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CCM의 전성기

CCM 가수들의 환경이 처음부터 어려웠던 건 아니다. ‘경배와 찬양’ 열풍이 불었던 90년대 초·중반 교회 내에서 CCM 가수들의 인기는 세상의 여느 인기가수 못지 않았다. CCM 가수들의 연합 집회엔 언제나 수천 명이 모여 들었고, 그들의 곡이 일반 가요프로그램 인기순위에 오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국교회가 폭발적 부흥을 경험하던 시절, CCM은 당당히 그 한 축을 담당했다.

CCM 전성기의 초입이던 1989년 찬앙사역자연합회(이하 찬사연)가 탄생했다. 한 해 전, 서울올림픽에서 당시 올림픽전도위원회 소속이던 박정관 목사(현 충신교회 협동목사)가 CCM 가수들을 비롯한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을 모아 공연을 기획했던 게 시발점이었다. 박 목사가 전국에 흩어진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이들의 연합체를 구상했던 것. 박 목사를 초대 회장으로 최덕신, 고형원, 정종원 등이 찬사연 모임을 주도했다.

찬사연은 CCM 가수들은 물론 예배 사역자와 크리스천 연주자, 공연 기획자 등 거의 모든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을 아울렀다. 이들은 정기 모임을 통해 교제를 나누고 서로의 신앙을 다지며 사역 정보를 공유했다. 연합 콘서트를 열기도 했고 매년 한 차례, 전국의 사역자들이 참여하는 수련회를 개최했다. 정기 모임 땐 60~70명 정도가 참여했지만 수련회 땐 200~300명이 모일 정도로, 찬사연은 그야말로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대전, 부산 등 지방 찬사연도 속속 생겨났다. 박정관 목사는 “찬사연 수련회에 가면 웬만한 CCM 가수들은 거의 다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사역자들의 화합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 등을 통한 불신자들의 회심에도 찬사연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집회도 많았다. 기타만 쳐도 ‘사탄’이라던 교회가, 차츰 음악을 선교의 중요한 도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박종호, 송정미, 소리엘 등 소위 ‘잘 나가는’ 사역자들은 한 달에 10~20회는 기본이고 많게는 30회까지 집회를 소화한 경우도 있었다. 매일 초청된 셈이다. 그렇다고 인기 CCM 가수들만 그랬던 건 아니다. 신인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게도 기회는 많았다. 선배 사역자들이 집회 등에 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얼굴을 알렸기 때문인데, 당시 최인혁 등이 후배들을 이끈 대표적 인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회 사례금’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건 아니다. CCM 가수들은 집회에서 자신을 홍보하고 더불어 음반과 콘서트 티켓 등을 팔 수 있는 기회에 만족했다. 그나마 지금은 교회마다 찬양 관련 전임 사역자를 두고 급여를 지급하지만 그 땐 파트타임 사역자도 드물었다. 수입적인 면에선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지금과 다른 게 있었다면 바로 열정과 분위기, 무엇보다 무대였다. 박정관 목사는 “비록 사례금은 적었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았다. 그런 무대에서 사역자들은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었다. 경배와 찬양이라는 하나의 무브먼트(운동)가 교회에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흐르고 2천 년대에 접어들자 하나의 운동으로 교회 안에서 뜨겁게 일던 ‘경배와 찬양’의 열기도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박 목사는 “경배와 찬양이 교회 안에 정착되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활발한 분위기는 식었지만 음악이라곤 찬송가밖에 몰랐던 교회에 또 하나의 문화로 ‘경배와 찬양’이 자리매김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박정관 목사는 “CCM 가수들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이 거둔 열매”라고 평가했다.

▲과거 CCM은 찬양과 경배의 붐을 타고 전성기를 구가했었다. 그러나 예배 사역에 자리를 내주고, 다양한 이유로 질적 저하가 일어나면서 그 화려함은 그저 ‘한 때’의 이야기가 돼 버렸다. 사진처럼 CCM을 향해 교회가 손을 내미는 날이 다시 올까. ⓒ크리스천투데이 DB

‘작아진’ 찬사연… ‘그저 그런 친목단체’ 오명까지

그러면서 뚜렷한 현상 하나가 생겼다. 찬사연 소속 사역자들이 저마다의 사역을 특색화 하며 찬사연에서 분화돼 나간 것. 이 가운데 크리스천 연주자들이 한국기독연주회연합회(CMA)를 만들었고 예배 사역자들도 그들만의 사역에 집중하며 찬사연에서 멀어져 갔다. 찬사연의 창립을 주도했던 CCM 1세대들 역시 그 주도권을 후배들에게 넘겨주면서 개인 사역에 몰두했다. 한국복음성가협회는 이미 찬사연 태동 이전부터 기성 CCM 사역자들을 끌어안고 있었다.

