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12일, 아이티를 뒤흔든 대지진 이후 남미의 섬나라에 폭발적인 관심이 쏟아졌다. 세계 도처에서 구호물품이 물밀 듯 밀려 들었고, ‘진흙 쿠키’로 연명하던 남미 최초의 독립국가 아이티는 잠시 희망의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지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여름에는 태풍이 몰아친다는 소식이 들렸고, 연이어 콜레라가 퍼져 속수무책이라는 슬픈 소식도 전해졌다. 사람들은 아직도 긴급구호로 마련된 천막에서 구호식량으로 살아야 하지만 점차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아이티 선교사로 현재 뉴올리언스침례신학대학원(NOBTS)에서 목회학 석사과정(M.Div)을 밟고 있는 박동한 선교사를 다시 만났다. 지난해 1월 20일에 만나 인터뷰 하고 거의 일년이 지난 시점에서 만난 그는 지난번 보다는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지진으로 많은 관심과 구호가 집중됐지만,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이티 현장. 하지만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 부부는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우물을 쉼 없이 기르고 있다. 그 우물을 담는 두레박은 바로 ‘청년’이다.

아이티가 도대체 어디냐고 묻던 사람들,
지진 이후 갑자기 커진 관심에 ‘갸우뚱’


아이티를 장기 선교지로 정하고 떠날 때만 해도 ‘아이티가 도대체 어디냐?’ ‘왜 하필 거기로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어야 했던 박동한 선교사 부부. 당시에도 여전히 극심한 가난과 부패한 정치에 시달리던 아이티였지만, 청년들을 두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을 오가며 대학생들을 크리스천 리더로 세우는 일에 주력했다. 그러다 2009년 아이티 청년들을 더욱 섬기고자 잠시 사역지를 떠나 신학연수차 애틀랜타에서 막 자리잡아 갈 즈음 지진이 났다.

지진은 아이티의 판도를 180도 바꿔놨다. 가장 큰 변화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관심과 오가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지진 전에는 아이티 전체에 한인 선교사가 4-5명에 불과했지만, 지진이 발생한 직후부터 한인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일례로 한 단체에서는 박 선교사 부부가 아이티에 간다고 했을 때 ‘파송’이 아닌, ‘협력’관계로 하자고 할 정도로 소극적이었지만, 지진이 나고 갑자기 말을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다. 지진으로 갑자기 ‘주인’이 늘어난 것은 염려스러운 일이지만, 아이티에 대한 관심과 중보기도, 지원이 늘어난 것은 기쁜 일이라고 두 선교사는 입을 모았다.

현장의 경험, 긴급구호 때 빛을 발해

“처음 아이티에 들어갈 때만 해도 저희를 아끼는 지인들부터 말릴 정도로 외롭고 척박한 땅이었어요. 애틀랜타에서 아이티에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거기 두고 온 학생 리더들과 사역자들이 아른거려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고요. 너도 나도 아이티를 구하겠다고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갈 수 있는 형편도 안되니 참 외롭고 슬펐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예상치 못한 교회들과 성도님들의 도움으로 구호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구호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
일단은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다친 이들을 싸매주고, 집 잃은 이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게 급선무였다. 슈가로프한인교회(담임 최봉수 목사)와 임마누엘감리교회(담임 신용철 목사), 중앙장로교회(담임 한병철 목사), 남부침례교회(담임 이덕재 목사) 그리고 뜻 있는 몇 성도들이 모아준 성금을 갖고 한 달음에 달려간 아이티는 예상대로 심각한 상태였다. 아이티 현지를 누비고 다닌 현장의 경험이 이때 빛을 발했다. 다른 건 비록 부족해도 준비된 제자들(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구호의 길이 열렸고, 정말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데 초점을 맞췄다.

“다른 구호단체에서는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해서 구호품을 사서 전달했는데 지진으로 물자도 없고 물가도 오른 상태였어요. 어려운 중에 모아주신 헌금이기에 1불이라도 소중하게 쓰기 위해 이성한 선교사를 인근 도시로 보내 시장조사를 한 뒤에 대형 수퍼마켓에 물품을 주문해서 3만 불 예산으로 거의 8만 5천불에 해당되는 양을 구매했어요. 구호세트는 현지 목회자들이 조사 요청한 쌀 1포, 아비츄엘라 콩 한 박스, 식수, 식용유, Maggi 등인데, 치안이 불안정한 상태라 물품을 나눠주는 게 더 큰 문제였습니다. 유엔이나 미군에 맡기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 물품이 언제 어떻게 배포될지 모르는 문제고, 누군가의 잇속만 채울 수도 있어 직접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대형트럭에 물건을 싣고 직접 분배하는 과정은 ‘역시’ 위험했다. 하지만 제자로 양육된 현지 대학생들이 있어 가능했다.

