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자가 2009년 9월 29일 오전 8시 30분으로 잡히고 2시간 전에 올 것과 전날 저녁에 할 일 들에 대해 지시를 받았다. 약으로 치료가 안 된다기에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지 하면서도 소극적이었다. 왜냐하면 수술이라는 말에는 우선 거부반응이 앞섰다. 전신이든 국부 마취든 나이가 많을수록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 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말을 들었고 또 가까운 친구 의사의 말이 가능하면 수술은 안 할수록 좋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한계점에 도달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픈 강도가 심해져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수술 날자가 잡힌 날부터 불안해졌다. 내 나이에 마취는 부담이 되고 또 수술의 성공률은 50%라는 의사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수술을 미룰 수도 안 할 수도 없고 날자가 다가올수록 불안의 강도는 심해져 수술하다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에 무게가 실렸다.

그렇다면 그 한 달 동안에 무엇을 하지?! 쏘크라데스는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지자 옆집 사람에게 갚지 못한 닭 한 마리 값을 제자들에게 부탁했듯이 나도 남에게 갚아야 할 빚이 없는지 또 내가 받아야 할 것은 없는지? 더욱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거나 경제적 손해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지, 더욱 내가 남에게 잘못 한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아야 하고. 또 있다. 혼탁한 세상에서 서로 흙탕물을 튕기며 산 과거를 돌아보며 크고 작은 죄도 하나님 앞에 서서 재판 받을 때 혼나지 않으려면 지금 회개해야 되겠다. 서나 앉으나 떠나지 않는 죽음에 대한 생각, 또 한잠 자고 깨어 나면 얼마나 오래 이 침대에서 잘 수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과 벗들을 두고 떠나게 되는구나, 더 살고 싶은데.. 등등 몇 번이고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창문이 환해진다.

어느 날 정리된 내 생각을 아내에게 말하고 또 몇 가지 부탁도 했다. 유언은 꼭 숨이 넘어갈 때에 한 말 만이 아니고 죽음을 앞두고 한 말도 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다윗 왕은 후계자 아들에게 주위에 있는 누구는 믿을 수 있으나 누구누구는 믿을 수가 없으니 곧 척결하라는 암시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서에게 "담배있나?" 가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말이지만 그전에 남긴 메모에 "누구를 원망 하지 말라"가 유언으로 봐야 하는 것 처럼 나도 많은 생각 끝에 한 말이 유언일수도 있었다.

드디어 수술 받는 날, 정해진 시간에 수술비 내는 일부터 몇 가지 수속을 끝내고 대기실에서 환자 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자 집도할 의사가 나타나서 나에게 뭣이 문제가 되어 아프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어떠한 방법으로 수술을 하게 된다는 취지, 시간은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는 질문이 있으면 하라는 말에 "잘 부탁합니다" 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의사를 유심히 처다 보며 이 사람에게 내 생명을 의탁해도 되는가? 매일 되풀이되는 일 중의 한 일로 생각하고 성의없이 하다 사고는 안 낼까? 그 사이에 간호사가 내미는 종이에 싸인을 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의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곧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사랑하는 아내도 같이 있는 딸도 못 들어간다. 오직 나 혼자다. 물론 그 곳에는 간호사나 보조 의사 몇 분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한결 같이 병원 쪽에 유리하게 증언 할 사람들이다. 정말 나를 보호할 사람은 없다.

나는 다시 한 번 고독한 자신을 돌아보았다. 세상에 올 때도 혼자 오듯 갈 때도 혼자 가는 구나 부모도 아내도 자녀도 내가 가는 길에 동행 할 수도 멈출 수도 없구나! 오직 수술실로 들어갈 때 초조한 얼굴로 "기도할게요" 한 아내의 말이 힘이 되었다. 간호사가 마취제를 팔뚝에 꽃는다 곧 몽롱해 진다. 의사가 수술을 시작했다. 나는 어느 정도 의식이 있어 옆 눈으로 스크린에 비추이는 그 과정을 보았다. 가는 반지 모양의 코일이 한 개 두 개 심지어 10개나 들어갔다. 수술이 끝났다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자 한 직원이 침대를 밀고 회복실로 갔다. 약 2시간이 걸렸다. 아내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몇 번 오고 가다 되돌아왔다. 몇 일 안정을 취하라는 조언을 들으며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2~3시간 푹 잔것 같다. 딸이 운전하는 차에 실려 다시 못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내 침실에 들어왔다. 왜 수술받는 것을 겁냈을까? 더욱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가는 것을 믿으면서! 나 나름대로 이런 궁색한 대답을 한다. 의료사고가 25-30%가 된다는 통계다. 내가 그 의료사고 속에 들어가 헛된 죽음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지금은 천당에 갈 준비가 안 되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오래 살면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