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일정을 잘 마치고 어제 돌아왔습니다. 긴 여행으로 몸이 피곤할 때 피곤해진 몸을 회복하는데는 목욕만한 것이 없는 것 같아 한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는데가 목욕탕입니다. 이번에도 도착하던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근처에 있는 목욕탕을 갔었습니다. 목욕탕 탈의실안에 들어서니 탈의실 중앙에 길게 놓인 평상(平床)에 어떤 분이 앉아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기며 혼자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혼자서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얼마전만해도 좀 이상하게 여겼지만 최근 들어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어디에서나 아주 흔히 보는 모습이어서 그날도 그냥 무심하게 그 옆을 지나치는데 얼핏 보니 그분의 손에 핸드폰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핸드폰 대신 귀에 꽂고 통화하는 리시버도 보이지를 않는 거였습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금새 “아. 이제는 아예 리시버도 필요 없이 통화를 하는 기능이 새로 개발되었나 보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무리가 아닌 것이, 요즘 한국의 핸드폰의 기능은 세계에서 최첨단이기에 그 발전 속도를 가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탕 안으로 들어가 물속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내니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한 몸이 많이 회복되는 듯 했습니다. 탕 안에 한 30분정도 있다가 조금 쉬면서 TV 아침 뉴스도 좀 볼 요량으로 탈의실로 다시 나왔더니 아까 탕에 들어가기 전부터 평상에 앉아 얘기하고 있던 분이 계속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얘기하는 게 궁금해서가 아니라 이른 아침이라 탈의실에 손님들이 거의 없어서 그분이 얘기하는 소리가 잘 들렸습니다. 그분은 아까처럼 고개를 끄떡거리기면서 연신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 옆에 앉아 10분 정도 TV 뉴스를 보다가 다시 탕에 들어가서 30분쯤 더 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나와 보니 계속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이상을 같은 자리에서 계속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쯤 되니 좀 점잖지는 못하지만 그분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져서 그 옆에 앉아 TV를 보는 척하면서 얘기를 엿들었습니다. 얘기의 내용은 우리나라 증권 시장의 현황과 여러 재벌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정부 각 부처와 역대 대통령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사회 각 분야마다 관련된 통계 수치까지 제시하면서 열변을 토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 분야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서 그분이 말하는 수치들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분별할 수는 없었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이렇게 사회 각 분야로 이어지는 얘기를 얼마쯤 더 듣고 있는데 카운터에 앉아 있던 목욕탕 주인인 듯 한 분이 오더니 그분의 어깨를 뒤에서 치면서 “어이, 오늘은 그만하지” “이제 그만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아, 예.. 이제 금방 끝납니다” 하고는 몇 마디 더 하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였습니다. 그 사람이 탕안으로 들어간 후 저와 눈이 마주친 주인이 “매일 저렇게 혼자 얘기해요. 그만두라고 하지 않으면 몇 시간이라도 얘기하죠”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분이 리시버없이도 통화가 가능한 최첨단 핸드폰을 이용해서 누구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혼자서 얘기하는 줄을 알았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매일 그렇게 자기 혼자서 거의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중얼거린답니다. 그렇게 혼자 목욕탕 탈의실 평상에 앉아 듣는 이도 없는 얘기를 열심히 하는 이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면, 얼마나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럴까 싶은 게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지난 한 주간동안 매일 저녁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정부에서 마련한 미국 소고기 수입 협상안을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계속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외치는 소리가 날마다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밤마다 촛불 집회가 열리는 같은 장소에서 낮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면서 거기에서도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외치는 또 다른 소리가 날마다 더 켜져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외치는 소리는 정치계로 이어져서 여당과 야당으로 양분된 소리도 날이 갈수록 그 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짧은 기간 동안 혼자서 관찰한 모습이라는 제한과 저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자기 소리를 외치는 이들에 비해 남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려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한 주간 머물면서 여기저기서 외쳐대는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오늘 우리의 문제는 우리나라와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를 외치는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외치는 소리는 많은데 그 소리를 들으려 하는 이들이 적은데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무도 듣는 이 없이 혼자서 자기 얘기를 하며 다른 이들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이는 목욕탕 탈의실 평상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