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의 일입니다. 두 차선의 도로에 차들이 많이 몰려 있었습니다. 저 앞에 있는 차 하나가 속도를 내지 못하여 다른 차들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리막 언덕이었기 때문에 제 차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그 차는 2차선에서 주행하면서 40마일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가던 차들은 위협하듯 바짝 달라 붙었다가 1차선으로 추월해 지나갔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그렇게 느린 속도로 운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2차선을 고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뒤에서 가던 저도 “저 사람이 왜 2차선에서 가기를 고집할까?”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접근해 가는데, 그 차가 마침내 1차선으로 옮겨 갔고, 이어서 Exit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저는 지나가면서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목에 하얀 보호대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는 목을 다쳐서 보호대를 하고 있기에 마음대로 고개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운전을 해야 했을 터였고, 어쩌다가 2차선에 진입하게 되었던가 봅니다. 한산하던 도로에 갑자기 차가 많아지자 이 운전자는 당황을 했을 겁니다. 1차선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옆과 뒤에 있는 차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나가야 할 Exit을 몇 개 정도 지나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 사정을 모르는 다른 운전자들은 뒤에서 라이트를 번쩍번쩍 하면서 위협을 하기도 했고, 가운데 손가락의 길이를 보여주며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운전자는 식은 땀으로 속옷을 다 적시고 나서야 차선을 옮기고 Exit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잠시나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잘못에 빠집니다. 얼마 전, 어느 교우께서 제게 보낸 메일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의 진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닫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진실이 그렇습니다.
지난 주간에 저는 휴스턴에서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아주 건장하고 활력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힘을 전해주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목과 등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잠시 동안, ‘젊은 목회자가 너무 일찍 권위감을 가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분에게 경추 disorder가 있어서 잘 굽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제 마음대로 속단한 것입니다.
아, 때로 저는 이처럼 구제 불능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무슨 사정이 있겄지!”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굳게 먹었었는데, 망둥이만도 못한 제 기억력이 저를 자꾸 넘어지게 합니다. 끼리에 엘레이손! (2010년 10월 24일)
그렇게 생각하며 접근해 가는데, 그 차가 마침내 1차선으로 옮겨 갔고, 이어서 Exit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저는 지나가면서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목에 하얀 보호대가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는 목을 다쳐서 보호대를 하고 있기에 마음대로 고개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운전을 해야 했을 터였고, 어쩌다가 2차선에 진입하게 되었던가 봅니다. 한산하던 도로에 갑자기 차가 많아지자 이 운전자는 당황을 했을 겁니다. 1차선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옆과 뒤에 있는 차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나가야 할 Exit을 몇 개 정도 지나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 사정을 모르는 다른 운전자들은 뒤에서 라이트를 번쩍번쩍 하면서 위협을 하기도 했고, 가운데 손가락의 길이를 보여주며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운전자는 식은 땀으로 속옷을 다 적시고 나서야 차선을 옮기고 Exit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잠시나마,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내 방식대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잘못에 빠집니다. 얼마 전, 어느 교우께서 제게 보낸 메일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의 진실을 점점 더 깊이 깨닫습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진실이 그렇습니다.
지난 주간에 저는 휴스턴에서 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아주 건장하고 활력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힘을 전해주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목과 등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잠시 동안, ‘젊은 목회자가 너무 일찍 권위감을 가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분에게 경추 disorder가 있어서 잘 굽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정을 알지도 못하고 제 마음대로 속단한 것입니다.
아, 때로 저는 이처럼 구제 불능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무슨 사정이 있겄지!”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굳게 먹었었는데, 망둥이만도 못한 제 기억력이 저를 자꾸 넘어지게 합니다. 끼리에 엘레이손! (2010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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