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가을, 5명의 미국인 선교사들이 에콰도르 아우까(Auca) 인디오족에 선교하려고 ‘아우까’ 계획을 수립했다. 아직 문명 세계에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히바로(Jivaro) 인디오족과 아우까족은 남미 아메리 인디오들 중 가장 호전적인 종족이다. 사냥하듯 사람을 죽인 후 머리를 잘라 허리춤에 꿰차고 야만스러움을 도리어 자랑하는 잔혹한 무리다.

무서운 증오를 품고 있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 웃음을 띠고 나타나 상대방이 방어본능을 해제하고 방심하면 갑자기 살인자로 돌변하는 사이코패스(Psycopathy) 기질을 갖고 있다. 함부로 침입한 외지인들은 사지를 토막내어 응징하므로 부족의 거룩한 성역을 지켰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에콰도르의 베테랑 선교사였던 데이브 쿠퍼(Dave Cooper)는 “스페인 정복자들, 카톨릭의 사제들, 장사꾼들, 석유 탐사자 수백명이 아우까 인디오에게 희생 당했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1943년에는 쉘 석유회사 탐사팀 8명이 정글치는 마쩨떼 칼과, 독 묻힌 화살에 찔려 무참하게 살해 당했다.

짐 엘리오트(Jim Elliot), 로저 유드리안(Roger Youderian), 피트 플레밍(Pete Fleming), 에드 맥컬리(Ed McCully),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 등 5명의 젊은 선교사들은 휘튼 대학, 미네아 폴리스에 있는 노스웨스트 대학을 나온 유능한 인재들이었다. “그런 야만적인 부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이 되겠는가?”

아우까 선교 전략(Operation Auca)을 수립한 짐 엘리오트와 네 선교사들은 에콰도르에 도착하여 아우까족 언어와 흡사한 뀌추아(Quichua)어와 스페인어를 배웠고, 여자 인디오 다유마(Dayuma)로 부터 아우까 언어를 배우며 정글의 삶과 말라리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955년 9월 10일, 리오 꾸라라이(Rio Curaray) 주변에 포진한 아우까 인디오 마을을 단발 비행기로 정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호감을 사고싶어 선물 보따리에 칼, 철사, 성냥, 옷가지와 선교사 자신들의 사진을 담아 왕래가 잦은 길 어귀에 풀어 놓았다. 얼마후에 그들은 답례품으로 앵무새, 땅콩, 불에 그을린 원숭이 꼬리를 이방인 출입자들에게 전달했다.

접촉을 시도한지 3개월만에 예상보다 빠른 반응이 나오자 뛸듯이 기뻐한 짐 엘리오트와 동료들은 후원 선교 기관인 항공선교회(MAF, Missionary Aviation Fellowship)조차 모르게 진입을 시도했다.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 기자, 탐험가, 상인, 석유 탐사가들이 무분별하게 몰려 올까봐 극비에 부쳤던 것이다.

1956년 1월 3일 목요일, 보통 때라면 꾸라라이 강이 홍수기로 범람할 때였지만, 강변 모래사장에 단발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있으리만치 바닥을 들어내 놓고 있었다. 금요일, 몇명의 아우까 전사들이 사주경계를하며 짐 엘리오트 일행이 있는 임시 막사를 방문했다. 여전히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토요일엔 더 많은 인디오들이 떼로 몰려와 오랜 시간 선교사 주변에 머물면서 편안히 놀다갔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처음보는 비행기를 매만지며 올라타 보기도 하면서 신기해 했다.

6일 일요일 오후 1시경, 인디오들은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하여 선교사들을 창으로 찔렀다. 수색대가 도착했을 땐, 시체는 심하게 부패된채 강물에 버려졌고, 몇몇 시신엔 여전히 창이 꽂혀 있었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같은 제 삶에 불을 붙히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멸하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제 삶은 주의 것이오니 다 태워 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주 예수님 처럼 꽉 찬 삶을 원합니다”

짐 엘리오트의 에콰도르 아우까 인디오 구령을 위한 염원이 고즈넉히 들려오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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