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하길, 조지 워싱턴 카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특출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식물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화학작용을 카버만큼 많이 알아낸 사람도 없고, 그것을 실생활에 이용하는 방법을 그만큼 많이 알아낸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쓰레기가 쌓여있는 실험실에서 녹슨 냄비와 내다버린 병으로 만든 실험기구를 가지고 물질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한 그 물질들을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식료품, 의약품, 건축재료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진흙에서 색소를 빼내어서 손수 그림도 그렸는데 그 그림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화상들과 미술관에서 서로들 팔라고 졸라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청을 다 물리치고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디트로이트, 시카고, 터스키기, 앨라배마 둥지에 있는 그의 친구들의 집인 변변찮은 건물들 벽에 오늘날까지도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땅콩을 가지고 파이를 만들고 잡초를 가지고 샐러드를 만들었는데, 그의 요리법은 호텔에서도 이용되었습니다. 그는 피아노 공부도 별로 못했지만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가 되어, 자기가 근무하던 작은 대학의 재정난을 해결하고자 전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후 에디슨 연구소로부터 연봉10만 달러를 주겠으니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두 번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즉석에서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어찌나 바쁜지 결혼할 틈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꽃씨를 보내 달라고 편지라도 하면 그는 만사를 제쳐놓고, 꽃씨를 구해 보냈으며, 어느 집을 지나가다 그 집 뜰에 핀 장미가 생기가 없어 보이면 으레 그 집주인을 불러 그 장미가 무슨 병에 걸렸으니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일러주곤 했습니다.

클리지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의 집을 방문하였으며, 곳곳의 사람들이 그의 자문을 받았고, 여러 외국 정부들이 그를 고문관으로 추대하였으며, 헨리 월러스, 포드, 간디 등은 그의 절친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카버가 모든 사람에게 환영만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면전에서 모욕하고 멸시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카버만큼 날 때부터 불행한 처지에 놓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가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자기가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예제도를 종결시킨 남북전쟁의 초기에 한 흑인 노예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아주 허약하고 또 환경조차 좋지 못해서 사람들은 그가 사람구실도 못하고 일찍 죽으리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가 처해있는 환경이 그처럼 좋지 못하고, 또 나중에는 개, 돼지만도 못하게 차별을 받으며 자랐으니 그의 정신은 뒤틀리고 병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물로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개, 돼지만도 못하게 대우하는 사람들에게 적의를 품기보다 호의로 대했으며, 그가 처한 환경은 어둡기만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희망의 광명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학업을 끝마쳤습니다. 미국 중서부 지방의 이 읍에서, 저 읍으로, 흑인 소년이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가 일을 하며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 길거리와 남의 집 추녀 밑을 자기 집 삼아 살았으며 굶주림과 헐벗음을 면할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고 배움의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이러한 그의 굳은 뜻과 피눈물 나는 노력은 드디어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습니다.

카버가 발명한 여러 가지 공적은 목화 재배만을 생업으로 삼고 있던 미국남부 지방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목화만을 재배하여 토박할 대로 토박해진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개량하고 거기에 심을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의 작물을 찾아냈습니다. 그렇게 되니 그와 자리를 같이하여 식사하기도 꺼려하고, 말조차 걸기를 싫어했던 사람들까지 그의 은덕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공적은 대대로 빈곤에 시달리던 남부 연방의 가정들에게 광명을 주었으며 그들의 자녀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자신은 백인 사회를 향해 흑인들의 인권에 대하여 한마디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는 백인과 흑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날을 앞당기는데 누구보다도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부모의 이름도, 태어난 날짜도 모르는 흑인 노예였던 조지워싱턴 카버는 인종을 초월한 세계 모든 사람을 더욱 부요하게, 더욱 건강하게 더욱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데 결혼도 못한 채 평생을 바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