특별히 교회 젊은이들 사이에서 ‘예배 인도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교회 또한 젊은이들에 맞는 ‘찬양 예배’를 선호하면서 예배 사역자들은 나름의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 콘서트로 상징되는 공연 위주의 CCM 가수들에 비해 예배를 인도하고 그에 맞는 음악들을 선보이는 예배 사역자들이 ‘예배 공동체’라 할 수 있는 교회에서 ‘더 필요한 존재’가 됐다는 분석이다. 대세가 예배 사역으로 기울자, 기존 CCM 가수들의 예배 인도자 전향이 한 때 CCM계 주요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결국 찬사연은 대다수의 신인들과 경력이 길지 않는 젊은 CCM 가수들로 구성된 단체로 축소됐고, 이후 그 활동이 미미해지면서 ‘그저 그런’ 친목단체라는 오명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작아진’ 찬사연은 곧 ‘작아진’ CCM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CCM 팀인 ‘에이맨’(AMEN)의 멤버로 현재 찬사연 회장인 김성호 씨는 “CCM 가수들이 과거 사역 패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다양성이 떨어지고 획일화됐다”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교회 문화에 필요한 콘텐츠를 스스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사 부재, CCM 수준 저하로 연결

CCM 가수들의 영역이 이렇게 좁아진 데는 전문 기획사의 부재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CCM 사역이 활발하던 시절, CCM 가수들을 메니지먼트하고 작곡과 작사, 음반 발매, 홍보와 마케팅에 이르는 전 영역을 전담하던 기획사들은 시장 축소에 따른 수익 감소로 현재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다.

‘생존한’ 몇 안 되는 기획사들도 음반 사업만으론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다. 음반과 함께 음향, 팬시 등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카페 등을 운영하며 자구책을 찾는 중이다. CCM 가수들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집회 일정을 관리했던 메니지먼트에선 이미 오래 전 손을 뗐다. ‘나눠 먹을’ 파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CCM 기획사 관계자는 “CCM 가수 개인의 음반에선 더 이상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기획이라고 해봐야 여러 곡들을 모아 만든 소위 ‘컴필레이션’ 음반이 대다수”라며 “기독교 백화점과 서점들도 점점 문을 닫아 음반을 유통할 수 있는 길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예배사역연구소 소장인 최지호 목사는 “갈수록 수입이 줄어드는 CCM 가수 입장에선 굳이 기획사에 소속돼 자신의 이익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오히려 그들의 사역을 더욱 위축시킨 꼴이 됐다”며 “기획사가 담당할 영역을 CCM 가수 개인이 모두 해야 했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까지 홀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선 수준 높은 음악과 메시지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찬사연이 지난 한 해 홍대 클럽에서 열었던 플랜트 콘서트. 찬사연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CCM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위기는 ‘위험한 기회’… 교회 다시 CCM 찾을 것

CCM의 환경이 전반적 침체기에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정관 목사는 “CCM이 전성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으면서 일종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며 “과거 CCM은 젊인이들에게, 교회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로 작용했다. 그래서 폭발적인 부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CCM 가수들은 지금 이 시대, 그리고 교회가 원하는 메시지가 과연 무엇일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음악적 요소와 함께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저작권 문제는 한국 CCM의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최지호 목사도 “저작권 문제를 비롯해 CCM이 교회 문화의 하나로 더욱 굳건해 지려면 무엇보다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며 “CCM 가수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기회로 생각해 음악적 역량은 물론 신앙인으로서 사역의 마인드를 더욱 확고히 다져야 한다. 교회가 다시 CCM을 찾는 날은 반드시 온다”고 말했다.

찬사연 회장 김성호 씨는 “올해 찬사연 법인화를 준비하고 있다. 사역의 정체성과 연합체로서의 방향을 분명히 하기 위한 조치”라며 “지난 한 해 홍대 클럽에서 콘서트를 열고 미자립 교회들을 위해 공연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을 해왔다. 찬사연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자기개발에 좀 더 집중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김 씨는 또 “지금까지 후배들이 찬사연을 이끌며 다소 힘에 부친 감이 있었다. 향후 선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보다 발전된 찬사연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교회 부목사는 “90년대 찬사연 주도로 대전 침신대에서 전국의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이 모이는 포럼이 열린 적이 있다. CCM 관련 이슈들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들을 서로 토론하고 협의했다”며 “힘들수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과거처럼 사역자들이 서로 연합하고 그들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어려움은 보다 빨리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