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한 여름처럼 날씨가 무더웠지만 그래도 이제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가을이 되면 예부터 오랫동안 가을을 칭하는 말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란 말입니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뜻인데 하늘이 높다는 말은 그 만큼 계절이 상쾌하고 날씨가 좋아 살기가 좋은 절기라는 의미이고, 말이 살찐다는 말은 먹을 것이 풍부해서 사람은 물론이고 말조차 살이 찔 정도로 풍요로운 계절이라는 뜻일 겁니다.

이렇게 말을 풀이하면, ‘그 정도야 누구나 다 아는 거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요즘에 가을을 보며 가을 하늘이 다른 계절에 비해 ‘참 높구나’ 하고 느끼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살면서 자기가 정한 목표에 집중하고 자기 자신에 집중하여야만 살아갈 만큼 바쁜 세월인지라 가을은 고사하고 일 년에 단 하루라도 한가로이 하늘을 바라보는 자체를 사치라고 여기는 세월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는 말도 일상생활에서 말(馬)을 타기는커녕 보기조차 힘든 요즘인데 가을이 되면 말이 살찐다는 의미를 제대로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살이 찐다는 게 사람이건 동물이건 더 이상 건강한 모습으로 존중받기보다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체형의 표상처럼 여겨지기에 이 말의 본래 의미가 제대로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도 이런 가을에 대한 표현은 지금도 그런 감이 없지는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질듯 싶습니다.

가을을 생각하며 가을을 표현하는 말 중에 우리네 귀에 익숙한 또 다른 하나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현일 것입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로 불리게 된 것은 가을 날씨가 다른 것을 하기에도 좋지만 책을 읽기에도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그러면 왜 비슷한 온도의 좋은 날씨인 봄이 있는데 ‘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고 유독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를까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날씨만이 아닌 듯합니다. 날씨야 봄이나 가을이 비슷하지만 가을은 계절적으로 봄보다는 삶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절이고, 그러다보니 삶에 대한 지혜를 담은 책들을 많이 읽는 것이 좋기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도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는 아주 고리타분한 표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검색엔진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는데 무엇 하러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해묵은 표어로 여김을 받아도, 여전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 즉 책을 읽기에 참 좋은 계절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고, 또 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인터넷 사이트가 잘 발달이 되고, 요즘 나온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전자책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해도 한권의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며 읽어가는 ‘독서’는 여전히 소중한 삶의 경험이라고 봅니다. 독서를 하든지, 아니면 인터넷 검색을 하든지 필요한 지식을 얻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러나 여전히 책을 읽는 독서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도 그 소중함이 대체되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이 고루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고, 너무나 시대문화에 동떨어진 발상이라고 비판할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맑고 상쾌한 가을 날, 아니 비가 오는 가을날에라도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고 읽다가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고, 그러다가 다시 책을 펴서 읽고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생각의 여유는 ‘독서’를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기에, 이것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올 가을에는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망설여지면,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여러분의 눈에 확 띄는 책을 택하여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방법이 너무 즉흥적인 것 같다고 생각되면 아주 오래된 고전(古典)중에서 한권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거이고 고전의 가치는 거기에 있습니다. 조금 더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가을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삶의 방법을 소개하는 책보다는 왜 살아야하는지 삶의 목적과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책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삶을 잘사는 방법을 소개한 책은 많은데 비해 삶의 좋은 목적을 깨닫게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서 그래도 이번 가을에 읽으면 좋은 책 한권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한권의 책, ‘성경’을 추천합니다. 특히 성경이 신앙과 실행의 충분한 표준이 된다고 고백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강추(강력추천)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오랫동안 성경을 캐넌(Canon), 즉 ‘표준’이라고 부르고, ‘한권의 책(The One Book)’이라고 부른 이유를 압니다. 올 가을에는 바로 이 한권의 책,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맑은 가을날, 성경을 펴서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밑줄도 긋고, 읽다가 덮고 생각도 하고, 다시 펴서 읽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