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를 보면 봄이 오기는 온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날씨가 따뜻해져서가 아니라 하도 날씨의 변화가 심해서 입니다. 한동안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이러다가는 그냥 여름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기온이 오르더니만, 금세 다시 하늘이 찌뿌둥하며 비가 내리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이 아직도 겨울이 다 지나간 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가는 또 언제 그랬느냐 듯이 밝고 영롱한 햇살이 비치는 요즘 날씨는 정말 예측하기 어렵게 그야말로 변화무쌍합니다. 이렇게 봄은 여느 다른 계절과 달리 날씨의 변화가 심하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제 봄이 오기는 왔다고 하는 말입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일 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었는데 소풍가기 전날에는 그 다음날 비가 오지 않고 맑고 청명한 날씨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을 소풍 때는 대체적으로 날씨가 좋은데 비해 봄 소풍 때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 많아서 소풍을 가지 못하거나 가더라도 그리 흥겹지 못했던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봄 소풍을 망친(?) 것이 가을보다 봄이 날씨의 변화가 훨씬 더 심한 계절이기 때문인 것을 안 것은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봄철의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은 사실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배려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을 지낸 나무나 풀과 같은 생물들이 새로운 생명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이 생물들에 필요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 그리고 공기들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생명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겨울을 지낸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 생명체가 나올 수 있게 하거나, 가지에 수분을 공급해 주므로 새로운 움이 틀수 있게 하기 위해 그렇게 봄에는 비가 많이 오는 것이고, 그런가하면 그렇게 빗물로 껍질을 적셔낸 후에는 가지에서 새 움이 돋아날 수 있도록 움을 덮고 있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바람은 그렇게 세차게 부는 것이며, 그렇게 돋아난 새 순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도록 봄날의 햇살은 또한 그렇게 따사로이 비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람이 불다가 금세 햇빛이 비치고, 다시 비가 오는 등 날씨의 변화가 심한 것은 비와 바람, 그리고 햇빛이 모두 다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라도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생명을 잃게 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그 분량을 하나님께서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가 필요해도 너무 많이 오거나 오래 오면 오히려 썩어 버리게 되고, 바람이 불어야 하지만 너무 심하게 불면 이제 갓 돋아난 움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가지 자체가 꺾어져 버리고, 햇빛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햇빛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말라 죽게 되기 때문에, 얼마큼의 비가 온 후에는 바람이 불고, 그러다가 다시 햇빛이 비치도록 날씨를 바꾸시는 바로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 너무 많아서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적어서 모자라지도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산된 연출입니다.
이와 같은 생명체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생각하다보면 하나님의 구체적인 생명에 대한 섭리는 비단 봄날에 돋아나는 나무나 풀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어느 피조물보다 더 구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계산하시고 그것에 따라 지나치지도 않고 또 모자라지도 않도록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봄날에는 비와 바람, 그리고 햇빛들이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것들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작 비가 오면 오는 비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햇살을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햇빛이 비치면 그 햇빛의 따사로움을 감사하기 보다는 다시 바람이 불지 않아 답답하다고 불평합니다. 비가 오면 햇빛이 그립고, 햇빛이 비치면 바람이 아쉽고, 바람이 부는 날은 청명한 날이 부럽고 청명한 날은 지루하다고 합니다.
우리네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진 없을 때는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가진 것을 부러워하다가도 막상 그것을 가지게 되면 가진 것이 오히려 부담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저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다가도 그 일이 일어나면 그 일어난 일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 때는 뭐라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하게 되면 그 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불평을 합니다.
봄날에 햇살이 따갑도록 비추다가 금세 비가 오고, 다시 바람이 부는 이유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이듯이 우리네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도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그 분의 구체적인 배려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일 년에 두 차례,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었는데 소풍가기 전날에는 그 다음날 비가 오지 않고 맑고 청명한 날씨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을 소풍 때는 대체적으로 날씨가 좋은데 비해 봄 소풍 때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 많아서 소풍을 가지 못하거나 가더라도 그리 흥겹지 못했던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봄 소풍을 망친(?) 것이 가을보다 봄이 날씨의 변화가 훨씬 더 심한 계절이기 때문인 것을 안 것은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봄철의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은 사실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배려입니다. 봄이 되면 겨울을 지낸 나무나 풀과 같은 생물들이 새로운 생명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이 생물들에 필요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 그리고 공기들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생명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겨울을 지낸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셔 생명체가 나올 수 있게 하거나, 가지에 수분을 공급해 주므로 새로운 움이 틀수 있게 하기 위해 그렇게 봄에는 비가 많이 오는 것이고, 그런가하면 그렇게 빗물로 껍질을 적셔낸 후에는 가지에서 새 움이 돋아날 수 있도록 움을 덮고 있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해 바람은 그렇게 세차게 부는 것이며, 그렇게 돋아난 새 순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도록 봄날의 햇살은 또한 그렇게 따사로이 비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람이 불다가 금세 햇빛이 비치고, 다시 비가 오는 등 날씨의 변화가 심한 것은 비와 바람, 그리고 햇빛이 모두 다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라도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생명을 잃게 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그 분량을 하나님께서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가 필요해도 너무 많이 오거나 오래 오면 오히려 썩어 버리게 되고, 바람이 불어야 하지만 너무 심하게 불면 이제 갓 돋아난 움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가지 자체가 꺾어져 버리고, 햇빛이 너무나 소중하지만 햇빛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말라 죽게 되기 때문에, 얼마큼의 비가 온 후에는 바람이 불고, 그러다가 다시 햇빛이 비치도록 날씨를 바꾸시는 바로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 너무 많아서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적어서 모자라지도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산된 연출입니다.
이와 같은 생명체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생각하다보면 하나님의 구체적인 생명에 대한 섭리는 비단 봄날에 돋아나는 나무나 풀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더구나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우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다른 어느 피조물보다 더 구체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계산하시고 그것에 따라 지나치지도 않고 또 모자라지도 않도록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봄날에는 비와 바람, 그리고 햇빛들이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것들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작 비가 오면 오는 비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햇살을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햇빛이 비치면 그 햇빛의 따사로움을 감사하기 보다는 다시 바람이 불지 않아 답답하다고 불평합니다. 비가 오면 햇빛이 그립고, 햇빛이 비치면 바람이 아쉽고, 바람이 부는 날은 청명한 날이 부럽고 청명한 날은 지루하다고 합니다.
우리네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진 없을 때는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가진 것을 부러워하다가도 막상 그것을 가지게 되면 가진 것이 오히려 부담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저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다가도 그 일이 일어나면 그 일어난 일 때문에 걱정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 때는 뭐라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하게 되면 그 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불평을 합니다.
봄날에 햇살이 따갑도록 비추다가 금세 비가 오고, 다시 바람이 부는 이유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이듯이 우리네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도 우리를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그 분의 구체적인 배려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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