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개 북한인권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이하 인권위),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위한 국제의원연맹(대표 황우여 의원, 이하 IPCNKR) 등 민관 공동의 입장을 담은 북한인권 보고서가 최초 발간됐다.

보고서는 19일 오후 서울 정동 컨퍼런스 하우스 달개비(구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기자회견에는 서경석 목사(기독교사회책임) 등 북한인권 운동가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달 14일과 15일 양일간 개최된 북한인권문제정책협의회를 통해 탄생했다. 인권위 등이 공동 주최한 협의회에는 국내외 48곳의 북한인권 NGO들과 통일부·외교통상부, 통일연구원 등 정부기관, 국회의원 등이 참석해 심도깊은 논의를 거쳤다.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제성호 인권대사 등도 함께했다. 관계자는 “이러한 보고서가 나온 것은 초유의 일”이라며 “이번 보고서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북한 현실에 대한 인식 △북한인권문제를 보는 시각 △북한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에 대해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인권문제 제기 △탈북난민 강제북송 저지를 위한 국내외 운동의 활성화 △북한을 정확히 파악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 △납북자 및 국군포로의 송환 △중국 내 탈북자 인권증진과 탈북자 구출활동 활성화 방안 △탈북자 정착을 위한 정책 △북한인권운동 활성화를 위한 중요 실천과제들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북한 주민들 인권 개선 기여하는 조건부 지원 펼쳐야

이들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일반 주민들에는 거의 주어지지 않고 당·정·군 등 권력 집단들에게 배급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지금은 북한 정권이 외부 경제지원 없이는 견딜 수 없어 밖으로부터의 압력이 가능해졌다고 진단했다. 아사(餓死) 발생이나 결핵 등 생명 유지와 직결된 긴급구호 외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은 핵문제 및 북한인권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화폐개혁 실패로 다수 인민들의 지지를 잃은 김정일 정권의 억압체제를 유지·강화시키는 대북 지원이 아닌,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기여하는 조건부 지원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차제에 북한 정권을 통한 지원 방식이 아닌, 탈북자나 조선족을 통한 지원방식 등 다양한 지원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북한 주민들을 살리면서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장(市場)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장터에서 싼값의 식량과 생필품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 방안으로 북한 주민들과 직접 교역이 가능한 한(漢)족이나 조선족, 몽골인과 러시아인들과 교역하면서 이를 공급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앞으로 이 방법은 북한 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가장 실효성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시민단체들은 북한 주민들 스스로가 인권개선의 주체가 되게 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북한인권기금을 만들어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초기 지원금 중 3백만원은 구출비용으로 선지출을

탈북자와 중국 내 난민들에 대한 인권문제도 주된 의제다.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중국 내 탈북여성들을 위해 중국 민간단체들의 협력을 받아 탈북여성들이 중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길을 내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정부가 향후 2년간 탈북자 2만명 입국을 목표로 입국 후 일시불 지원금 중 3백만원을 본인 구출비용으로 책정, 빠른 입국이 가능토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활에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도 증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중국 내 탈북여성들과 탈북인 2세 고아들을 돕는 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중국 내 탈북자들이 정부 공인 NGO의 협력으로 중국에서 임시거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으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의 주요 경유지인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와 베트남, 미얀마 등 동남아 5개국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탈북자에 대한 직무유기와 복지부동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도 촉구했다. 이를 위해 인권위가 참여하는 관민합동 탈북자 실태조사단이 현지 대사관에 파견돼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미연해 방지하기 위해 각 대사관에 탈북자 담당 옴부즈맨(ombudsman) 제도를 도입하고,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을 돕는 하나원 교육방식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무조건적인 지원 등 탈북자 현실에 맞지 않는 지원대책을 수정하고, 납북자와 탈북자 강제송환 반대 등을 공동관심사로 한·일간 긴밀한 협력을 통한 북한인권 연대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G20 개최되는 11월 북한인권 개선여론 전세계 확산시킬 기회

전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오는 11월 G20 정상회의 때를 북한인권 문제를 홍보할 최상의 기회로 여겨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이때 세계인권대회와 북한인권 민간법정, 북한인권 엑스포, 북한인권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특히 탈북자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집중적인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국군포로 및 전쟁·전후 납북자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평화협정 회담을 대비해 이들 문제가 먼저 해결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6·25 60주년인 올해 전쟁 납북자 유해송환 문제가 크게 부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6자회담 등 대북지원과 남북간 협상의 모든 단계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협상이나 평화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아니다”며 “평화우선주의·평화지상주의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대가로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한국인의 생명과 재산만을 보장받으려는 이기적인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 북한 해방을 꾀하는 북한 민주화운동이 있는 반면, 하루빨리 북한 독재가 종식돼야 하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한반도 긴장 상황을 관리하고 북한과 대화·교류해야 하는 필요 때문에 북한인권과 한반도 평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입장 등 두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며 “이 두 입장은 서로 대립이 아닌 역할분담과 상호협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밖에 북한인권 인식 고취를 위해 인권단체들은 대(對)국민 교육활동에, 정부는 문화예술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인권단체들은 “이번 민관합동 정책협의회가 북한인권운동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됐다”며 2010년 올해를 북한인권운동의 획기적 발전이 있는 해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