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있어 기독교는 미제국주의 앞잡이로 귀결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타도해야 하는 적대계급이다. 그러므로 북한주민들은 선교사를 괴물과 같은 존재로 생각해 그 말만 들어도 두려움으로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렇듯 철저하게 타도할 대상인 복음을 듣고 생명의 예수를 만난 성도들이 북한에 돌아갈 때 물리적인 평안은 존재할 수 없다.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는 긴장된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고 때로 예수를 전한다. 그리고 믿는 것이 발각되면 죽임을 당하거나 평생 정치범수용소에 갇히는 혹독한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북한 성도들은 우리와 다른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은 로봇트처럼 고통에 무디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와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고스란히 몸과 맘으로 느낀다. 이렇듯 무시무시한 환란을 마주할 때 하나님께서 준비한 믿음을 지키기 위한 생존장치(Survival Mechanism)를 찾아 보았다.

첫째, 환란당하는 중에 직접 찾아와 주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보고, 음성을 들을 때 담대함과 이길 힘을 얻는다.

2010년 9월, 북한에서 온 성도를 만났을 때이다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다.

“남편이 안전부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걱정되고 겁이 나던지 3일 밤을 꼬박 잠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습니다. 너무도 애가타 ‘하나님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몸부림치며 통곡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눈앞에 주님의 말씀이 또렷이 펼쳐졌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지금도 그 때 그 일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꽉 쥐고 힘을 얻었고, 그 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주신 사명을 불태우고 기도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훈련을 받는 중에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감격하고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이 주저하지 않고 북한으로 돌아가면서 복음 전할 뜨거운 사명에 불타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북한에 돌아가 어려움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나드는 고통 중에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뵙고, 고난을 이기라는 주의 음성을 들을 때 새 힘을 얻고 견디게 된다. 마치 예수를 증거하다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이 주님의 얼굴을 뵙고 얼굴에 광채가 빛났던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도 믿음 안에서 마주하는 많은 고난들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북한성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훈련해야 된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을 붙들면서 고난을 견뎌낸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붙들고 결단하여 북한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을 보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천국에서 만나자는 고백이다. 북한성도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 고생이 끝나면 천국이잖아요. 하나님이 약속하셨잖아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으니 천국에서 주시겠다고… 천국에서 뵙자요.” 이렇듯 예수를 믿는 북한의 성도들에게 고통이 없는 천국은 피난처가 된다. 그러기에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현실의 삶에 닥친 환란을 넉넉히 견뎌낸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날마다 곧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로 고난과 환란의 장벽들을 뛰어 넘어 갈 수 있다.

셋째, 성도의 상급을 바라볼 때 어려움을 견딜 수 있다.

북한성도들이 좋아하는 찬양이 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영광의 내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다시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갈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주님을 믿으며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장차 하나님이 예비한 비할 수 없는 상급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기에 고통가운데 승리할 수 있다.

우리들은 어떠한가? 언젠가 강남에 사는 부유한 아이들에게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전도하면 “천국이 우리 집 보다 더 좋아요?”라고 묻는 다고 들었다. 물질만능에 익숙한 우리들의 세태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이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세상풍조를 거스르며 하나님의 예비된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달려가야만 한다.

넷째, 믿음의 성도들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고난을 이겨낸다.

1993년, 이삭목사는 14년 동안 지하 10m에 있는 감옥의 독방에 갇혀 지냈던 리차드 범브란트목사를 만났다. 범브란트목사는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루미니아를 침공하면서 예수믿는 것이 죄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해도, 달도, 별들도, 꽃들도, 눈도 볼 수 없는 지하 감옥에서 나를 때리고 고문하는 간수들이나 고문관들 이외에는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때 책 한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때였는데, 모진 고문에도 신앙을 부인하지 않고 맨발로 못 위를 걸으며 죽어간 주기철목사의 순교 일대기를 읽고서 ‘동양사람인 한국인도 이렇게 믿음을 지키는데 유대인인 내가 고난을 견디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생각하며 큰 힘과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복음을 철저히 제한하는 북한의 상황에서 혼자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을 당할 때 이겨내는 것은 힘들다. 고통을 당할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낼 수 있다. 설사 발각이 되어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동지들이 있을 때 힘과 용기를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안에서 혼자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동지들이 있도록 기도해야 된다.

다섯째, 가족을 만날 기대감을 가지고 고난을 견디는 성도들이 많다.

며칠 전에도 현장에서 온 일꾼으로부터 북한성도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 가족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운 동생 OO야!

간절히 소원하는 것은 사나 죽으나, 기쁘나 슬프나 주님만을 믿고 살아가자. 이제 오빠와 너를 3년 동안 보지 못해 속 태우며 끊임없이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부르시는 날이면 오빠와 너와 상봉하자. 그날을 위해 뛰고 또 뛰어야지… 날이 갈수록 우리를 주님 앞에 세워준 오빠가 눈물 나도록 고맙고, 그립다. 내 동생, 단 한번 만이라도 너의 손 쥐어보고 싶고, 네 옆에서 언니 구실을 하고 싶다. 기도하자. 꼭 주님께서 또 한 번의 상봉을 이루어 주시라고, 내가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신 주님께 뜨겁게 기도하자.”

이렇게 고난 중에서 신앙을 지키는 성도들이 현실의 삶에 닥친 많은 아픔들 가운데 다시 만날 가족들을 또는 깊이 사랑하는 믿음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견디고 힘을 얻는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부부가,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날 소망이 있을 때 고난을 견디게 된다.

위에 나열한 것 이외에도 순교하는 순간의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안전장치는 더 있다. 우리도 주님의 은혜와 고난 가운데 있는 자와 함께 하시는 안전장치로 환난과 핍박을 이겨나갈 수 있다.

(기사제공=모퉁이돌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