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염려, 과도한 두려움, 잘못된 오해를 갖고 있었다면 이제 이슬람을 정확히 보자. 2010년 애틀랜타지역 목회자 세미나 ‘이슬람 어떻게 볼 것인가’ 집회가 22일과 23일 양일간 실로암교회(담임 신윤일 목사)에서 진행됐다. 이슬람의 정확한 이해와 대처방법을 소개한 이번 세미나에는 지역 목회자와 선교사들, 선교 관심자들 약 70명이 참석해 귀를 기울였다.

세미나를 후원한 인터콥 애틀랜타지부 이미 집사는 “이번 세미나와 지역교회 집회를 통해 애틀랜타 지역의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최바울 선교사님을 통해 이슬람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더 많은 관심을 일으키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첫 째날 두 번째 강의에서 최바울 선교사는 ‘이슬람의 교리, 역사, 전도법’을 전했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는 예수님에 대한 부정이나 비난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위대한 선지자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언급한 그는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무신론자들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이들도 기독교인들을 포교의 대상으로 삼고 전도하려고 애쓴다. 이슬람의 기본 교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죽으심, 부활하심을 조금만 설명해주면 당장은 전도가 되지 않지만 스스로 묵상하고 명상하는 가운데 진리를 깨닫고 한 명씩 돌아올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히 아는 성도들을 양육하자”고 권면했다.

마지막 강의는 내일 오전 11시에 ‘이슬람 국제운동과 글로벌 지하드’를 주제로 진행되며, 이에 앞서 질의응답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음은 세미나 내용 요약

이슬람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나?
왜 이슬람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 알아야 하고, 이슬람은 도대체 뭘 가르치나 알아야 그들을 제어할 수 있다. 무하메드(Muhammad)가 무슨 생각으로 이슬람을 만들었나 알아야 한다. 또 이슬람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나 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동에 가면 무슬림들은 외국인들에게 늘 포교하려고 한다. 전체가 무슬림 집단이라 외인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만나면 전도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슬람권에 가서 공격적 선교를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떼거지로 온다.

외인을 만나면 즉각 종교를 믿는다. 무신론자라고 하면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정신 없는 놈 취급한다. 어릴 때부터 서양에 가면 타락한 인간들이 원숭이가 사람 된다는 진화론을 이야기 한다고 교육하니 이해를 못하고 상대를 안한다. 불교신자라고 하면 얼굴이 발개지면서 돼지 취급한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우상에 절한다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동물 같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 반면 크리스천이라고 하면 형제라고 반가워한다. ‘당신 코란 읽어봤소?’ ‘무하메드는 어떻게 생각하오’ 묻는다. 이들의 포교대상은 크리스천이다.

한 이슬람 지도자가 2005년에 한국 와서 깜짝 놀랬다. 밤에 보니 서울에 십자가가 널렸으니 이렇게 우리 형제들이 많다니 하면서 감격하고 일본에 있던 선교사들을 불러서 한국선교하자고 했다. 지금 한국에 이슬람 선교사들만 3만 명이다. 한국에서 해외 보낸 게 2만 명인데…한국은 금방 끝낸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선교사들은 주로 큰교회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선교센터나 기독교 대학에서 포교한다. 이슬람들은 결혼할 때 신자 이외에 이교도와 결혼하면 죽는다. 딱 하나 크리스천이랑 하면 괜찮다. 그래서 한국에 오는 이슬람 선교사들이 교회에서 신실하고 똑똑한 노처녀 자매들과 결혼한다. 이슬람에게 예수 믿냐고 하 면 다 믿는다고 한다. 찬양도 한다. 이들이 적대하는 것은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역사적 기독교, 기독교 제도, 중동 석유를 탐배는 서구세력을 싫어하는 것. 이 둘을 분리해야 한다. 기독교인 자체는 좋아한다.

이슬람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라고 믿는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미친 사람이라 한다. 자신을 메시아라 주장하다 죽임 당한 사람 취급한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로 여긴다. 아담 이래로 인간 중에서는 최고다, 그러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다. 코란에는 어찌 하나님이 아들을 낳겠느냐 어리석은 자들아 말한다. 무하메드는 예수님에 대해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며 나는 그의 신들메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하메드는 왜 예수님을 안믿고 이슬람을 믿으라고 하느냐? 경전의 권위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전은 다 하나님의 계시인데 후에 나온 계시가 앞에 나온 계시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구약, 신약, 코란 중에 코란에 가장 우월하다. 후에 나온 것이 전에 나온 것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 코란을 전달한 선지자다 한다.

아브라함도 믿는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유대교나 기독교보다 권위가 엄청나다. 동정녀 마리아의 성령잉태도 믿는다. 예수님의 이 땅에 사심과 기적을 믿는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 위를 걷고 소경을 눈 뜨게 하는 것도 다 믿는다. 우리보다 과대하게 믿는다. 그런데 죽으심은 믿지 않는다.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이 어찌 인간 손에 죽겠는가 한다. 죽지 않았으니 부활도 없다. 무슬림들은 바로 승천하셨다고 믿는다. 그럼 죽은 건 누구냐? 가롯 유다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바리새인들이 왔을 때 그 순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시고 기적을 베푸셔서 가롯 유다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죽게 했다. 감히 위대한 예수를 판 놈이니 저주 받아 마땅하다 한다.

