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하와이에도 다녀간 바 있는, 대전 중문침례교회의 장경동 목사는 매스컴을 타는 목사다. 그가 목사인지 연예인인지 혼동까지 야기된다는데, 그런 그가 얼마 전 한 바탕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는 “내가 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 석가모니 선생도 불교를 만들면 안 되는 것 이었다”라고 지극히 공격적이고도 불교계를 심히 폄하하는 발언을 쏟아놓고야 말았다. 또한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등의 타종교를 향한 배타성 발언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게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는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소위 “종교편향”이나 “불교폄하”라는 낮선 말들이 화두로 번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 까닭에 이곳 미국의 우리 한 민족 공동체에서 조차도,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승가회가 “종교편향과 차별을 없애고 화합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자”라고 성명서를 결의하고 발표하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성명서에는 계속되는 종교편향은 결국에는 많은 불행한 전쟁들을 일으키게 되고, 동포 간에도 분열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담아놓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한 이슈로 온 민족이 심한 홍역을 앓고 있을 때, 소위 매스컴을 타는 한 젊은 부흥사의 경박한 발언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기름까지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던 게다. 그렇지 않아도 정권초기, 어려운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던 현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은 불교계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허둥지둥 대비책을 논하고 있었을 터인데, 장경동 목사까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던 게다.

이후 장경동 목사는 한 동안의 침묵을 깨는가 싶더니 “교회 안에서 같은 신자들끼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었다고 오히려 자신의 발언을 애써 변명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그런 그의 경솔한 처신으로 인하여 그는 또 결국 한 차례 더 날카로운 뭇매를 얻어맞고야 말았던 게다. 그가 출연하는 어느 방송의 한 유명 프로그램 시청게시판에는 지금도 2천개가 훨씬 넘는 비난성 그리고 야유성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있는 모습이다. 아이디 “광야”는 “장경동씨는, 최고의 부흥사입니까? 아니면 최고의 노가릿꾼입니까?” 라고 비아냥거리고 있고, 그곳에서 아무렇게나 불리는 그의 인기 별명은 아예 “장똥” 또는 “장갱동 교주”라는 표현이나 “먹사”라는 막말들로 통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가장 맨 위에 올려져 있는 댓글을 보면 아이디 “이양기”라는 사람이 이런 인신공격성 글을 거기에다 거침없이 게시하고 있음을 본다. “마음의 표상이 곧 얼굴이라. 관상만 봐도 사람의 심성을 알 수 있는 즉, 아무리 봐도 장경동 이 양반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대표적 인물 ... 속은 구린내로 가득 차 있고 ... 이 사람 얼굴이 바로 사기꾼 얼굴...”

그런데 이런 장경동 목사의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한국기독교 부흥선교협의회의 사무총장이라는 신일수 목사라는 분이 이어서 불교계를 더욱 원색적으로 비난하였다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는 한 때 최고의 인기등급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결국 그를 향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그 자신의 말대로 “웃기는 짬뽕”이 되고 말았다. 그는 불교계를 향해 “중들, 웃기는 짬뽕, 머리 민 사람들”이라는 등의 원색적인 막말을 쏟아 냈다는 게다. 그렇지 않아도 “팬티 벗어봐, 인감증명 끊어갖고 와”라는 등의 저속하고도 조폭적인 기독교 부흥사들의 언어들이 어떻게 종교적 영성을 추구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라는 공격과 비판에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있었던 터다. 더구나 “개독교, 먹사”라는 말들로 다른 종교에 비해 종교적 거룩성을 상대적으로 절하평가를 받고 있던 기독교 지도자들이 결국 영성과 수행이 미천하기 짝이 없다는 비난에도 마땅히 할 말을 잃고 쓴 웃음만 짓게 만들은 게다.

솔직히 한 동안은 그냥 농담처럼 들렸을지는 몰라도, 대학갈 실력이 없어서 신학교에 갔다든지, 다른 시험에 떨어져서 목사 시험을 보았다든지 하던 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조크로서 통용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느낌이다. 심지어 조폭들 말년에 할 짓이라곤 결국 목사짓(?) 밖에 없다고 하던 그런 농담들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농담처럼만 들을 수 없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느낌뿐이다. 감정을 제대로 절제하지도 못하고 온갖 비속어들과 저질발언으로 듣는 사람들조차 모두 다 상것들(?)의 집단으로 만드려고 드는 일부 기독교 부흥사들의 지저분한 입담이, 이제는 기독교가 더 이상 “개독교”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자초한 게다. 아니 속된 말로 그 동안은 목사가 아무리 그야말로 꿀꿀한 학꼬방 신학교를 나왔다손 치더라도 그 영성과 품위는 사회에서 대우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성(聖)과 속(俗)의 사이에서 그래도 목사라면 범인들보다는 거룩한 영성과 인텔리 수준의 품격으로 대우를 받던 시절도 있었던 게다. 그러나 그런 관대한 시선들이란 이젠 감히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제 정말 겸손히 자기 자신을 새삼 더욱 성찰하면서 회개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본다. 오늘 이 모든 문제의 원인들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단 말인가? 극도의 이기주의로 세뇌된 근본주의적 사고와 타종교를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르는 배타적 기독교의 산물은 아니겠는가? 내가 아닌 타자를 먼저 배려할 줄 아는 이타주의가 아닌, 자기 자신밖에는 모르는 기독교의 집단 이기주의와 그들의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행태에 대한 염증은 아니겠는가? 더구나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세속정치를 향한 탐욕과 출세 지향주의가 오늘의 이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든 것은 아니란 말인가? ...

그리스도인은 정말 성경대로 살아야만 한다고 본다. 거기서 말하는 “신앙의 역설”을 잊지 말아야만 한다. 오늘 모든 문제들의 처방은 바로 그 “신앙의 역설” 안에 담겨 있다고 본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라 했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하였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은 자가 되고,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십리를 동행하라”고도 말씀하였다. “미련한 자를 택해서 지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고, 없는 자 같으나 남을 부요하게 하는 자이며,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축복을 받는 자”라고도 하였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역설”인 게다. 바로 이것을 새삼 가슴에 깊이 다시금 새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