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월 23일 15명의 한인 1세들이 시카고 시 어빙 팍에 소재한 필리핀 커뮤니티 센타의 소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레익뷰한인장로교회는 시카고를 대표하는 대형교회중 하나로, 오는 20일 교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서 은퇴식 및 원로목사 추대식을 갖는 이종민 목사를 만났다.


30년간 한결같이 레익뷰한인장로교회와 함께 하셨습니다.
한신대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동경에서 1년간 수학한 뒤 오하이주 와인브레너와 시카고 맥코믹신학원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시카고에 처음 온 것은 75년도로 공부를 마치면 한국에 교수로 간다는 계획이었죠. 그 당시 시카고에 매년 4-5천명의 이민자가 몰여올 때였는데 목회상담을 공부한 저는 봉사회(현 한인복지회) 일을 하면서 이민자들의 정착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77년 1월 필리핀 센타에서 우리 교회가 첫 예배를 드릴 당시 신학을 전공한 저와 은퇴목사님 한분이 설교를 전했습니다. 개척 당시 시카고 동포가 2만명 정도 되었고 한인교회는 25개 정도 있을 때입니다. 역사가 제일 깊은 제일연합감리교회는 차현회 목사님이 계셨고 연합장로교회도 교인이 300명이 넘는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 목회를 펼칠 때였는데 기도 가운데 '차세대를 위한 교회'를 목표로 레익뷰한인장로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목회에서 목표로 했던 부분중 얻은 성과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5가지를 약속하면서 담임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후세를 위해 미국 교단에 가입하기로 하고 현재의 PCUSA 교단에 들었습니다. 둘째로 2세 교육에 중점을 두는 교회로 성장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1천명의 영혼은 담는 교회로 키우자고 했는데 우리 교회를 통해 세례받은 수가 600여 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또한 초창기부터 영어권 목회자를 세워 2세 목회에 투자를 해왔는데 이들이 성장해 현재는 노스브룩, 다운타운, 발렌타인 등 세 군데로 독립해 600명 이상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빨리 자체성전을 구하자고 했는데 창립 8년째가 되는 82년에 학교건물인 현 교회당을 매입하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네번째는 풀타임 선교사를 세우는 것이었는데 94년에 중국에 선교사 부부를 파송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처음있는 일이었고 현재는 멕시코에 파송한 상태입니다. 현재 32개 선교지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데 파트너쉽을 100군데로 늘리고 5가정을 풀타임 지원하는게 목표로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 하이스쿨을 세워 차세대 영적 리더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는데 이제는 후임자의 몫이 되었습니다. 요즘 공교육에서 십계명도 못 가르치게 하고 실용주의만 강조하는 교육을 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은퇴 결정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우리 교단에 은퇴연령이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원하고 목회자가 할 수 있다면 계속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40대에 성전을 건축해보고 지금껏 말씀을 전해오면서 목회에는 가장 왕성한 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후임자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만 은퇴하는 것이고 목회사역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교회 후임자 건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저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은퇴식을 마치고 그 다음 주일인 27일 교회 청빙위원회가 구성될 것이고 교회 방식대로 후임자를 찾게 될 것입니다. 당분간은 부목사가 임시당회장을 맡아 교회를 이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는지요.
우선 2월 한달은 쉴 생각입니다. 목회실에 있는 책을 옮기는 것부터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리고 미국 친구들이 교회를 소개시켜 준 곳이 몇 군데 있고 타주에 있는 한인교회에서도 연락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객원교수로도 활동할 수 있고 얼마간은 막내딸 내외가 의료선교를 하는 에디오피아와 중국에 짓고 있는 병원사역도 도울 생각입니다. 여러가지를 놓고 기도중인데 현재 NKPC 총회장으로 있어 7월까지는 꼼짝 못할 것 같습니다.


20일 주일 은퇴식과 원로목사 추대식을 갖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29살 나이에 조국을 떠날때는 학업을 마치면 돌아간다고 했었는데 어느덧 동포사회를 위해 지금까지 일해왔습니다. 시카고 초창기 시절 쇼우셜 워커로 일할 때는 우리 집 리빙룸에 갈 곳 없는 이민자들이 잠을 청하고 아내는 밥을 해날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하게 되면서 오직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을 생각했습니다. 나와 가족의 유익을 생각했다면 지금처럼 교회가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목회는 땀과 눈물이었습니다. 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고 거듭나 교회 일꾼으로 쓰임받는 것을 볼 때가 제일 보람되었고, 사고 등으로 젊은 영혼을 떠나보낼때는 목사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목회가 힘들때는 늘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붙들고 이겨냈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후임자가 나타나 교회를 잘 이어갔으면 합니다.

▲이종민 목사와 이세은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