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음의 느낌은 의외로 오랫동안 진행되어온 치명적인 감정의 덫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끝나지 않는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상처의 최초의 기억은 가족 관계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할 가정은 서로를 찌르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깨진 유리조각들이 수없이 박힌 치명적 공간이 되어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생채기를 지금도 남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버림받음의 상처들이 크고 작은 모양으로 무의식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말없이 잠시 가게에 다녀온 엄마는 어린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버림받음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극심한 불안에 휩쌓이게 합니다. 단지 잠깐 다녀온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말하지 않은 것뿐인데도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아이를 친척이나 조부모에게 맡겨놓고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번쯤 보러 가는 경우에 아이는 더욱 버림받음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자녀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의 아픈 마음을 어린 아이가 이해할 리 없습니다. 부모는 결코 자녀를 버린 것이 아닌데도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끊임없이 버렸다고 인식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자라는 동안 무의식에 쌓여 버림받고 싶지 않은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버림받음의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삶이 늘 무기력하거나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는 심각한 신경증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가진 성향과 기질에 따라서 그러한 상처를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심한 경우 중증의 우울증이나 정신 분열로 치달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체질적으로 정신구조가 아주 튼튼한 사람은 그러한 어린시절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합니다. 혹은 그러한 상처를 통해 더 견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고난의 상황을 뛰어넘어 더욱 훌륭한 성장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문제는 기질적으로 연약한 마음을 가졌거나 너무나 정서적으로 민감하거나 관계중심적인 사람일 경우 끊임없이 자신의 내적 자의식을 되새김질하면서 계속해서 상처를 자각하고 불러내게 될 때 일어납니다.
민수씨(가명)는 인간관계의 문제로 많은 고통을 받아왔고, 삼년 째 연인의 양다리 걸치는 행동을 묵인하며 자신의 내면의 고통과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애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알고 있어요. 나를 만나는 동안에도 걔는 계속 다른 남잘 만났죠. 난 그걸 알면서도 묵인했어요. 걔가 날 떠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 때문에 아는 체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안다는 걸 걔가 알면 분명히 떠날 거에요. 그런데 난 그 앨 떠날 수가 없어요. 걔가 떠나가면 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에요. 쿨하게 보내줘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그 애가 떠난 텅 빈 자리에 혼자 남아있는 나를 생각하는 건 너무 끔찍해요. 난 내가 매력이 없는 남자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언젠가 걔한테 버림받을지도 모른단 생각 하고 있어요. 그래도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떠나보낼 수 없어요…”
민수씨의 부모님은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둘 다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민수씨를 할머니집에 맡기고 먼 지방으로 떠나야했습니다. 민수씨의 부모님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어린 아들을 만나러 왔지만 잠시 얼굴만 비취면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발악하듯 울어 제치는 아들을 억지로 떼어놓으며 곧장 떠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민수씨는 버림받았다는 깊은 상처와 함께 체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가 힘들었고 누군가 다가오려고 하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본능이 그들을 자신도 모르게 밀어내곤 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주위 사람들을 지나치게 밀어내거나 혹은 지나치게 집착했으며 그들의 작은 거절에도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성과 사귀면서 상대 여성에게 과도하게 집착했습니다. 가끔 연락이 두절되거나 문자에 답신이 안 오면 미친 듯 불안해했습니다.
