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합니다. 남편은 단기선교팀과 함께 치리뽀 산중으로 떠나고 6학년인 아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 텅 빈 집의 집지기처럼 혼자 남았습니다. 햇빛은 두께를 알 수없는 구름의 벽에 갇혀 시계가 없이는 도저히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둑한 낮입니다.

전기 조차 가버린 집 안에서 조금 전에 사용했던 전화기를 어디다 두었는지 찾다 보니 어느 새 어둠이 집안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책상서랍을 뒤지다가 ‘엄마, 이게 왜 여기 있어?’ 하며 전화기를 꺼내 주지 않았으면 밤 새도록 끙끙거려도 못찾을 뻔 했습니다. 비만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덧 제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나이에 접어 들었습니다.

인생의 중반 지점인 마흔 살의 고개를 갖 넘을 때엔 허겁지겁 오르던 길을 뭔가에 쫓겨 벼랑 끝으로 떠밀리는 듯한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거부할 수없는 시간에 이끌려 정신없이 내리닫다 마흔의 후반부에 다다르니 어느 덧 인생을 달관한 듯한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걷잡을 수 없이 하강하던 낙하산의 날개가 펼쳐진 듯 풍향따라 유유히 비행을 즐기는 기분입니다. 하여 세상적인 부질없는 욕망은 스러지고 다만 하루하루의 삶이 감사로 충만합니다.

인위적으로 성취할 수있는 것의 한계를 깨달아 삶의 전부를 하나님께 의존하는 가난한 마음이 넓어집니다. 책상 위에 놓여진 돋보기 안경, 서랍 속에 들어 있는 전화기, 흑발이 듬성한 머릿칼, 흑인 같은 피부색, 얼굴에 잡힌 굵은 주름, 잇몸이 대신하는 치아, 때때로 바위에 깔린 듯 짖누르는 육신의 통증이 오히려 감사한 것은 외롭고 험난한 이방에서의 삶을 지금까지 힘겹게 헤쳐 나온 흔적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 핍박받는 자들과 함께 하신 주님의 행적 그대로 예나 지금이나 복음은 뿌려집니다. 베드로처럼 야고보처럼 고기잡이나 하던 범인들을 택하셔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신 그 분의 은혜로 부름받은 저희도 한결같은 초심으로 사역을 추려 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역으로 쉴 틈없이 분주한 삶이 육체적으론 피곤하나 영적으론 풍성한 주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금년까지 저희의 주 사역인 까베까르 인디언 구역에 10개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까베까르 부족은 이 땅을 침입한 스페인계 백인들의 공격으로 인한 몰살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해발 3800미터의 치리뽀 산악 지대로 도망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인디언족입니다.

특히 지난 4월엔 금년까지 5차에 걸쳐 치리뽀 사역을 동역하고 있는 미국인 교회인 퀸시 제일 장로교회를 주축으로한 의료팀의 후원으로 치리뽀 제 1교회 옆에 클리닉을 완공하였습니다. 의료 시설이라곤 없어 우기만 되면 정체 불명의 비루스의 침입으로 고열, 설사로 시달리다가 맥없이 죽어가던 어린이들, 문명 세계를 들락거리다가 전염된 수두를 홍역처럼 되게 치르는 치리뽀 인디언들의 건강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산호세 선교센타의 창세교회와 과나까스떼 지방의 필라델피아 교회도 꾸준히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산호세 선교센타는 매달 방문하는 단기 선교팀으로 요즘 부쩍 활기가 넘칩니다.

연중 찌는 듯 무덥고 가난한 나라, 니카라과 사역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달 한 두 차례씩 현재 거주지인 코스타리카에서 자동차로 왕복 20시간 거리의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로 달려 갑니다. 중미의 최빈국, 최저 월급이 50달러 선을 넘지 못하고 그나마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에 선교센터를 건축 중입니다. 수 년 전 할퀴고 간 허리케인 미취의 상처가 치유되기는 커녕 덧나서 아직도 대부분의 수재민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져 음식을 찾고 있습니다.

도시엔 10대 20대의 유효인력들이 넘쳐나고 있으나 일자리가 없어 무위도식하고 좀도둑과 스리꾼들이 판을 칩니다. 신호를 받고자 정지한 차의 부품을 감쪽같이 뜯어 가는가 하면 길가에 세워둔 자동차 바퀴를 빼가기도 합니다. 1달러를 벌기가 힘든 이 나라의 경제적 상황에서 무직인 청소년들의 소일거리란 어쩔 수없이 도둑으로 내몰고 마는 것입니다. 할 일이 없어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패싸움이나 하고 남의 자전거를 훔치며 닭을 훔쳐가던 한국의 70년대 시골 청년들이 생각납니다. 이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니카라과 사역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골 지역인 떼꽈나메와 산타 로사에 교회가 건축되어 예배를 드리고 있고 수도인 마나과에도 예배 처소가 마련되는 대로 본격적인 교회 개척을 시작할 것입니다. 현재 코스타리카와 니카라과 양국의 중,고,대학생 4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장차 이들이 양국의 기독교계를 짊어질 큰 일꾼들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나과 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전체 50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으로 기도중입니다. 사역을 해 볼수록 신실한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비어 있는 국토만큼이나 선교할 일이 많은 것이 니카라과입니다. 아직도 선교사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정글 지대와 인디언 지역, 정부 반군들의 거주지가 있고 시골 벽지에도 교회가 없는 곳이 허다합니다.

금년에도 미주 지역에서 많은 단기선교팀이 저희 사역에 동역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역에 큰 진전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오랜 세월 황폐한 선교지에서 지칠 대로 지친 저희 부부에게 동족에게서 느끼는 정서적 교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게다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러가지 한국 음식을 맛보는 절호의 찬스이기도 합니다.

둘째 아이의 선물로 오는 한국 과자는 정작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저희 부부에게 환영받는 특식입니다. 음식 맛은 옛 추억을 정확하게 일깨우는 기억이 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가차없이 살아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향수병에 걸릴까 염려하기엔 이미 저희는 너무나 띠코(코스타리카 사람)화 되었습니다. 사역을 시작한 이후로 한국인이라고는 저희 가족 뿐이고 항상 현지인들과 어울리고 현지어를 사용하다보니 한국어가 잊혀져 가고, 한국어가 잊혀지는 만큼 한국적인 것과는 깊은 괘리감이 형성된 듯합니다.

(1) 코스타리카의 12개 교회, 니카라과의 3개 교회의 영적 부흥과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신설된 니카라과 사역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무더운 날씨와 무리한 사역으로 심신이 지치다 보니 자동차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안전 운전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저희 가족을 위한 기도도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저희 웹 싸이트: www.misionla.com도 자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남기신 따뜻한 한 마디는 외롭고 힘든 삶에 새 힘을 솟게 합니다. 저희 또한 여러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에 어떤 상황이던 소망을 잃지않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코스타리카 선교사 박성도 박순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