일방적인 희생과 사랑의 상징인 엄마라는 주요 인물이 그리스도 예수에 투영되면서 자연스러운 대담이 이어질 수 있었다. 신 작가는 “소설이 질문이라면, 성경과 신앙은 해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소설은 끊임없는 질문과 혼란이지만, 신앙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봉 목사는 “부성지수가 모성지수보다 강한 경직되고 계층화된 사회에서, 모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며 “바울의 편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로’라는 단어와 ‘해산하는 수고’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도 모성적 면모를 회복해 보다 세심하게 성도들의 상처를 돌아보는 면이 부성적인 교회 비전과 목적지향적 목회와 함께 균형있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래는 김영봉 목사와 신경숙 작가의 대담을 간략히 간추린 것이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됐나?
-> 2007년 2008년 한국 창작과 비평에 4번 연재를 하면서다. 쓴 기간은 총 1년으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쓰여지던 소설이었다. 태어난 곳이 정읍인데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나이 16세의 일이다. 이 세상의 누구나 태어난 곳에서 떠나는 때를 맞게 된다. 제 인생의 너무나 중요한 때라서 아직 하나의 사진처럼 그 날의 풍경이 찍혀있다. 날짜는 6월 11일이었고, 밤 11시 57분 기차였다. 칠흙같은 밤 기차 안의 풍경이 자세히 보이는 데 어머니가 옆에서 꾸벅꾸벅 조시다가 다시 몸을 세우시고, 또 다시 몸을 추스리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언젠가 작가가 되면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책을 써야 겠다고 하는 다짐을 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딸의 모습에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 현실에서 나 자신이 경험했던 것은 5 손가락 중에 하나인데, 소설은 딸, 아들, 아버지 등 각자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그려진다는 면에서 조금 다른 것 같다. 실제로 저는 집안에서 넷째이지만, 소설에서 4째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는다.(웃음)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 수록 제목이 참 의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늘 부탁만 하던 엄마인데 엄마가 부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니 말이다. 이 소설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에서까지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만큼의 영향력을 예상했었나?
-> 소설을 읽고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다. 첫째는 무서워서 못 읽었다, 왜냐하면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두번째는 엄마와 특별한 스토리가 없어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세번째는 너무 공감이 간다, 내 이야기 같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다 같지는 않다. 나는 그런 반응들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한번은 낭독회에서 이미 떠나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내 손을 꼭 붙든 분이 계셨다. 제 어머니 뻘 되시는 분이 엄마와 사이가 정말 안 좋았다고, 이 책을 조금 먼저 알았다면 엄마와 화해하려고 했을 텐데 라며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은 16살 때 부터 써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엄마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너무 강하고, 어떤 일 앞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고, 좀 나이가 들기 전에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도 있다. 엄마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그동안 못 썼던 이유가 자꾸 나는 강해지고 사회에서도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에, 나를 있게 한 엄마는 시간이 지날 수록 너무 약하고,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는 공허한 엄마가 되어가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엄마의 역할을 언젠가는 바꿔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써 내려 가면서 나중에는 이것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 까지 들 정도였다. 바람이 불면 회오리가 치고 알 수 없는 곳에서 저절로 소설이 써내려가지는 경험을 했었다.
◇설교도 해보면 굉장히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느낀다.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설교문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고 신앙인들은 말하는데,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글이 진행됐다고 했는 데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나?
-> 형식은 구상을 해 뒀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각자 무대 위로 올라와서 인칭을 달리하고 말하게 해야 겠다라고. 그래서 첫 문장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첫 문장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다'가 어느날 큰 노크 소리처럼 나를 찾아왔다. 왜 그동안 못썼을까? 라고 질문하면서 책의 내용들이 폭풍처럼 줄을 서면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본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엄마가 되어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엄마도 엄마의 뱃속에서 움크리고 있다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 엄마가 1인칭이 되어 '나'라고 표현하는 장면에서, 물론 환상이지만, "엄마는 알았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피에타 상 앞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계기로 그 장면을 작품 안에 넣게 되었나? 인생과 종교, 문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 궁금하다
->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을 때 로마 바티칸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어느 순간 뚜벅뚜벅 걸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피에타 상 앞으로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방탄 유리 속에 있는 피에타 상을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보게 하는 거다. 너무나 강한 느낌이 안으로 들어왔다. 피에타 상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었다.
