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족보를 기록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17절에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가 14대, 그후 그리스도까지 14대로 기록되어 있다. 즉 아브라함 이후 그리스도는 14대-14대-14대(42대)에 탄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기록된 역대 유대왕들의 족보를 보면 14-14-14대에서 빠진 자들이 있으며, 다윗은 두 번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가 잘못 알고 실수해서 그랬을까? 분명히 아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구약의 많은 예언들을 인용한 구약에 능통한 자였으며 세리 출신이다. 지금의 IRS의 직원이었으며 CPA 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숫자에 정확한 사람이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족보를 구약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14대 -- (A1) 아브라함, (A2)이삭, (A3)야곱, (A4)유다, (A5)베레스, (A6)헤스론, (A7)람, (A8)아미나답, (A9)나손, (A10)살몬, (A11)보아스, (A12)오벳, (A13)이세, (A14)다윗
두번째 14대 -- (B1)다윗, (B2)솔모몬, (B3)르호보암, (B4)아비야, (B5)아사, (B6)여호사밧, (B7)요람=여호람, (B7.1)아하시야(왕하8:27), (B7.2)요아스(왕하11:21), (B7.3)아마샤(왕하14:1), (B8)웃시야=아사랴, (B9)요담, (B10)아하스, (B11)시스기아, (B12) 므낫세, (B13)아몬, (B14)요시야, (B14.1)여호와하스(왕하23:30), (B14.2)엘이야김=여호야김(왕하23:34),
세번째 14대 -- (C1) 여고냐=여호아긴, (C1.1)시드기아=맛다니야(왕하25:17), (C2)스알디엘, (C3)스룹바벨, (C4)아비훗, (C5)엘리아김, (C6)아소르, (C7)사독, (C8)아킴, (C9)엘리웃, (C10)엘르아살, (C11)맛단, (C12)야곱 (C13)요셉, (C14)예수 그리스도.이며,
위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왕들이 족보에서 빠져있고, 다윗은 족보에 두 번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를 14-14-14대로 기록해 주고 있는가?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족보를 구약 기록에 비추어보면 총 6명의 왕이 빠져있으며, 다윗이 두 번 들어가 있으므로 실제로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는 총47대이다. 그럼에도 마태복음 1장은 왜 14-14-14대로 표시해 주는 것일까?

숫자 14는 7x2 이다. 7은 ‘영적완전’(Spritual Perfection)이며 2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신성과 인성)을 의미하며 ‘증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14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증거해 주는 영적완전수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참조: 확대경으로 본 바이블 스토리 14회)

또한 성경에 숫자 14가 나타나는 사건을 살펴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슴으로 14년 동안 무보수(노예)로 일하게 되었다. 그후 7년 동안 보수를 받으며 일했다.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7년 풍년과 7년 흉년 총14년이었다(창41:29-30). 또한 정월 14일(원래 7월 14일)은 유월절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 살이에서 구원을 받고 자유함을 얻게 되는 날이었다(출12:4), 사도 바울은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는 환상을 보는 체험을 했고(고후12:2). 14년 후에 이방인의 할례의 교리적인 문제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방인의 할례의 굴례에서 해방시켰다(갈2:1).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배가 풍랑에 시달리다 14일째 되던 날 풍랑에 침몰되었으나 모든 자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행27:27). 이와 같이 숫자 14는 구원, 해방, 자유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14는 7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인데 이 반복은 확실하고 분명함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마치고 헌당식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고 축하의 잔치를 했는데 7일, 7일 합 14일(왕상8:65)동안 기념했다.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중요한 대목에서는 ‘진실로 진실로(아멘, 아멘)’ 하시면서 말씀해 주셨다.(요1:51, 3:3,5,11, 5:19,24,25 6:25,32,47,53, 8:34,51,58, 10:1,7, 12:24, 13:16,20,21,38, 14:12, 16:20,23, 21:18). 그 대부분이 에고 에미(I AM = 지존자)로서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신 내용에 사용하셨던 것이다. 즉 ‘확실히 분명하게’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신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들 즉 우리들이 확실히 기억해야 할 사건들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즉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사건,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했던 사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사건,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 성령의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심 등등이 있다.
이와 같이 구세주의 탄생은 확실하고 분명함을 증거해 주기 위해 숫자 7(영적 완전수)를 두번 반복한 숫자 14를 사용한 것이다.

그러면 마태복음 1장에 6명의 왕들이 왜 족보에서 빠지게 되었나? .
14대의 두 번째에서 7번째의 유다왕 요람(여호람, B7) 이후 그 후손 왕들의 3대가 빠지게 되었다. 요람(B7)은 북왕조 아합 왕과 친북정책을 펼쳤던 자이며,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 사이에서 난 딸 아달랴를 아내로 삼았던 자이다. 그래서 요람왕과 아달랴 사이에서 아하시아(B7.1)가 다음의 왕이 되었으나 1년 다스린 후에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하여 아달랴는 다른 왕족의 씨를 멸절하고 자기가 유다를 6년동안 다스렸다. 그러나 아하시아의 다른 아들인 요아스(B7.2)가 7세의 나이에 등극하게 되면서 아달랴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요아스왕은 처음에는 선정을 하였으나 나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그 아들인 아마샤(B7.3)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던 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던 요람왕의 후손 3대가 빠져 있다.