조급한 것만 따라가다 자칫 본질 놓칠 수 있어

1년 정도 지나고 아이티의 현지 사정이 어떤지 물었다.

박 선교사는 “1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아이티를 구호한다고 했지만 조급한 것에 포인트를 맞추다 보니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본질을 놓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 단체조차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건물처럼 눈에 보이는 실적에 너무 관심을 갖는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그는 최근 업데이트되고 있는 자료들을 보여주며, 대형 교단과 단체, 교회들에서 단기적인 긴급구호 이외에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는데, 그 속을 들여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다고 했다. 현지 실정을 모르고 철저한 사전 조사 없이 ‘빨리 빨리’ 막무가내 식으로 ‘보이기 위한’ 일들을 진행하다 보니 건물을 짓다가 중도에 뺏기고, 정작 현지인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지원하기도 하며, 여러 단체에서 큰 금액을 들여 중복된 일을 한다거나 심지어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티에 들어와 있는 선교사나 NGO 직원들 가운데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염려했다.

“아이티 정국이 불안정하고 나라 자체에서 복구의 ‘그림(계획)’이 안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선교사들과 NGO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정치상황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현지에 머물며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원래 비싸던 외국인 생활 물가가 계속 오르고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도 많아요. 재정이 지원되는 곳은 비싼 대로 생활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무브먼트(Movement)보다는 궁극적으로 아이티를 사랑하고 섬기려는, 그래서 아이티인들의 상한 마음을 깊숙이 ‘터치’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결국은 사람이니까요.”

▲직접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구호팀.
지진의 폐허 뚫고 ‘2020 프로젝트’ 계속된다

박동한, 이성한 선교사가 아이티에서 계속해 오던 청년사역은 결국 ‘2020 프로젝트’로 귀결된다. 이번 지진은 ‘2020년까지 20개의 아이티 지역에 비전센터를 통해 20명의 핵심 센터 장을 세우고, 이들을 통해 200명의 리더를 세운다’는 프로젝트를 잠시 가로막는 듯했지만 결코 멈추지는 못했다. 아이티의 현 정치체제와 사회구조의 틀에 무조건 구호물품과 돈을 쏟아 붓는다고 바뀔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이미 몇 십 년간 가난과 구호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청년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 뿐이라는게 해답이자 과제. 사람을 바꾸는 일인 만큼 다른 단체나 선교사역처럼 쉽게 눈에 띄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든지 사람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구호사역을 마치고 현지 목회자들과 사역을 논의하고 있다.
“아이티 사람들은 많은 구호를 받다 보니 구호팀이나 선교사가 왔을 때 어떻게 대할지 미리 계산하는 경우가 많아요. 받을 건 다 받으면서도 마음은 쉽게 열지 않죠. 처음에 도미니카 갔을 때는 작은 일까지도 다 돈을 받아 갔어요. 마음을 열고 시간이 지나니 힘든 일을 해도 ‘너와 나는 친구(Amigo)’라면서 그냥 해줍니다. 현재 구호는 이전처럼 많지 않아요. NGO들은 모인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 중인 상태입니다. 한국 분들은 일단 현장에 오면 안타까운 마음에 많은 약속을 하시지만, 지켜지는 경우는 30-40프로에요. 지금은 관심도 많이 식었고요. 사실 물질보다 지속적인 관심이 이곳 청년들에게는 가장 필요합니다.”

인터뷰 처음에, 학교를 마치면 어떤 선교지로 갈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아이티를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방향으로 순종할 것’이라고 답한 두 사람. 허락하시는 때까지는 자신들보다 훨씬 더 역량 있는 젊은이들이 와서 사역할 수 있는 터를 다지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최소 3개월 이상 아이티에 대학생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공단의 리더들에게 회화공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한인 1.5세, 2세들이 필요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정말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고 열정도 있어요. 그렇게 하면서 좋은 재원을 걸러낼 수 있습니다. 여름 단기선교도 준비하고 있는데, ‘아이티를 위한 기도모임’이 애틀랜타에서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어려운 나라지만 2020년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져 봅니다.”

아이티 선교에 대한 문의는 박동한 선교사 678-793-9789 dreampdh@empal.com http://www.cyworld.com/dreamp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