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중에 권위하는 은사는 權威가 아니라 勸慰이다. 권위는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이다. 은사중에도 가장 고상하고 흠모할 말한 은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오늘 교회안에 가장 많이 필요한 은사이다.

현대인들은 제 잘난 맛에 살도록 교육받고 자랐기에 스승이 없다. 그러므로 잘나갈 때는 좋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때는 속수무책이다. 여차칙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모질디 모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교회안에 권면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계발하는 일이 시급하다.

사도행전시대에 바나바가 이런 은사를 가진 분이었다. 바울과 같은 은사를 가진 사람도 많아야 하겠지만 오늘날에는 바나바와 같은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한 때이다. 특별히 교회안의 지도자들을 권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야 저들이 바른 목회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멘토가 없어 방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바르게 지도해 줄 분들이 없는 까닭이다. 매일 같이 깨여지는 교회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 내용들의 태반은 그 누가 권면자로 잘 지도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들이 태반이다.

이제 목회를 접고 은퇴한 분들이 지혜를 모아서 권면의 그룹을 만든다면 매우 유익한 여생을 보내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면백서와 같은 책을 출간하면 목회 초년병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권면의 은사는 권하는 일도 있지만 위로하는 은사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은사라고 생각된다. 만약 교회안의 위로의 은사를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면 교회는 화평할 것이며 사랑이 돈독하게 될것이다. 권사들이 바로 이런 일을 감당하여야 하겠는데 권사들 조차 위로를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른 교회가 되고 말았다.

권사들이 나는 왜 목사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서 교회의 분란의 주역들이 된다면 교회에 와서 위로를 받기 원하는 상처받은 많은 영혼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게다가 권사들 마저 정치에 휩쓸려 성도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편가르기에 앞장서거나 조장하는 일들을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다.

권위하는 일은 권위하는 일이라는 직능을 잃어버리면 不忠者다. 권사만이 아니다. 교회안에서 사람들은 權威者가 되기는 원해도 勸慰者가 되려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는 때이다. 기도학교도 좋지만 교회안에 성도들을 권위하는 일들을 전담할 많은 평신도들을 키워내는 권위자들을 배출하는 평신도 상담학교를 적극적으로 개설할 때이다. 그리고 누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을 다해 勸慰 할 자인가를 애써 찾아 발굴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