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가 일치로 말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세상사가 苦海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늘 슬픔과 근심과 걱정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즐겁고 기쁜 일이 있다. 꼭 즐겁고 기쁜 일만이 사람의 행복을 재는 기준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즐겁고 기쁘게 이 세상을 건너가고 있는가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람은 자자 분한 즐거움에서 아주 크고 멋진 기쁨과 즐거움에 휩싸일 때가 있다. 생애를 돌이켜 보면서 가장 기쁘고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던가를 돌이켜 볼 때 적지 않은 순간순간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생활이 점점 더 무미건조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생활의 회복은 모든 사람들의 희구하는 것이다.

‘물위를 건너는 사람’이란 모 방송국의 휴먼 다큐의 주인공은 수년동안의 의료기구 세일즈맨 생활을 과감히 접고 카약판매상으로 직업을 전환하고 호수와 강과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취미생활인지 직업인지 구별안되는 생활을 즐긴다. 그는 여전히 생활전선에 있지만 자연가운데서 자신을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산다. 이런 아류의 회복 프로그램은 흔하디 흔한 것이 되었다.

허공에서 뛰어내리는 고공낙하에서 빌딩을 기어오르는 거미인간들과 바위산을 맨손으로 기어오르는 클라이밍, 산악자전거 등 소위 레크레이션과 스포츠를 겸한 레포츠는 전 시대의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한 것이었다. 과연 이런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회복일까? 페러글라이딩을 하면 진정 인간회복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그 답은 일정 부분은 그럴수도 있겠다 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회복은 신과의 만남이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교회에 갈 때마다 고민이 앞섰다. 교회의 한 선생님이 투시의 은사가 있어서 자기 앞에 서있는 사람이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살았는지 다 알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학생은 가능하면 그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좁은 교회 안에서 번번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만날 때마다 선생님이야 어떠하든지 자신이 한 주간 지은 죄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피하려하여도 피할 수 없는 분이 계신다. 항상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살펴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하시며 살펴보신다. 어느 신학교 교수님 댁 방문에 라틴어로 쓰여진 짧은 문구 “Me Vidit Deus”(메 비디트 데우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가 붙어있다 한다. 이런 하나님과의 회복이 없이는 인간에 있어 진정한 즐거움은 회복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시고 아시는 것은 벌주시고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궁국적으로 우리의 외로움, 억울함 배고픔을 아시고 그리고 우리가 남몰래 흘리는 눈물도 보신다. 무엇보다 죄범한 영혼의 방황을 아신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인간의 진정한 즐거움의 회복을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