또한 14대의 두 번째에서 14번째 유다왕 요시아(B14)는 애굽과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쟁에 끼어들어 전사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인 여호와하스(B14.1)는 왕위에 올랐지만 3개월 만에 퇴위되어 애굽에 포로로 잡혀가 죽게 되었다. 이 때 애굽 세력에 의해 요시아왕의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B14.2)이 왕이되어 11년 통치하였다. 하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며 바벨론의 침공으로 유다왕국은 많은 무죄한 피를 흘리게 되었는데 이는 저들의 선조인 므낫세가 지은 모든 죄의 결과였다(왕하24:3).

여호야김이 죽고 그 아들 여호야긴(C1)이 왕이 되었으나 예루살렘에서 3달을 통치했으나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그리고 바벨론 세력에 의해 여호야긴의 삼촌이며 요시아의 형제 시드기야(C1.1)가 왕이 되었다. 시드기야왕은 그 후 바벨론을 배반하므로 두 눈이 빼임을 당하고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유대 땅은 바벨론의 속국으로 그달리야로 관할하게 하였고. 바벨론은 자기들이 잡아온 여호야긴(여고냐)을 포로생활 37년만에 옥에서 풀어주어 후히 대접을 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스알디엘을 통해 왕가를 이어가게 하였다. 스알디엘의 아들인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제1차 귀환의 대표자로 예루살렘에 귀향하여 통치하게 되었다.

요시아왕 이후 족보에서 빠지게 된 3왕들은 요시야 왕의 두 아들과 그의 한 형제였다. 이는 요시아왕 이후 한 세대가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윗이 두 번 들어 갔었으니 대신에 한 세대가 빠지게 된 것이다. 이는 마치 출애굽 이후에 12지파에서 레위지파가 빠지고 요셉의 아들들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지파가 들어가게 된 것처럼 그리고 계시록 12장에 14만 4천 중에서는 단지파가 빠지고 레위지파가 다시 들어가게 됨으로 12 지파의 숫자를 맞춘 것과 같다. 12라는 숫자는 통치완전(Governmental Perfection)수이다. 그리고 12제자의 이름에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건 후에 가룟유다가 빠지게 되고 대신 맛디아가 들어가서 12를 채워 12제자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족보에도 14를 맞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확실하게 예언에 따라 증거해 주기 위하여 14-14-14대로 성경은 기록해 주고 있다.

▲기름부음 받는 다윗
왜 다윗은 족보에서 두 번들어가게 되었는가?
다윗은 겸손한 자였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 모사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되이 회개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다 이루게 하시는 자(행13:22)’였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실 메시야를 예언해 주었던 것이다. 다윗은 축복의 두 배를 받은 것이다. 성경은 고난 후에 두 배의 축복을 받은 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요셉은 12지파 속에 레위가 빠진 대신 두 아들이 들어가게 되었다. 욥은 고난을 통해 그 재물에서는 정확히 두 배를 받았고, 그 자녀들도 두 배가 되었으니 처음 자녀들 10명과 나중에 나은 자녀들 10을 합하게 되어 천국에서 정확히 두 배가 된다. 겸손하며 충성된 자들에게 하나님은 정확하게 두 배의 축복을 주시기도 하신다.

14-14-14대의 마지막 14대째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져다 준다.
처음 시작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시작된다. 이 믿음은 칭의를 얻는 믿음이다(창15:6).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다. 첫 번째의 14대의 마지막 14대는 다윗으로 끝이 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시작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다윗은 겸손과 충성과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그 삶에서 간음과 살인 모사죄라는 큰 죄를 범하였다. 즉 믿음이 있으면서도 그 행위 즉 성화(Santification)라는 면에서 볼 때에 부족한 점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14대의 마지막 14대째의 왕인 요시아 왕은 믿음의 사람이면서도 성화의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던 자이다. 사울왕은 전쟁에 나가서 상처를 당하자 자살했으며, 다윗왕은 부하들을 군대에 보내고 왕실에서 늦잠자고, 밧세바와 간음을 하는 죄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 보내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요시아왕은 선왕으로 갈그미스 전쟁에 본인이 친히 참전하여 전사하여 죽게 되었던 자이다. 성경은 요시야 왕은 그동안 전혀 지켜오지 않았던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했으며, 산당의 제사장들을 불살라 죽이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종교개혁을 하였던 왕이다. 성경은 그에 관해서 말하되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고 말해준다.

그후 세 번째 14대의 마지막 14대째는 유대인의 왕이요, 인류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참된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그러므로 14-14-14대의 마침은 첫 번째 다윗은 믿음은 좋았으나 그 삶의 행위에서 부족함이 보여졌으며, 두 번째 마지막 요시아는 믿음과 그 삶의 행위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준행하였으며, 세 번째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흠이 없는 ‘우리 믿음의 주시오,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주(히12:2)’이시다.

오늘날에 타락되어 가는 교계를 보면서, 구약에 유다가 바벨론의 침공에 풍전등하가 되어졌던 것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요시야와 같은 참된 지도자(들)이 있어야 하겠다. ‘성경을 온전히 믿고, 행하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자’는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하겠다. 그리고 성도들 한분 한분들이 모름지기 이러한 종교개혁이 매일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하겠다. 그리할 때 이제 머잖아 재림의 주로 오실 때 그러한 자들이 영광중에 재림의 주를 뵈옵고 그 구원의 감격과 기쁨에 찬양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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