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강변교회에서는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 지도자들이 모여 솔직담백한 고백들을 쏟아 놓았다고 한다. 우선 옥한흠 목사가 "한국 교회가 세속주의에 물들었다"라고 지적하면서, 목사가 강단에서 교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해야 할 말씀을 진솔하게 전하지 못하고 있음을 심히 개탄하였다는 게다. 특별히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장로와 교인이 걸려서 성경이 전하는 말씀의 반 토막을 잘라내고" 있다고 통탄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와 강단의 목사들은 "마치 버릇없는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만 주는 부모와 같이" 되었노라고 몹시도 가슴 아파 하면서, 이제 한국 교회와 목사들은 "세속주의에 물든 기독교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고 예리하게 지적했다는 게다.

옥한흠 목사에 이어 조용기 목사는 "한국 교회가 제사장과 레위인은 됐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은 되지 못했다"라고 성찰하며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찾아올 때 공신력이 더 높아진다"라고 설파하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 선교 초기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짓는 등 사회사업을 많이 했는데, [한국 교회와 지도자들은] 지금 그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선배들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는 게다. 그는 또한 한국 교회가 점점 귀족화 되어서, 교회 안으로 치장하기에만 바쁘고, 교회당 짓기에만 바빠서, 주위를 돌보지 않으므로, "안티 크리스천"들이 급증한 이유도 이와 절대로 무관치 않음을 주장하였다는 게다.

대단히 양심적인 성찰이요 고백들이라고 본다. 프랑스의 석학, 에밀 뒤르껭(Emil Durkeim)은 종교와 사회는 참으로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그 어느 시대에도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종교적인 올바른 가치관과 기능이 선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회의 형성이 자동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자동적이 아니며, 또 앞을 향해 발전해 나가는 것도 결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게다. 사회는 항상 타락, 부패, 몰락할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그 사회를 이끌어야만 할 종교와 종교적 기능이 항상 살아 있어야만 한다는 게다. 이런 점에서, 한 사회의 발전에는 매우 중요한 종교적 기능이 늘 요구되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의 "사회 비판" 또는 "사회 지도력" 이라는 것이다.

가령, 신자들이 비신자들의 부도덕적인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사회 비판이요, 사회 지도력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불의의 "당연성"을 깨뜨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효과적인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 발전을 위한 이러한 종교의 사회 비판 또는 사회 지도력은 매우 중요한 종교의 기능이다. 그것은 사회에 계속해서 이상과 방향을 제공하며 자기비판의 기회를 허락하고, 특히 구조적인 "사회 악"이나 "사회 불의"에 대하여 건전한 선도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를 위해서 오늘날 종교가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인 게다.

그런데 어느 한 사회 속을 관통하는 정신과 문화가 병들어 있다는 것은, 종교가 제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특별히 한 때, 양심적인 바른 소리를 통하여 선지자적 기능을 감당하던 한국 교회들이, 이제는 사회와 국가를 선도해 나가기는커녕, 힘없는 시녀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부정적 한탄들은 심히 안타까운 현상이다. 오늘 한국 교회들은 사회나 국가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의식이나 능력을 상실한 채, 기존의 사회 구조와 기득권의 수구적 힘에만 전전긍긍하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또 교회가 지녀야 할 최후의 양심적인 가치관도 실종되고 말았다. 옳은 것, 정당한 것이 삶의 문화를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불의한 수구적 힘 앞에서 쉽사리 무릎을 꿇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계 지도자들의 한결같은 성찰이요 고백이다. 교회가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구조 악이나 집단의 이기주의 열정만이 아우성치는 혼란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만 게다. 진리의 세계는 짓밟혀 버렸고, 도둑세계의 논리가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들과 그 지도자들은 어서 속히 대(對) 사회적 비판과 지도력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행여 불필요하거나 불의하기 짝이 없는 의식의 흐름이 있다면, 그것을 차단하는데 희생을 감수하면서라도 반드시 그 지도력을 회복해야만 할 것이다. 교회의 사회 지도력이 마비된 채, 부패와 비리를 닥치는 대로 삼켜버려서 비대해지는 병든 공룡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이 시대의 한국 교회들은 대 사회적인 교회 활동의 마비나 부진함을 다시금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삶의 핵심이요 사역이었던 "디아코니아"(Praxis)의 정신을 되살려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인간의 죄악으로 발생한 수많은 왜곡된 가난과 억압, 그리고 착취와 소외 등의 현상들을 참으로 자상하고도 근본적으로 고치시던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그 분의 사역(Ministry)이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사회나 국가의 양심이 되어야만 한다. 교회가 사회와 국가를 이끌지 못하고 오히려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군가의 눈치를 살펴야만 하며, 그 사회에 이끌려 간다면, 사회의 병리현상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교회로서의 본연의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1937년 옥스퍼드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는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라"(Let The Church be The Church)는 표어를 내 걸었던 적이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부패한 사회를 선도하거나 개혁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한 사회에 이끌려가게 되거나, 부패한 사회 속에 오히려 역이용(Manipulation)만 당하거나 말려드는 안타까운 일들만을 되풀이하게 된다면, 이 교회들은 참으로 "교회는 죽었다"라고 반드시 만천하에 부고(訃告)장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