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채우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비워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득 찬 컵에는 물을 부을 수 없다. 결국 비움과 채움은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하나이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고, 채움이 없이는 비움도 없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은 새로운 무엇을 채우기 위함이다. 예수님의 삶은 균형의 극치를 이룬다. 비움과 채움, 텅빔과 충만, 버림과 취함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셨다. 비하와 존대, 섬김과 섬김 받음이 조화를 이루셨다. 비우신 후에 충만히 채우셨다. 예수님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다. 넘치는 영광은 비운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 하늘의 신령한 복이다.

인류의 비극은 인간의 무력함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강한 힘 때문에 생긴 것이다. 지도력의 위험은 무력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힘 때문이다. 그 힘 가지고 국가는 물론 사회나 교회도 변화시킬 수 없다. 팍스아메리카나를 외치며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외교정책이나, 힘의 논리로 북한을 응징하려는 것으로는 이 땅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평화와 안정은 야욕을 비워낼 때 찾아온다. 두 손을 펴고 욕심과 야심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뜻한 햇볕 같은 주님의 사랑으로 화평을 이루는 것이다. 두 손을 펴고 자신을 비워내며 창조적인 삶의 큰 능력을 얻어내는 것이다.

모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 나타난 결과는 사람을 쳐 죽인 것이었다. 그의 육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하나님은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해 모세를 광야학교에 입학시키셨다. 거기서 40년 동안 두 손을 펴는 법을 배웠다. 두 손을 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세가 두 손을 펴고 자신을 비워내기까지는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두 손을 펴므로 하나님의 권능이 임했다. 홍해바다가 갈라졌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반석을 쳤을 때 단물이 나왔다. 200만 명 이상이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다.

교회에서 못 넘어가는 선이 있다. 내가 옳기 때문에 양보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옳지만 십자가를 지라 하셨다. 옳지만 양보하라는 것이다. 내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포기하라는 것이다. 높아질 수 있지만 겸허히 낮아지라는 것이다. 자존심을 꺾고 철저히 죽으라는 것이다. 때로는 철저히 속은 것 같고, 짓밟힌 것 같고, 비굴해 지는 것 같지만,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지만 기쁘게 희생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길이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는 길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비움의 은총이며 내려놓음의 은혜이다.

비워지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라. 에머슨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는 얻을 것이지만, 모든 것을 얻었을 때는 잃을 것이다"고 말했다. 두 손을 펴라. 겸손의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비워내라. 자아가 죽어질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빈 손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낮아지심이셨다. 자신을 비어 종처럼 되셨다. 그리고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우셨다. 그분이 생명의 주님으로 우리 안에 오셨다. 비움의 은총이 있어야 채움의 하늘 영광이 충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