평범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여성들조차 민수씨의 집요한 태도에 질려 금방 떠나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민수씨는 늘 버림받음의 조건과 성향을 갖춘 여성을 선택했고 또다시 상처를 받았습니다. 민수씨와 현재 사귀는 여성은 한 남자에게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결핍 때문에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된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민수씨가 싫으면서도 여러 남자 중 한 남자로 그를 놓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다른 남자에게 전화가 오거나 수시로 문자가 왔지만 민수 씨는 그것에 대해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이전에 사귄 여성에게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을 따졌다가 바로 버림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민수씨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을 수도 없었고 그녀에게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끊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버림받음의 기억은 무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가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헤집고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민수씨는 자신의 문제의 근원을 알고자 상담실에서 오랜 분석과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강한 자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처가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관계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버림받을까봐 염려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정작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구습을 좇는 옛사람(엡4:22)”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이것을 벗어버리기 전에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끝나지 않는 상처를 지속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치유의 보혈로 인해 이 모든 상처에서 놓여나고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버림받음의 상처로 지금도 힘들어하는 당신, 용기를 내어 전진하세요. 주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www.kclatc.com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버림받음의 상처들이 크고 작은 모양으로 무의식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말없이 잠시 가게에 다녀온 엄마는 어린 아이에게 순간적으로 버림받음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극심한 불안에 휩쌓이게 합니다. 단지 잠깐 다녀온다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말하지 않은 것뿐인데도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아이를 친척이나 조부모에게 맡겨놓고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번쯤 보러 가는 경우에 아이는 더욱 버림받음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자녀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부모의 아픈 마음을 어린 아이가 이해할 리 없습니다. 부모는 결코 자녀를 버린 것이 아닌데도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끊임없이 버렸다고 인식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자라는 동안 무의식에 쌓여 버림받고 싶지 않은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버림받음의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삶이 늘 무기력하거나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는 심각한 신경증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가진 성향과 기질에 따라서 그러한 상처를 어떻게 재해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심한 경우 중증의 우울증이나 정신 분열로 치달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체질적으로 정신구조가 아주 튼튼한 사람은 그러한 어린시절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합니다. 혹은 그러한 상처를 통해 더 견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고난의 상황을 뛰어넘어 더욱 훌륭한 성장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문제는 기질적으로 연약한 마음을 가졌거나 너무나 정서적으로 민감하거나 관계중심적인 사람일 경우 끊임없이 자신의 내적 자의식을 되새김질하면서 계속해서 상처를 자각하고 불러내게 될 때 일어납니다.
민수씨(가명)는 인간관계의 문제로 많은 고통을 받아왔고, 삼년 째 연인의 양다리 걸치는 행동을 묵인하며 자신의 내면의 고통과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그 애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알고 있어요. 나를 만나는 동안에도 걔는 계속 다른 남잘 만났죠. 난 그걸 알면서도 묵인했어요. 걔가 날 떠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 때문에 아는 체 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안다는 걸 걔가 알면 분명히 떠날 거에요. 그런데 난 그 앨 떠날 수가 없어요. 걔가 떠나가면 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에요. 쿨하게 보내줘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그 애가 떠난 텅 빈 자리에 혼자 남아있는 나를 생각하는 건 너무 끔찍해요. 난 내가 매력이 없는 남자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언젠가 걔한테 버림받을지도 모른단 생각 하고 있어요. 그래도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떠나보낼 수 없어요…”
민수씨의 부모님은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둘 다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민수씨를 할머니집에 맡기고 먼 지방으로 떠나야했습니다. 민수씨의 부모님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어린 아들을 만나러 왔지만 잠시 얼굴만 비취면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발악하듯 울어 제치는 아들을 억지로 떼어놓으며 곧장 떠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민수씨는 버림받았다는 깊은 상처와 함께 체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가 힘들었고 누군가 다가오려고 하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본능이 그들을 자신도 모르게 밀어내곤 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주위 사람들을 지나치게 밀어내거나 혹은 지나치게 집착했으며 그들의 작은 거절에도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특히 이성과 사귀면서 상대 여성에게 과도하게 집착했습니다. 가끔 연락이 두절되거나 문자에 답신이 안 오면 미친 듯 불안해했습니다.
평범하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여성들조차 민수씨의 집요한 태도에 질려 금방 떠나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민수씨는 늘 버림받음의 조건과 성향을 갖춘 여성을 선택했고 또다시 상처를 받았습니다. 민수씨와 현재 사귀는 여성은 한 남자에게 만족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결핍 때문에 왜곡된 사고를 하게 된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민수씨가 싫으면서도 여러 남자 중 한 남자로 그를 놓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다른 남자에게 전화가 오거나 수시로 문자가 왔지만 민수 씨는 그것에 대해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이전에 사귄 여성에게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을 따졌다가 바로 버림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민수씨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을 수도 없었고 그녀에게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끊어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버림받음의 기억은 무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가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헤집고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민수씨는 자신의 문제의 근원을 알고자 상담실에서 오랜 분석과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강한 자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처가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관계를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버림받을까봐 염려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정작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구습을 좇는 옛사람(엡4:22)”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이것을 벗어버리기 전에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끝나지 않는 상처를 지속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치유의 보혈로 인해 이 모든 상처에서 놓여나고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버림받음의 상처로 지금도 힘들어하는 당신, 용기를 내어 전진하세요. 주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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