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은 60여년간 2천5백만 주민들의 인권을 짓밟은 채 생존권마저 앗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현 상태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인권을 짓밟는 북한당국과 대화하거나 협력해서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가 북한인권 문제에서는 존재하고 있다. 26일 평화재단 주최로 열린 제32회 전문가포럼은 이처럼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 효과를 위한 제안’들을 내놓는 자리였다.

김수암 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방향-북한당국에 대한 접근’ 논문에서 이러한 북한당국에 대한 접근방향과,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 인권개선 전략을 발표했다.

김 연구위원은 “북한인권 개선운동 및 정책은 북한 주민 개인의 권리 침해를 구제하고 예방하며 증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며 “그러나 북한은 주민들이 개인의 권리를 쟁취할 여건과 인식이 전혀 조성돼 있지 않았으므로 북한당국의 전략 및 정책 변화, 궁극적으로 체제성격 변화가 전제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인권이 개인의 문제이지만, 북한의 경우 체제와 밀접하게 관련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도기적 전략으로 당국의 전략과 정책 변화를 유도하거나, 본질적인 전략으로 체제 성격이 전환되고 시민사회가 형성되도록 지원하는 두 가지 접근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도기적 접근이란 인권유린 당사자인 북한당국이 인권개선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이중성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의를 해 나가는 접근 방식이며, 본질적 접근은 개인의 권리 개선을 위해 체제 성격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다.

김 연구위원은 그러나 “북한 사회는 우리식 사회주의, 수령 중심 유일지배체제 및 이를 유지하기 위한 폭력적 통제기제 등으로 시민사회 형성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인권 유린의 근본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체제와 정권의 성격으로 인해 인권이 유린되는 요인에 대해서는 중장기 전략 관점에서 체제 성격 변화 중심으로 접근하고, 체제 성격 변화 없이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요인에 대해서는 전략과 정책 변화를 유도하며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유린, 결국 수령체제 유지 위한 방편일 뿐

체제 성격 변화 없이도 가능한 정책 요인에 대해서는 압박과 포용이라는 전략 아래 결의안을 채택하거나 캠페인을 펼치고, 인도적 지원에 따른 인도주의 원칙을 강화하며, 보편적 인권 정례검토(UPR)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밝혔다. 또 법치 강화를 유도하고 개발과 인권의 통합을 위한 북한 내부 여건을 조성하며, 이를 위해 지방으로까지 개발지역을 확대하고 북한 주민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차적인 차원에서는 우호적인 외부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핵무기·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간 신뢰를 구축하며, 정전협정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하는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은 북한인권운동가들과 국제사회에서 꾸준히 해 오던 것이어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으며, 결국 수령중심의 유일체제가 붕괴되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가장 빠른 길임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평가다.

포럼에서는 김수암 연구위원 외에도 이승용 사무국장(좋은벗들)이 ‘북한인권 실태와 논의동향’, 김동균 변호사(법무법인 다산)가 ‘북한인권 개선활동의 현황과 쟁점’, 김원식 연구위원(국가안보전략연구소)이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방향-북한주민에 대한 접근’, 정태욱 교수(인하대)가 ‘미국 인권외교의 흐름과 방향’ 등을 발표했다. 토론에는 이영환 팀장(북한인권시민연합), 손광주 편집장(데일리NK), 정욱식 대표(평화네트워크), 김근식 교수(경남대), 유호열 교수(고려대), 현성일 연구위원(국가안보전략연구소) 등이 나섰다.

이사장 법륜 스님은 “한반도 긴장위기를 점차 가속화하고 있는 북한과 아직 한반도 정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관대한 무시’ 전략으로 마찰과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인권문제는 당분간 중요 의제로 떠오르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오히려 지금이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낼 연구가 필요한 때”라는 말로 포럼 취지를 설명했다. 법륜 스님은 “미국의 북한인권 개선노력은 북한당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적절한 노력은 북한인권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