문학이라는 게 종교와 다른 점은 질문인 것 같다. 해답이 없고 각자 찾아야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종교는 진실이라는 해답이 있는 것이다. 소설은 훨씬 더 혼란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는데, 성경을 읽으면 왠지 맑아지고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기본 가락은 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문학은 질문이고 종교는 해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저도 신학교를 다닐 때 설교는 답하는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설교를 하면서 오히려 설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도 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면에서 통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2년 전 엄마를 부탁해를 소재로 한 설교를 통해 많은 분들이 치유를 경험하셨다. 이번에 당시의 설교를 엮은 설교집 '엄마가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 저도 읽어보고, 몇번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었다. 행간 사이에서 숨겨놨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었다. 오히려 숨겨놓은 것보다 곱하기 10은 더 들어있는 느낌이다.
♣김 목사와 신 작가의 인연은 2008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신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소재로 김 목사가 5번의 연속설교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설교 시디와 설교문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 때의 설교를 엮어 출간한 것이 '엄마가 희망입니다'라는 김영봉 목사의 설교집이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감동을 받은 독자라면 누구나 도대체 작가 신경숙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봤으리라. 베스트셀러의 명성이 바래지 않게 토요일 아침이지만 많은 한인들이 대담 자리를 메웠다.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됐나, 주변의 반응은, 본인의 어머니와의 관계 등의 개인적인 질문부터 작품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으며, 개인 신앙과 종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심스런 질문이 이어졌다. 대담은 김영봉 목사와의 1대1 대담과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총 2시간 동안 진행됐다.
16살 10대의 나이에 도시로 유학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탄 기차간에서 엄마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신 작가는 “6월 11일 밤 11시 57분 기차였다. 아직도 하나의 사진처럼 그 날의 풍경이 머릿 속에 찍혀있다. 칠흙같은 밤, 기차 안의 풍경이 자세히 보이는 기차안에서 어머니에게 헌사 처럼 바치는 소설을 써야 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고향집을 떠나오는 10대 소녀의 가슴에 지펴진 작은 불씨가 30년이라는 세월을 타고 다듬어져 태어난 소설이 바로 오늘 날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이탈리아, 세르비아, 이스라엘어로 번역돼 주목받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다.
실제로 <엄마를 부탁해>는 2007년과 2008년 한국 창작과 비평에 4번의 연재를 했던 소설로 쓴 기간은 총 1년 남짓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쓰여졌던 소설이라고.
그는 “소설이 출판되고 여러가지 반응을 접했다. 첫번째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무서워서 못읽었다, 두번째 엄마와의 특별한 스토리가 없어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세번째 공감이 많이 가고 내 이야기 같았다 였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다 같지는 않다”라며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반응들이 오히려 좋았다. 소설은 열 사람이 읽으면 열 사람 안에서 각자 다른 개인적 생각이 이루어지고 마침점은 독자가 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 작가는 대담을 끝맺으면서 “소설 속 박소녀와 같은 희생적인 엄마의 역할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가족에서뿐 아니라 개인이 사회에, 사회는 개인에, 선생님은 학생에게, 학생은 선생님에게 서로에게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친밀감이라는 측면에서 소설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신앙과 문학’의 연결고리를 찾는 다소 예민한 주제에서도 일방적인 희생과 사랑의 상징인 엄마라는 주요 인물이 그리스도 예수에 투영되면서 자연스러운 대담이 이어질 수 있었다. 신 작가는 “소설이 질문이라면, 성경과 신앙은 해답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소설은 끊임없는 질문과 혼란이지만, 신앙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봉 목사는 “부성지수가 모성지수보다 강한 경직되고 계층화된 사회에서, 모성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며 “바울의 편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서로’라는 단어와 ‘해산하는 수고’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도 모성적 면모를 회복해 보다 세심하게 성도들의 상처를 돌아보는 면이 부성적인 교회 비전과 목적지향적 목회와 함께 균형있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래는 김영봉 목사와 신경숙 작가의 대담을 간략히 간추린 것이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됐나?
