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올해 만큼 대통령 선거가 온 국민의 관심을 빼앗은 적이 없을 만큼 이번 대통령 선거는 흥미진진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민주당의 두 후보인 힐러리 상원의원과 오바마 상원의원 사이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결정전에 온 미국 국민들의 시선이 끌리고 있습니다.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냐 아니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냐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 아주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민주당 안에서는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왜냐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힐러리나 오바마나 모두 다 자기들 편이지 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적이라면 두 사람은 적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면 그들은 결코 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두 사람의 눈에는 상대편이 적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적과 아군을 혼동하면 아군과 아군이 다투는 사이에 적군이 어부지리로 승리를 가져가는 곳이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꾸만 인기를 얻어가자 주위에서 예수님의 이름과 가르침을 빙자하여 사람들에게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요한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함으로 금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9:39-40). 그런 후 누가 예수님 편에 서는 사람인지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41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그들을 위해 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들의 적이 아니라 아군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주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그것도 적과 아군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때는 아군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적군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아군인 것 같은데, 저런 경우에는 적군이 것 같습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군과 적군 사이를 오고가니 그런 사람을 향해 쉽사리 마음 문이 열리겠습니까? 그러다보니 아군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뼈아픈 배신을 당해 씻기 힘든 상처를 받기도 하고, 적군이라고 믿고 함부로 대했다가 나중에 아군임이 밝혀져서 그 사람을 똑바로 볼 면목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혼동하니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고 찍히는 관계의 어려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런 혼란이 계속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합니까? “나를 이롭게 하느냐? 아니면 해롭게 하느냐?”로 구별합니다. 그것도 내 입장에서 얻어질 최상의 기대치를 가지고 구별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주위에 아군은 거의 없고 모두 다 적군으로 보입니다. 이런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예수님의 기준으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군으로 인정한 사람은 바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 한 그릇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군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최대한의 기대치를 가지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려고 할 때 예수님은 최소한의 기대치를 가지고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역시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아군과 적군을 혼돈하여 일으키는 갈등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군을 아군으로 오해하여 일어나는 혼동도 있지만, 반대로 아군을 적군으로 혼동하여 어처구니 없는 다툼과 분쟁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싸워야 할 상대와는 싸우지 않고, 싸우지 말아야 할 상대와 공연한 싸움을 만들어 서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아군과 적군을 올바로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돕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군에게 상처를 입히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에 속한 가족들은 아군이지 결코 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끼리 서로 적군처럼 대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집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아군이지 결코 적군이 아닙니다. 그것을 잊어버리고 서로 적군처럼 미워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은 모두 다 아군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개교회주의, 교단주의, 교파주의로 흐르면 교회는 아군과 아군끼리 싸우는데 힘을 다 소진하게 되어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영향력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곁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 역시 적군이 아닙니다. 그들은 적군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할 미래의 아군입니다.

그럼 누가 그리스도인의 적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 해답을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 6:12).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적은 오직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의 세력 뿐입니다. 새봄을 맞아 지금까지 적으로 알았던 사람이 더 이상 적이 아니라 아군임을 발견하는 기쁨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