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가 사는 워싱톤은 완연한 봄날입니다. 봄이란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워싱톤의 봄은 화사하고 화창한 아름다움의 계절입니다. 수선화를 시작으로 개나리, 목련, 벚꽃에 겹사꾸라는 물론이고 아쟐리아, 덕우드에 아카시아와 라일락까지 피게 되면 그야말로 동네 사방이 온통 꽃으로 덮인 꽃 세상이 됩니다. 봄에 피는 꽃이 세상을 화사하게 만든다고 하면 거리나 집 앞에 푸르게 돋아나온 잔디는 겨우네 누렇게 보이던 동네를 푸르게 만들어 생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런데 꽃을 피우기 위해서 관리가 필요하지만 꽃과 달리 잔디는 다듬어주는 손길과 수고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전에는 동네 골목을 지나다가 잘 정돈된 잔디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기만 했었는데 막상 우리 집 잔디를 깎고 나서부터는 그게 그렇게 좋아만 보이지 않고 잔디를 저렇게 잘 관리하기 위해 집주인이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었을까 싶은 생각도 함께 들곤 합니다.

저는 잔디를 잘 관리하지 못하는데 그러는데는 물론 저의 게으른 탓이 크기도 하지만 잔디를 잘 관리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또 잔디 관리하는데 사용되는 각종 약품들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요즘 시판되는 잡초제거제나 잔디가 잘 자라도록 돕는 성장촉진제들 덕분에 집집마다 잔디들이 아주 푸르게 잘 자라 보기는 좋지만 그러나 그렇게 사용하는 약품들로 인한 환경 파괴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저는 이웃들과 서로 각자 집 잔디 관리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잔디를 잘 관리하는 이웃과 접하여 살면 원하지 않아도 하는 수 없이 잔디 관리를 잘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다행이도 우리 동네는 오래된 동네라서 소위 HOA(Home Owner's Association)와 같은 지역 주거 환경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조직이 없는 터라 바로 인접한 이웃들과 잔디 관리는 대충하자고 의기를 투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잔디를 관리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자라나는 잔디를 깎아는 주어야 하는데 이게 한창 자랄 때는 한주가 멀다하고 깎아야 하고 한 번에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잔디 깎기도 부지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금방 집 앞에 잔디숲(?)이 우거지곤 합니다. 올 봄은 비도 자주 오고 바람도 잘 불고 햇빛도 좋아서 그런지 잔디들이 잘 자란 탓에 벌써 잔디 깎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집은 지난주에 처음으로 깎았는데 잔디를 깎는게 유난히 힘이 많이 들기에 깎으면서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난 늦가을에 깎고 겨울 내내 안하다가 오랜만에 깎아서 그런가.., 요즘 들어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져서 그런가.., 아니면 따뜻한 봄날의 늦은 오후 햇살 때문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잔디를 깎는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몸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힘이 든 이유는 오랜만에 해서도 아니고, 몸 컨디션 때문도 아니고, 오후 햇살 때문이 아니라 제가 잔디깎는 기계(제초기/lawnmower)를 잘 못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집에서 사용하는 제초기가 그렇듯이 우리 집에서 쓰는 제초기도 동력(power)을 이용해서 제초기 바퀴를 움직이는 소위 파워 제초기입니다. 그러니까 제초기를 움직이기 위해 제초기를 힘주어 밀 필요 없이 그냥 기계를 작동시키고는 방향만 바르게 잡아주면 제초기가 자동으로 앞으로 움직이며 잔디를 깎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잔디를 깎는 저를 잘 살펴보니 제가 제초기를 계속 밀며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제초기 속도보다 제가 미는 속도가 조금씩 앞서서 자꾸 제초기를 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걸음을 의도적으로 한 템포 늦추어 제초기 속도에 맞추었더니 얼마나 쉬운지... 결국 힘이 들었던 것은 제가 잔디를 깎는 템포 때문이었습니다. 제초기 속도보다 조금씩 앞서 가다 보니 자동으로 작동이 되는 제초기를 힘주어 밀게 되고 그로 인해 들지 않아도 될 힘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한 템포를 늦추어 제초기를 잡고 가니 얼마나 쉬운지 금새 몸에 밴 땀이 부는 바람으로 시원해졌습니다.

제초기를 그냥 붙잡고 기계의 속도에 맞춰 따라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밀면서 힘들어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인도하고 계신데, 그래서 그분의 인도함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따라가면 되는데, 조금 더 앞서 가려고하는 욕심 때문에 자꾸 하나님의 속도가 느리게 여겨져서 우리 힘으로 인생을 밀고 가는 바람에 들지 않아도 되는 힘이 드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잔디 깎는 내 속도 때문에 쓰지 않아도 될 애를 쓰지 말고 한 템포만 늦추고 제초기 속도에 맞춰 따라가면 쉬운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한 템포만 늦추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가면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