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는 소통이란 단어가 화두가 되어 있다. 정부의 실정의 주요인은 국민과의 소통부재였다는 것이고 이를 대통령 자신도 인정하였다. 오피니언 리더그룹에 들지 못하는 많은 일반 대중들이 스스로 시간을 내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법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소통에 대한 불만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누군가와 이야기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며 그것이 묵살 됐을 때 사람들은 저항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세상의 삶속에서만 소통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적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소통이 중요하다.

이 세상의 소통의 문제는 사람과 사람의 문제라면 영적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원활한 영적 소통이 중요할 것이다. 우선순위로 본다면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문제가 먼저이고 그다음으로 세상이다. 이 세상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과의 영적 소통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 안 인물은 아브라함 링컨대통령이다. 그는 늘 하나님과의 영교를 통해서 소통을 원활히 하였으므로 국민들과의 소통은 물론 심지어는 정적들과의 소통 또한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인간은 본래부터 하나님과 소통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하나님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회복되기까지는 진정한 삶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돌아가 쉴 때까지는 결코 평안함이 없었나이다”고 고백하였다. 유대인 철학자 말틴 부버는 그의 유명한 저서 “나와 너”(Ich und Du)에서 “나와 너(당신)”사이에 아무리 최선의 인격적인 교감(소통)을 가져도 “영원자 당신”(Eternal Thou)과의 만남이(소통) 없이는 우리의 만남은 온전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그 “영원자이신 당신”을 의식, 무의식 속에서 찾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인간이 그분과 소통하기를 원하신다. TV 연속극에 은혜 받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이들은 TV와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 소통에 문제가 없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성경과 먼저 소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주일에 한번 목사의 설교를 듣고 말씀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그 말씀을 스스로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과의 원활한 소통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소위 하나님과 원활한 소통을 한다는 영매자(靈媒者)들을 찾아가게 되는 과오를 범한다.

말씀에 은혜 받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희미하지만 말씀에 은혜를 받고는 하나님과의 소통이 원활하여 즉각적이 된다. 한번 시험해 보라! 한주간 하루도 빼지 말고 30분씩만 성경읽고 기도해 보라! 소위 기도빨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확신에 찬 신앙생활 하나님과 막힘이 없는 소통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