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으려니와 목사로 산다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목사의 삶을 빗댄 유모어들이 적지 않다. 어떤 목사가 목회 수십년만에 어떻게 태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한다. 한 곳에 가니 코끼리 쑈를 하는데 사육사가 관중에게 만약 여러분이 이 코끼리를 울리기만 하면 큰 상금을 주겠노라고 해서 여러 사람이 나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써 놈을 울리려 하였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그때 이 목사가 썩 나서서 내가 한번 해 보겠노라하면서 코끼리 귀에 대고 한참 무엇이라고 열심히 이야기를 해댔는데 조금 있더니 이 코끼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신기해서 같이 갔던 일행이 도대체 뭐하라고 했느냐 물었더니 이 목사가 하는 말 “뭐 별 이야기 안했어요! 그저 내 목회 생활 몇 개 풀었더니 저렇게 눈물이 떨어지내요!” 했다.

약 오른 사육사가 그럼 이번에는 코끼리 머리를 절레 절레 흔들게 하면 더 상금을 주겠노라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실패연속인지라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성원속에 이 목사가 또 등장하여 이번에도 코끼리의 귀에 대고 이번에는 그저 말 한마디 간단히 건넸는데 이 코끼리가 고개를 즉시로 절레 절레 흔들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였겠는가? 매우 궁금할 터이다. 그저 간단히 “너 나하고 개척교회 할래!” 했다는 것이다.

우스개소리도 이쯤 되면 도저히 웃을 수 없는 목회애환이다. 어느 牧師가 썩어서 속이 텅빈 고목나무를 보고 하는 말이 나는 목회 30년에 속이 곯을대로 곯았지만 너는 어쩌자고 木死하였냐고 자신의 속내를 내 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다 목사가 하는 말이고 사람들은 목사들이 호의호식한다고 먹사라 하고 요즘 목사들이 막산다고 막사라 하고 그래서 묵사발이 된 묵사라 한다니 목사로 산다는 것은 전전긍긍의 일이다.

그야말로 경상도 말로 “그르이 우예니껴?” 이다. 왜냐하면 목사의 길을 중도포기 한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인 까닭이다. 그러나 소명으로 목사가 되고 사명으로 목사의 삶을 산다면 꼭 이런 애환이나 이런 비평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삶을 실천하면서 눈물도 흘리고 병도 들고 아픔의 첩첩산중에서 애닳기도 하지만 삶의 무목적 가운데 방황하던 젊은이가 거듭나서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목사님 감사합니다. 할때 그 환희를 그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다. 가정불화에 깨어지기 직전의 부부를 설득하여 해로하면서 두고 두고 감사할 때 이런 일들은 내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큰 위로를 받는다. 설교에 은혜를 받는 할머니가 손수건에 사탕 몇 개를 쥐어주고 수줍게 웃으며 ‘은혜 받았시유!’ 할 때 그 날아 오르는 기분을 뉘라서 알까보냐!

이제와서 생각하는 것은 목사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전부이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나 같은 울화통이 목회 30년 인내 하면서 목사의 길을 걸었을리 만무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