-> 2007년 2008년 한국 창작과 비평에 4번 연재를 하면서다. 쓴 기간은 총 1년으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쓰여지던 소설이었다. 태어난 곳이 정읍인데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나이 16세의 일이다. 이 세상의 누구나 태어난 곳에서 떠나는 때를 맞게 된다. 제 인생의 너무나 중요한 때라서 아직 하나의 사진처럼 그 날의 풍경이 찍혀있다. 날짜는 6월 11일이었고, 밤 11시 57분 기차였다. 칠흙같은 밤 기차 안의 풍경이 자세히 보이는 데 어머니가 옆에서 꾸벅꾸벅 조시다가 다시 몸을 세우시고, 또 다시 몸을 추스리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언젠가 작가가 되면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책을 써야 겠다고 하는 다짐을 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 딸의 모습에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 현실에서 나 자신이 경험했던 것은 5 손가락 중에 하나인데, 소설은 딸, 아들, 아버지 등 각자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그려진다는 면에서 조금 다른 것 같다. 실제로 저는 집안에서 넷째이지만, 소설에서 4째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는다.(웃음)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 수록 제목이 참 의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늘 부탁만 하던 엄마인데 엄마가 부탁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니 말이다. 이 소설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에서까지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만큼의 영향력을 예상했었나?
-> 소설을 읽고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다. 첫째는 무서워서 못 읽었다, 왜냐하면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두번째는 엄마와 특별한 스토리가 없어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세번째는 너무 공감이 간다, 내 이야기 같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다 같지는 않다. 나는 그런 반응들이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한번은 낭독회에서 이미 떠나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며 내 손을 꼭 붙든 분이 계셨다. 제 어머니 뻘 되시는 분이 엄마와 사이가 정말 안 좋았다고, 이 책을 조금 먼저 알았다면 엄마와 화해하려고 했을 텐데 라며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은 16살 때 부터 써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엄마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너무 강하고, 어떤 일 앞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고, 좀 나이가 들기 전에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도 있다. 엄마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그동안 못 썼던 이유가 자꾸 나는 강해지고 사회에서도 튼튼하게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에, 나를 있게 한 엄마는 시간이 지날 수록 너무 약하고,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는 공허한 엄마가 되어가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엄마의 역할을 언젠가는 바꿔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써 내려 가면서 나중에는 이것이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 까지 들 정도였다. 바람이 불면 회오리가 치고 알 수 없는 곳에서 저절로 소설이 써내려가지는 경험을 했었다.
◇설교도 해보면 굉장히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느낀다.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설교문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고 신앙인들은 말하는데,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글이 진행됐다고 했는 데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나?
-> 형식은 구상을 해 뒀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각자 무대 위로 올라와서 인칭을 달리하고 말하게 해야 겠다라고. 그래서 첫 문장이 나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첫 문장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다'가 어느날 큰 노크 소리처럼 나를 찾아왔다. 왜 그동안 못썼을까? 라고 질문하면서 책의 내용들이 폭풍처럼 줄을 서면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본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는 엄마가 되어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엄마도 엄마의 뱃속에서 움크리고 있다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 엄마가 1인칭이 되어 '나'라고 표현하는 장면에서, 물론 환상이지만, "엄마는 알았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피에타 상 앞에서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계기로 그 장면을 작품 안에 넣게 되었나? 인생과 종교, 문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는지 궁금하다
->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을 때 로마 바티칸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어느 순간 뚜벅뚜벅 걸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피에타 상 앞으로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방탄 유리 속에 있는 피에타 상을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보게 하는 거다. 너무나 강한 느낌이 안으로 들어왔다. 피에타 상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었다.
문학이라는 게 종교와 다른 점은 질문인 것 같다. 해답이 없고 각자 찾아야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종교는 진실이라는 해답이 있는 것이다. 소설은 훨씬 더 혼란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는데, 성경을 읽으면 왠지 맑아지고 그런 것 아닌가. 그러나 기본 가락은 같은 데서 출발하지만 문학은 질문이고 종교는 해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저도 신학교를 다닐 때 설교는 답하는 것이라 배웠다. 그러나 설교를 하면서 오히려 설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도 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면에서 통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2년 전 엄마를 부탁해를 소재로 한 설교를 통해 많은 분들이 치유를 경험하셨다. 이번에 당시의 설교를 엮은 설교집 '엄마가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 저도 읽어보고, 몇번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었다. 행간 사이에서 숨겨놨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었다. 오히려 숨겨놓은 것보다 곱하기 10은 더 들어있는 느낌이다.
♣김 목사와 신 작가의 인연은 2008년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신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소재로 김 목사가 5번의 연속설교를 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설교 시디와 설교문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그 때의 설교를 엮어 출간한 것이 '엄마가 희망입니다'라는 김영봉 목사의 설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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