그리고 강림하신 성령이 바로 나 무하메드라고 한다. 요한복음에서도 오시리라 약속하신 성령, 보혜사 성령이 나다. 크리스천드링 묻는다. 당신은 영이 아닌데? 이들은 성령의 영적인 면보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케 하는 헬퍼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온전케 하는 헬퍼로 무하메드가 왔다고 한다.

한국에 이슬람이 퍼져나가면 헷갈릴 사람 많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믿으세요 해서 믿는다. 예수님을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성만찬식, 삼위일체를 이야기하니 복잡하지만 어쨌든 믿는다. 그러다 이슬람이 등장하니 아주 간단하고 마음에 드네 하고 돌아선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도하지 예수님으로 전도하지 않는다. 세계적 종교논쟁은 예수가 메시아냐 구세주냐가 핵심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린 이런 식으로 교인을 양육시킨다. 구원받은 자들은 많으나 취약하다. 이제는 예수님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무슬림들은 생활 자체가 종교적이다. 제일 심한 욕도 돼지 같은 놈이다. 이슬람 선교사들이 한국말 배워서 기도하면 같은 하나님 이름으로 하니 은혜가 넘친다. 문제는 예수다. 초대교회 사도행전에 나오는 죽고 살아나신 예수를 전해야 한다.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 사람보기 좋게 접근하던 시절은 끝났다. 우리가 하는 것을 세계적인 틀에서 객관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한국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예외적이고 특수적인 상황에 있다. 몇몇 나라만 하나님이 창조주냐 아니냐를 놓고 싸운다. 진짜는 예수가 누군가를 놓고 목숨을 거는 것이다.

이슬람도 예수를 믿는다. 심판자들이 마지막에 오는데 예수도 오고 그 옆에 무하메드도 온다. 성령을 왜곡 시킨 것과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 빼고는 대충 다 믿는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안믿으면 구원이 없다.

무슬림 전도법
어떻게 이들을 전도해야 할까. 두 가지는 손대지 말아라. 코란과 무하메드 부정하면 전도는 해보기도 전에 돌에 맞아 죽는다.

무슬림을 만나면 묻는다. 당신 예수 믿냐? 그럼 당연히 믿는다고 한다. 안믿는다는 사람은 없다. 안믿는다고 하면 위대한 예수를 안믿어?하고 자기들이 죽인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동정녀 마리아에 성령으로 잉태됐는데 다른 선지자들과 달리 왜 예수님만 아버지 없이 마리아의 몸에 독특한 형태로 오셨을까 묻는다. 그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전능자가 뭘 못하시냐 대답한다. 그래도 이렇게 독특하게 하실 때는 뭔가 특별한 뜻이 있지 않았을까 되물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한다. 엄청난 진보다. 그럼 그 특별한 뜻이 뭘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그건 아주 특별한 뜻인데 바로 죄 없는 자로 오시기 위함이다. 어 그런가? 코란에도 예수님이 죄 있다는 말은 하나도 없다. 무하메드도 자신을 죄인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고 죄없는 분으로 오시기 위해 특이한 방법을 택하셨다. 그럼 왜 죄 없이 오셔야 했을까? 내가 어떻게 아냐? 죄 있는 자들을 위해 대속제물,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인간의 죄를 위해 부활하셨다. 그럼 즉각 말도 안된다고 반박한다. 어릴 때부터 위대한 자가 죽었다는 것,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걸 허락하냐고 저주받을 소리라고 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듣는 순간 모든 게 원위치다. 그럼 말한다. 인간의 죄가 어떻게 용서받는 줄 아냐? 죄인이 어떻게 사함받고 천국가냐? 나를 위해 다른 죄 없는 자가 희생해야 한다. 일년에 한번 유월절에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냐. 왜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냐. 그럼 그건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베풀기 위해서다, 관습이다 한다. 그럼 그런 관심을 굳이 57개 이슬람 국가에서 일년에 한번 같은 날 하나. 그리고 양을 잡을 때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놓고 양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전가시키고 잡냐? 이는 죄의 대속아니냐. 그럼 아 그런가? 한다. 그런데 인간의 죄를 동물이 대신할 수 없다. 이건 상징이다. 인간이 죄를 대신해야 하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우를 위해 죽으시고 하나님께서 살리사 부활하신 것이다. 그럼 가만히 있다. 사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수천년전부터 하던 것을 따라하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유대인하면 학을 뗀다. 증오한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때부터 유대인들이 해온 변개치 못할 대속의 행위다.

