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無愁)골은 우리 부부가 한국에서 안식년기간을 편안하게 보낸 도봉산 인수봉 끝자락의 한적한 산골이다. 무수골로 가려면 도봉역 1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하천길을 따라 들어간다. 창동역에서 무수골까지 왕복하는 마을버스가 있기는 해도, 종점에서 또 20분은 걸어야 한다. 시원한 하천이 졸졸 흐르는 산골에 서울시 시범주말농장이 질서 정연하게 펼쳐지고, 쓰러져가는 고옥(古屋)들 가운데 군데군데 밤송이가 톡톡터져 입벌리고, 어깨가 축 늘어진 수양버들가지에서 나는 스산한 바람소리, 멍멍 개 짖는 소리, 부릉부릉 오토바이 엔진소리들만이 정적을 깨는 조용하고 한가한 맛이 물씬 풍겨있는 마을이다.

무수골에서는 도봉산 특유의 밀도 높은 아름다움이 담긴 계곡과 능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탐방객들을 위한 산행길이 나오는 무수골지킴터까지는 2.5km로 30~40분 정도 걸린다. 무수골은 도봉계곡에 비하면 작은 계곡이라 소박하고 아담하다. 무수골이 좋은 점은 한갓진 것 말고도 길이 완만하여 이름처럼 아무런 근심 없이(無愁) 아내와 밀린 대화를 나누며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무수(無愁)골은 근심이 없는 골짜기란 뜻이지만 유래를 살펴보면 수철동(水鐵洞) 혹은 무쇠골로 불리던 대장간이 많은 동네였다고 한다. 무쇠골이 변해 지금의 무수골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근심이 사라지는 골짜기라 불러도 좋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가운데 늦가을날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히 안성맞춤이었다.

매일 아침, 눈은 어김없이 떠지고 하늘은 푸르렀다. 무수골 입구에는 상점이나 식당이 별로 없어서 우리 부부는 맛갈스런 아침식사를 준비할 수 없었고 인스턴트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도봉산은 이미 단풍은 가고 낙엽비가 우수수 내리고 가지들만 앙상하게 남아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마지막 남은 단풍덕에 그래도 아침 일찍 무수골 산책은 나의 지친 영혼과 마음을 달래 주었다.

비닐 하우스촌이던 곳이 주말 농장으로 바뀌어서 서울시 우수 주말 농장으로 선정되어 가족농장으로, 무우 배추가 가득했다. 한때 배추파동이 난 초겨울에 주말농장 가족들은 근심을 덜게 되었으니…이렇게 고마울 때가…그야말로 무수골이다. 농장에 무우 배추, 상치, 쑥갓, 깻잎이 많아 처음에는 무우골의 사투리 무수골인 줄 알았다.

무수골안에 우리 부부가 기거하던 ‘예뜨락(예수님의 뜨락)’과 맞대고 ‘능혜사’라는 절간이 나란히 있었다. 그 옆에는 모 선교단체 소유의 선교센타이고… ‘능혜사’ 주지가 아침일찍 낙엽을 쓸어모아 ‘예뜨락’ 정문앞에 수북히 쌓아 놓았다. ‘예뜨락’ 주인이 동네에서 우상(偶像)을 내쫓아 보낼 요량에 흥정을 붙였더니 떠무니 없는 땅값을 요구하더란다. 요즘 절간의 僧들은 다 요모양인지 무척 불만이다. 아직도 여타 중생들과 같이 하찮은 욕심을 부여잡고 있다니 역한 근심이 많은 모양이다.

무수골에서 얻은 휴식이 너무 고마와 근심이 떠날 날이 없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하루속히 무수골짜기, 하나님의 지경으로 넘어가고 싶은 설렘이 앞선다.

새해에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열방이 근심이 없는, 무수(無愁)의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