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8일부터 시작된 올해 다니엘 새벽 집회는 날마다 에베소서를 통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교회란 이 세상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온전케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모든 권한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 그의 몸이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당신이 이 세상을 위하여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온전하신 계획을 이 땅에 이루신다는 이 약속은 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고, 사역을 하는 우리에게 참으로 벅찬 감격과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그의 발아래 두셨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권한을 받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몸이 되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기에 교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교회는 이 세상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케 하는 곳이라는 말씀은 정말 커다란 힘이요 용기입니다.
사실 이렇게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해왔지만 이번 다니엘 새벽 집회를 통해 그 말씀을 다시 묵상하면서 참 귀한 가르침을 담은 말씀이라는 깨달음을 다시 받았습니다. 머리가 없는 몸을 생각할 수 없고, 또한 몸이 없는 머리를 상상할 수 없듯이 교회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곧 교회라는 깨달음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또 교회를 위해 쓰임을 받는 목사로서 제게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요, 교회를 통해 사역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역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교회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교회의 일꾼으로서의, 또 교회 자체로서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건강하다는 기준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니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개 우리가 건강한 몸이라고 하면 남자의 경우는 잘 단련된 근육질을 떠오르고, 여자의 경우 S라인의 몸매를 연상하는데, 물론 그것도 몸이 건강하다는 하나의 징조가 될 수 있지만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그것이 기준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몸이 건강하다고 하는 것을 몸의 어떤 현상을 가지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건강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정의는 곧 머리가 지시하는 것을 몸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상태라면 그 몸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몸이 어떤 상태나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몸이 그렇게 되도록 몸에게 지시하기 때문에 그러한 머리의 지시를 몸이 그대로만 따르면 그 몸은 건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건강하기를 바라고,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기를 바라지만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냐고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교회도 몸의 건강을 말하는 것처럼 현상적으로 교회의 건강을 그 규모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아니 그렇게 교회의 규모로 교회의 건강을 판단하는 소리가 압도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규모는 크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교회라고 말하기 어려운 교회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지를 현상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 분명한 것은 곧 머리가 지시하는 것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로 따를 수 있는 몸이 건강한 몸이듯이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상태라면 건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교회가 그렇게 되도록 지시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주님의 지시를 교회가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 교회는 건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몸의 건강이 머리의 지시가 몸의 각 지체들에게 원활하게 소통하느냐에 있는 것처럼 교회의 건강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어떻게 교회의 각 지체인 우리에게 원활하게 소통하느냐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몸이 원활하게 소통되기 위해서는 몸의 각 지체가 유연해야지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굳어 있으면 그것으로 몸의 소통이 막히게 되어 건강을 잃는 것처럼 교회도 주님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지체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야 하기에 교회의 지체를 이룬 우리가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결국 교회의 건강도 힘 빼기에 달려 있는 거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힘을 좀 빼야 할 거 같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그의 발아래 두셨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권한을 받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몸이 되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기에 교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늘의 영광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교회는 이 세상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케 하는 곳이라는 말씀은 정말 커다란 힘이요 용기입니다.
사실 이렇게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해왔지만 이번 다니엘 새벽 집회를 통해 그 말씀을 다시 묵상하면서 참 귀한 가르침을 담은 말씀이라는 깨달음을 다시 받았습니다. 머리가 없는 몸을 생각할 수 없고, 또한 몸이 없는 머리를 상상할 수 없듯이 교회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곧 교회라는 깨달음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또 교회를 위해 쓰임을 받는 목사로서 제게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이요, 교회를 통해 사역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역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교회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교회의 일꾼으로서의, 또 교회 자체로서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이 건강하다는 기준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니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개 우리가 건강한 몸이라고 하면 남자의 경우는 잘 단련된 근육질을 떠오르고, 여자의 경우 S라인의 몸매를 연상하는데, 물론 그것도 몸이 건강하다는 하나의 징조가 될 수 있지만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그것이 기준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몸이 건강하다고 하는 것을 몸의 어떤 현상을 가지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건강에 대해 한 가지 분명한 정의는 곧 머리가 지시하는 것을 몸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상태라면 그 몸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몸이 어떤 상태나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몸이 그렇게 되도록 몸에게 지시하기 때문에 그러한 머리의 지시를 몸이 그대로만 따르면 그 몸은 건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건강하기를 바라고, 모든 목회자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기를 바라지만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냐고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교회도 몸의 건강을 말하는 것처럼 현상적으로 교회의 건강을 그 규모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아니 그렇게 교회의 규모로 교회의 건강을 판단하는 소리가 압도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규모는 크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교회라고 말하기 어려운 교회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지를 현상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에 대해 분명한 것은 곧 머리가 지시하는 것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로 따를 수 있는 몸이 건강한 몸이듯이 교회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상태라면 건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교회가 그렇게 되도록 지시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주님의 지시를 교회가 그대로 따를 수만 있다면 그 교회는 건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몸의 건강이 머리의 지시가 몸의 각 지체들에게 원활하게 소통하느냐에 있는 것처럼 교회의 건강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어떻게 교회의 각 지체인 우리에게 원활하게 소통하느냐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몸이 원활하게 소통되기 위해서는 몸의 각 지체가 유연해야지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굳어 있으면 그것으로 몸의 소통이 막히게 되어 건강을 잃는 것처럼 교회도 주님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지체도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야 하기에 교회의 지체를 이룬 우리가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결국 교회의 건강도 힘 빼기에 달려 있는 거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힘을 좀 빼야 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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