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일등이나 첫째가 되길 원하여 ‘제일’의 영예를 얻기를 원하다. 그래서 사업이나 교회의 이름도 ‘First’이라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며 집사, 장로, 부목사의 명칭 앞에도 ‘수석’이라는 명칭을 붙여 사용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등이 되는 것에만 목표를 두고 달리다 보면 자기가 걸어가야 할 정도를 벗어나거나 나보다 더 잘한 사람에 대한 시기(질투)를 일으키게 된다. 더 나아가 믿음에서 떠나 자기를 찌르게 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일등이 되는 것이 아니요, “의(Justice)와 인(Mercy)과 신(Faithfulness)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미6:8, 마23:23).” 신앙의 길은 결과를 따짐보다는 그 과정을 중요시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과 교회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필자는 성경의 인물 중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 진실로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나바’이다.

바나바는 기쁨으로 정성과 힘을 다해 밭을 팔아 헌금했다(행4:36-37).
초대 교회에서는 아름다운 성도의 공동체가 이루어졌는데 서로가 필요에 따라 나눔의 공동체가 이루어 졌다. 이렇게 됨에는 바나바와 같은 교인들의 역할이 컸다. 바나바는 자기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며 헌금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재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0-21)”고 성경은 말씀해 준다. 바나바는 분명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이를 실천하며 살아간 사람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모친께서는 섬기는 교회의 건축이 자금 부족으로 중단 되자 논밭을 팔아 몽땅 헌금함으로 건축을 마치게 도우셨다. 필자는 당시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가하며 이해할 수가 없었고 불만도 있었지만 신앙의 철이 들어가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모친의 신앙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루스도라에서의 바울과 바나바
바나바는 사울(바울)을 공회에 담대하게 소개했다. (행9:26-27)
사울(바울)은 스테반 집사를 죽이는 일과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으나 다메석 도상에서 부활하는 예수를 만난 후 개심했다. 이 후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제자들과 사귀고자 하였으나 제자들은 두려워 거절할 때, 바나바는 바울을 예루살렘에 데리고 가서 소개하고 사귐을 갖도록 주선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5:9)"

바나바 때문에 교회(안디옥)가 부흥하게 되었다. (행11:24)
스테반의 순교 이후 교회 핍박이 있으므로 성도들이 여러 지방으로 흩어졌다(Diaspora). 안디옥에도 성도들이 안착하여 헬라인(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에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를 파송해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바나바는 사울을 데려와 함께 사역을 했다. (행11:25-26)
안디옥 교회가 부흥함에 따라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사울을 찾아가 함께 사역하기를 권했고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동역하게 됐다. 즉 단독 목회자가 아니요 함께 목회를 했으며, 그로인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 명칭이 생기게 됐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3:9a)"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최초의 선교사였다. (행13:2-4)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첫 목회자들이었으며, 성령의 세우심에 따라 세계 선교의 첫 문을 연 선교사가 되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교회를 다른 분들께 맡기고 선교지로 떠났던 것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9:15)“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 ‘구원과 할례’에 대한 교회의 다툼/논쟁을 해결했다. (행15:1-11).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 교리적인 문제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자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을 찾아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오늘도 지 교회들의 문제는 상위 기관에 호소해 해결함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 상위기관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에 판결의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신19:17)”

바나바와 바울은 다툼이 있었느나 좋은 해결을 보았다(행15:36-41)
교회 일을 하면서 서로가 다른 의견(주장)을 갖게 될 때가 있다. 이럴 때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나바와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떠나는 과정에서 심한 의견충돌이 있었다. 1차 선교여행 당시 함께 갔던 마가라는 요한이 선교여행 도중에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2차 선교여행을 떠나며 바나바는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바울은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주장해 서로 다투게 됐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저들이 선교 여행을 중단하지 않고 새로운 합의와 출발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감으로 두 선교팀이 만들어졌으니, 선교의 배가운동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훗날 로마 옥중에 있던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2)”라고 편지를 썼다. 바울이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함에는 ‘마가의 복음사역을 인정하며 지난날의 자신의 편견을 용서 받으려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우리가 지금 당장 저 사람이 필요치 않다고 무시하고 도외시 한다면 훗날에 후회하는 때가 오게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언제 그 사람을 변화시켜 사용하실지 모른다. 실로 사울이 믿는 자들을 잡아 핍박하고 있었을 때, 어느 누가 훗날에 바울이 저토록 주의 복음을 위한 위대한 사역자가 될 줄을 알았겠는가?

필자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바나바와 바사바를 같은 인물로 보고 싶다.
성경에 많은 인물은 여러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베드로(페트로스=헬라어)는 예수께서 시몬에게 지어주신 이름이다. 이를 또한 ‘게바’(케파스=아람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돌, 바위라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시몬을 부를 때에 ‘바요나(마16:17, 요나의 아들) 이라고 부르기도 하셨고, 요한의 아들(요1:42)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 베드로, 게바, 시몬은 동일인이요, 그 부친이었던 요한은 요나와 동인일이었다. 또한 아굴라의 아내인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와 동일인이며, 열두제자 중의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동일인이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다른 이름을 가졌지만 동일인인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바나바라는 이름은 주님의 제자들이 불러준 별명이었으며, 그의 본명은 요셉이다. 바나바 이름의 의미는 ’권위자‘라는 뜻으로 권위 있는 사람(Authority)이란 뜻이 아니고 ’권면과 위로의 아들(Son of Encouragement)‘이란 뜻이다. 비슷한 이름으로 사도행전 1장 23절에 기록된 바사바'라는 사람은 가룟 유다 대신해 12제자에 들어갈 자로 추천된 사람이다. 제비뽑기를 해서 맛디아는 당첨되었고, 바사바는 탈락되었다. 이 바사바라는 의미는 ’안식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별명이었고, 또 다른 별명인 유스도라고도 불렀지만 그의 본명 역시 요셉이었다. 그러므로 필자의 견해로는 바나바나 바사바는 동일인이다고 본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으로 제자들이 별명을 바나바로 지었는데 그 전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기 이름을 ’예수의 사랑받는 그 제자(The disciple whom Jesus love)'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바사바가 제비뽑기에서 탈락되자 많은 믿음의 동료들이 위로하며 격려했고, 바사바는 이들을 도리어 위로하고 격려하였기에 바사바(안식의 아들)가 아닌 바나바(권면과 위로의 아들)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고 본다. 교인들 가운데 장로나 권사, 안수집사 선출에서 탈락되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직분이 내게 맡겨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 꾸준히 행하는 겸손하고 성실한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교회가 필요로 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바나바는 결코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자기의 밭을 팔아 전액을 바쳤다. 그러기에 바나바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연히 칭송받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 옆에서 보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도 그런 명예(결과)를 얻고자 바나바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리고 자기들도 땅을 팔아 바쳤는데 그 값을 속여 얼마나 감추었고 이로 인해 죽음을 면치 못했다.(행5:1-11) “욕심이 잉태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참된 신앙인은 결과만을 추구해 일등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자들이 아니요, 매일 매일 삶의 과정을 중요시하며 은사(재능)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또 그리스도와 항상 기도로 교제하며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삶에 적용시켜 살아간다. 주님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자들은 분명히 그날에 의의 면류관(딤후4:12)과 생명의 면류관(약1:12, 계2:10), 영광의 면류관(벧후5:4)을 얻게 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