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전도의 표본’ 고성준 장로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야…” 헬렌 여사

믿지 않는 가족들의 전도는 쉽지는 않다. 하지만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보낸 선교사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가족을 전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족 간의 '익숙한 관계'이다.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좋은 관계'인 것을 감안한다면, 불신 가족 전도는 가장 쉬울 수도, 가장 어려울 수도 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나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삶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있어 가족 구원은 가장 절실한 문제다.

워싱턴주 스포켄 지역에 믿지 않는 가족 구성원을 전도해 온 가족 복음화에 성공한 믿음의 가정이 있다. 바로 고성준 장로 가정이다. 고 장로는 뉴호프리폼드쳐치의 한국어 예배를 맡아서 주일예배 설교 통역 등 교회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인 성도들을 섬기고 있다. 그는 여태껏 지역 한인 크리스천들을 위해서라면, 특히 유학생들을 위해 발벗고 봉사하고 아예 먹는 것에서부터 학비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자신의 집에서 홈스테이까지 지원해 오고 있다.

고 장로는 관계 전도에 대해 "전도는 이론도 생각도 말도 아니다. 쉽게 말해서 전도는 그저 “하는 것”이다"라며 "이론도 방법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가치를 상실한 것"이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일방적인 전도는 부작용만 낳지요. 오래도록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쌍방향 전도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 사위가 장모에게 복음을 전하다
“장모님과의 성경공부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인내로 결실을 맺은 믿음의 결실, 신학선 할머니

▲고성준 장로 가족. 아래 우측에서 두번째 헬렌여사, 아래 우측에서 세번째 신학선 할머니. 위 좌측에서 두번째 고성준 장로.
고 장로는 10년 만에 장모 신학선 할머니(83세)에게 복음을 전했다. 수십년간 불교를 믿어온 장모님에게 구원의 주 되신 예수님을 전하고자 매주일 마다 교회에 모시고 다녔다. 신학선 할머니는 그야말로 사위의 성화에 못 이긴 척 몸만 교회에 왔다갔다 하는 그야말로 나일론 신자였다.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장모님이시기에 고 장로 딴에는 사위로서 구원의 기쁨을 맛보게 해 드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갖고 매일같이 찬송을 불러드리고, 손을 붙잡고 기도도 해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그리고 틈날 때 마다 성경 말씀을 전했다. 사위로서 장모님의 성경공부 개인 과외교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아침에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장모님과 함께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이 찬송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면, 주님께서 많은 은혜를 내려주셔서 마음이 절로 평안해 집니다"

고 장로는 가족 전도의 당위성을 놓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자문한다. ‘어떻게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을 계획하셨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회복의 길이 없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라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가정의 복음화을 이루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하며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며, 하나님께서 선사하신 가정이란 선물에 대한 소중함을 나눌 때 비로소 우리는 일차적으로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고 장로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었기에, 꾸준히 장모님께 성경 말씀을 전하고 손잡고 기도해 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기도와 인내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06년도 4월에 드디어 장모님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세례를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죄사함의 권세와 또한 원죄에 대해서 거듭 설명해 드렸지요. 마치 운전면허를 딴다고 해서 누구나 다 운전을 잘 하는게 아닌 것처럼, 훈련과 반복이 중요하지요”

사실 나이 여든이 넘어 미국까지 와서 개종한다는 자체가 여태껏 한국적인 정서에 길들여져 있었던 신학선 할머니로서는 어려움이 있었을 테다. 하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교회에서 말씀 공부하다 모르는 건 밑줄 쳐서 집에 와서 사위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꾸준히 성경 공부에 매진했다.

신학선 할머니는 성경 말씀이 꿀 같이 달아서 아예 성경을 통째로 쓰고 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 요즘은 시편을 쓰고 있어요. 신약까지 다 쓰는 것이 목표지요”

성경 쓰는 재미가 쏠쏠해서 오죽하면 친구들이랑 전화로 수다 떠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는 할머니. 할머니는 “성경을 쓰고 있노라면 마음에 평안이 임한다”며 “그 기쁨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헬렌 여사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

헬렌 여사는 고 장로 남동생의 장모이다. 본명은 김혜련. 아버지가 평양 초대 1대 선교사인 마펫 선교사와 동역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믿음의 가문에서 신앙을 배우며, 대구 동산간호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다가 의사 남편을 만나 한인교회를 다녔었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시련을 만나듯이, 헬렌 여사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이혼의 시련을 경험하고 인생의 깊은 교훈을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됐다.

보통 시련을 겪으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한번쯤은 불평과 원망의 말을 내뱉을 법도 한데, 헬렌 여사는 이러한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결단코 한번도 불평을 입 밖으로 내뱉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늘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며 스스로 감사의 제목을 찾았던 그녀다.

“크리스천이라고 말로는 하지만 실제로 삶이 크리스천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밖에 나가서 전도도 해 보고 했지만, 말 건네면 자신은 교회 다닌다고 휑 ~하고 지나가는 나일론 신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배운 예수님의 그 말씀대로 산다면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믿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실제로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원래는 한인교회에 적을 두고 섬기던 헬렌여사였지만, 이혼을 경험하고 주위에서 입방아를 찟는 통에 더이상 한인교회를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재혼을 하고서도 미국교회를 계속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죽기 전에 보다 값진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30년 가까이 미국교회에서 봉사하다 지금은 다시 한인교회로 와서 3년이 지났다. 아무도 봉사하던 사람이 없는 일꾼이 모자란 작은 교회에서 헬렌 여사가 처음으로 팔을 걷어부치고 교회 실내 인테리어 등 실내는 헬렌 여사가, 그리고 교회 외부 일은 지금의 남편이. 이렇게 해서 교회 안팎 청소 봉사를 헬렌 여사 가정이 도맡아 한다. 매주 필요한 교회의 쌀도 헬렌 여사가 보급한다.

이 뿐 아니라, 교회에서 돈이 없어서 펠로우쉽 푸드에 참석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면, 조용히 뒤에서 그분들을 섬기고, 도와준다. 봉사하고 섬기는 가운데 거기서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그녀는 “이 땅에 크리스천이라 하지만 실제로 크리스천답게 사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어김없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