여기까지 하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예수님은 그럼 특이한 방법으로 오셨는데 사람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냐? 그러면 그래도 하나님은 아니다 사람이지! 답한다. 그럼 사람이라고만 하긴 좀 그렇지 않냐. 그러면 어쨌든 하나님은 절대 아니야. 그래서 우리도 이분을 뭐라고 부를지 엄청 고민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가로되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두번이나 직접 음성이 들렸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렀다. 그럼 가만히 있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개의 아들은 개, 토끼의 아들은 토끼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은… 뒤를 얼버무린다.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삼위일체에 대해 불편해한다. 너희가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이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 곱하기 하나 곱하기 하나는 뭐냐? 하나 아니냐. 왜 더하기만 하냐 곱하기도 좀 해라. 그리고 마침표를 찍는다. 심판자로 예수님도 오고 무하메드도 온다고 하는데 어쨌든 예수님이 대장이다. 옆에 사람하고만 친하고 대장하고 안친하면 좀 그렇다. 대장하고도 친해봐라.

동정녀 탄생을 믿고 십자가 죽음을 믿으면 기존에 갖고 있는 이슬람 신앙에 들어가 자체로 믿게 된다. 자기 모순에 빠진다. 이들은 처음엔 안믿는다. 그런데 자꾸 묵상한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돌아오고 교회가 세워진다.

무하메드가 왜 이슬람을 만들었나
그럼 무하메드가 왜 이슬람을 만들었나 보자. 원형의 사건을 보면 된다. 무하메드는 태어나기 전 아버지를 잃고 6살에 어머니 마저 잃어 고아가 됐다. 할아버지가 키우다가 돌아가셔서 삼촌 손에 자랐다. 삼촌은 작은 상인이었다. 당시 중동은 유목을 했다.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커스를 왕복하면서 장사했다. 예루살렘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안정된 문명의 세계, 고등종교 문명이 아라비아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아라비아는 당시 모래바다처럼 우상숭배가 팽배한 곳이다. 이를 보고 늘 마음아파하고 언제 이 어둠에서 벗어날까 고민한다. 그래서 메카 동굴에서 명상하고 성찰한다.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사람. 이 성격 때문에 이슬람이 복잡해진다. 식중독으로 죽어가는데 참모들이 몰려와서 후계자를 정하라고 독촉한다. 한쪽은 혈통으로 한쪽은 리더십으로 하라고 했는데 정하지 않고 죽어버렸다. 그래서 혈통으로 간 곳이 바그다드 이란쪽 시아파다. 리더십으로 간 곳이 메카 중심의 아라비아, 수니파다. 아직까지 싸운다.

묵상하고 명상하는데 신의 계시가 들려왔다. 읊어라 하나님의 계시를 너는 선지자니라. 무서워서 동굴에서 튀어 나왔다. 혹시 해서 다시 동굴에 가니 같은 말이 들렸다. 겁을 먹고 집에 왔는데 아내가 뭘 두려워하시오 당신처럼 의롭고 정직한 자를 신이 들어 사용하거늘 당장 돌아가시오 해서 돌아가서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슬람을 이해하려면 이 부인 하드자를 이해해야 한다. 이 여자는 당시 갑부의 부인이었다. 7-800마리 낙타를 이동하는 대상인이었는데 오아시스를 거쳐 예루살렘을 가는 길에 무하메드가 눈에 띄었다. 이 청년을 흠모하다 마침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되버리니 무하메드를 불러 사업을 맡긴다. 그리고 결혼한다. 당시 여자는 40대, 무하메드는 20대였다. 하드자가 죽고 무하메드는 닥치는 대로 여자를 얻어 공식적으로는 14명, 비공식적으로는 40명의 여자를 거느린다. 아라비아는 돈으로 여자를 사는 풍습이다. 돈만 있으면 된다. 코란에는 그래서 4명까지 아내를 얻어도 된다고 한다. 마지막 성모라고 기록된 여자는 아이샤라는 사람. 무하메드가 6살이었을 때 아내로 맞으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서 9살 되기까지 기다려 무하메드 나이 52세에 결혼한다. 이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무하메드가 정말 신의 계시를 들었을까? 무하메드는 당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종교를 하나 만든 것. 유대교를 전하고 싶었는데 유대인들이 우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싫어했다. 그래서 원수가 됐다. 메카에서 이슬람 전파하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무하메드는 기독교인들은 좋아했다. 기독교 성직자 14명이 아라비아를 여행하다 무하메드가 이 소식을 듣고 모셔다 극진히 대접했다. 성직자들은 무하메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을 선지자라고 하니 좀 떨떠름했는데 어쨌든 확인해보자 해서 초청에 응했다. 식사 중에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다. 위대한 선지자다 했다. 그럼 당신은 자신을 선지자라고 하는데? 그러니 맞소, 하나님께서 나를 이 불쌍한 아라비아인들을 구하라고 선지자로 사도로 세우셨소 대답한다. 그러니 성직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무하메드가 붙잡았지만 대꾸도 안하고 나갔다. 그리고 나서 기독교에 대해 태도가 바뀌었다. 적대적이다.

이 사건을 80년대 처음 접하고 마음이 답답했다. 당시 내가 성직자라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성직자들이 교제의 끈을 갖고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설명했다면 무하메드는 이슬람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형제관계가 됐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