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을 위해 가톨릭과 불교의 의견은 청취했으나, 기독교 쪽은 교파가 많아서 어떻게 의사를 확인해야 할지 몰라 의견을 듣지 못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된 소위 ‘존엄사’ 판결의 서울서부지법 1심 판사가 했던 말이다. 새세대 교회윤리연구소가 출간한 <존엄사, 교회에 생명의 길을 묻다(북코리아)>는 어쩌면 판사의 이 말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발간됐는지 모른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기 두 달 전인 지난 3월 발간된 이 책은, 이제 ‘존엄사’를 당연시하고 분위기를 조성해가는 사회 각계에 던지는 메시지인 동시에, 이 시대 오피니언 리더 중 하나인 기독교계가 생명윤리에 쏟고 있는 관심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묻고 있다.

소위 ‘존엄사’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90% 이상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 상황에서 문시영 철학박사(남서울대)를 비롯한 5명의 저자는 존엄사라 불리우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What)부터 따져 나간다.

존엄사, 정말 소극적 안락사와 다른 것일까?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장인 문시영 박사가 쓴 ‘문제의 자리-존엄사: What, Why, and How?’에서는 “그것은 간단하지 않을 뿐더러, 깊이 있는 가이드가 필요한 문제다. 더구나 존엄사 자체로 끝나지 않고, 안락사와 논리적으로 연계되며 심지어 유럽과 미국의 사례처럼 ‘의사 조력자살’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의 말대로 “이 모든 논란의 핵심에 생명의 존엄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생명주권에 대한 해석 문제, 그리고 경제적·사회적인 현실 문제들이 얽혀있다”는 것 뿐이다. 의사들을 중심으로 소위 ‘존엄사’가 안락사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박사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소극적 안락사’ 혹은 ‘존엄적 안락사’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경우”라며 “그동안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같은 의미로 봐 왔지만, 최근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존엄사를 말기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보자는 것으로, 이를테면 안락사가 적극적으로 환자의 목숨을 끊는 것이라면 존엄사는 기계장치를 제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존엄사 신중론 혹은 반대론에 서 있었다. 존엄사는 안락사에 해당하고, 실용적인 이유로 생명의 문제를 접근할 수 없으며, 남용 우려가 크다는 이유(Why)에서였다.

“단칼에 정리하려는 성급함을 버리고, 대안에 초점을”
▲소위 존엄사 소송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났던 지난 21일 사랑의교회 소망관에서 열린 관련 세미나 모습. 판결 때문인지 많은 성도들이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하지만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 교회는 당혹스러움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는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러나 가톨릭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논쟁을 주도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톨릭은 여기에 “존엄사는 모든 식물인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과도한 치료나 예외적인 수단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것이라는 단서까지 달았고, ‘이런 판단이 남용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더 논의해서 윤리적·사회적으로 문제없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훈수까지 뒀다.

이 문제에 기독교적 대안(How)을 마련하기 위해서 저자는 먼저 “단칼에 정리하려는 성급함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합리적으로 토론하되, 대안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생전 유언(Living will)이나 사전 지시서(Advanced directives)를 포함한 자연사법 관련 논의 등 여러 주제에 대한 관점이 종합 정리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아시아적 가치관과 하나님의 생명주권에 대한 신앙적 근거, 치료비를 포함한 경제적 이유 등 현실적 요소를 고려한 실천적 대안을 중심으로 소통돼야 한다고 밝혔다.

책은 논의를 전개하기 앞서 “먼저 공부하자”고 말한다. 찬반 양론으로 양분돼 깊이가 부족한 소모적 논쟁을 계속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 먼저 활발한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을 찾고, 이를 토대로 존엄사에 관한 사회적 담론에 당당히 참여하자는 뜻에서 저자들은 소위 ‘존엄사 논쟁’에 있을 수 있는 ‘생각해 볼 문제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