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고>라는 낱말은 중동지역의 위기상황에 자주 등장하는 신조어다. 그만큼 세계이목의 집중지이고, 인류종말의 시작도, 결판도 다 거기서 날거라는 설(說)들이 널리 퍼진지 오래다. 발단은 어느 가문의 복잡한 사연이 만들어낸, 주전 2천년대의 한 비극적인 사건에서 부터다. 그때 수태를 못한 “아브람”의 처 “사라”는 자기몸종 “하갈”을 남편의 침실에 씨받이로 들여보내서 “이스마엘” 이란 아들을 낳게 해 주고, 마침내 14년 후 그녀 자신도 늦둥이 아들 “이삭”을 낳아 품에 안게 된다. 하지만 이들 이복형제들 간의 반목질시가 인류역사를 피로 얼룩지게 할 불씨로 남게 될 줄이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왜냐하면 그 후 첩의소생 “이스마엘”은 아랍인의 조상으로, 본처소생 “이삭”은 유대인의 조상으로 각각 길을 달리하며, 철천지 원수사이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지금의 화약고 중동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팔레스틴의 피 튀기는 분쟁이 그렇고, 악몽의 9,11테러사건이며, 척 하면 아무데서나 터져 나오는 자폭테러 등이 다 그 여파다. 덕분에 아프간 침공에, 실패한 이라크전쟁도 치러야만 했다.

무술림에 대한 증오심이 어느 정도였으면 그들이 생명시 하는 코란 들을 교회 안에서 불태워 버리겠다는 무모한 목사님까지 나타나셨겠는가. 비난의 소리가 거세게 몰아치며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감히 12억의 힘을 가진 이슬람을 건드리다니,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겠는가!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방법의 문제인건 틀림없다. 하지만 “존스”목사의 감정 자체를 비난할 자격있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무술림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제는 코란이 아니라 정신이다. 그걸 태울 수 없는 거라면 백해무익하다는 사실을 왜 몰랐는지, 같은 동역자로서 애석할 뿐이다. 성경책이든 예배당이든 모조리 태워버리면 기독교고 하나님이고 다 박멸 될거라 생각한건 바로 과거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제의 식민정책이었다. 지금은 김정일 공산정권이 더 악랄한 수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태워서 태워지는 게 있고 아무리 태워도 안 태워지는 것도 있다. 성경이 그렇다. 그깟 책 몇 권 불속에 던졌다 해서 쉽게 꺼져 버릴 신앙이라면 기독교 2천년 역사를 너무 우숩게 본거다. 같은 맥락이다. 그깟 코란 몇 개 불태운다고 하루아침에 이슬람교가 망해 버릴 거라 믿는 천치바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도무지 길이 안보이고 방법도 없다. 기독교에서 섭리라고 가르치는 이런 걸 운명이라던가? 그러니 어찌“존스”목사를 불장난(?)꾼으로만, 매도 할 수 있겠는가? 그보다는 장차 인류가 불로 멸망 받게 될 끔직한 참상을 차라리 그의 무모한 행동을 통하여 예시해 주는 건 아닐까, 깊이 고민해 볼일이다. 그 무섭고 두려운 날 불에 타는 건 코란만이 아니다. 성경도 타고 교회도 탄다. 아니 세상만물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을 판국인데, 성당사찰이 안전할거며 백악관 청와대가 무사 할 것 같은가, 원인제공은 비록 중동이지만, 뜨거운 심판의 불길은 온 세상을 집어삼키게 된다는 천상의 소리를 일찍이 대변해준 사람은 바로 “존스”목사의 대 선배되는 시몬 베드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