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천 투데이(Christian Today)가 2026년 8월 24일 게재한 목회자 데이비드 로버트슨(David Robertson)의 기고문은 케임브리지대학교(Cambridge University) 제이슨 아데이(Jason Arday) 교수의 비극적 죽음을 계기로 교회가 성찰해야 할 점들을 짚었다.
로버트슨 목사는 자신이 목회 현장에서 자주 만나는 '상습적 공상가'들을 언급하며 글을 시작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기름 부음 받은 설교' 능력을 받았다고 믿는 이, 노래 실력이 없음에도 천사의 목소리를 가졌다는 말을 믿는 이, 자칭 '사도'와 '선지자'들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자기기만이 무해한 수준에서부터 매우 위험한 수준까지 이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데이 교수의 죽음이 이러한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자살이라는 주제를 다루기가 개인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앤디 번햄(Andy Burnham)이 이 죽음을 "여러 층위에서의 비극"으로 규정하며 '성찰의 시간'을 촉구한 데 응답해 교회가 배울 점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로버트슨 목사가 제시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능력보다 특별한 개인사나 문화적 정체성을 근거로 사람들을 권력·영향력·유명세의 자리에 세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는 아데이 교수의 기이한 주장들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속아 넘어간 점을 지적하며, 기적 이야기를 갈망하는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맹신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한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가 컨퍼런스 서점에서 특정 전기(傳記)를 숨기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책의 주인공이 자기 교인이며 내용 상당수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은 일화도 소개했다.
둘째, 이러한 비극을 자기 진영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인종차별 문제를, 다른 한편에서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이념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데 이 죽음이 동원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특히 일부 단체들이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한' 모금 활동에 이 비극을 이용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셋째, 자살을 미화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는 아데이 교수를 둘러싼 추모 집회가 무책임했다고 지적하며, 자살 위험군 중 일부는 자신의 죽음이 영웅적 지위를 안겨줄 것이라 환상을 품기도 하는데, 그러한 환상을 부추기는 것은 끔찍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대학 복지위원회 시절 모방 자살의 위험 때문에 자살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넷째, 군중의 집단적 조롱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아데이 교수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무너지면서 조롱과 비난에 가담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으나,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는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케임브리지대와 그를 띄운 이들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아데이 교수 개인에게는 자비를 베풀어야 했다며 "말할 때가 있고 잠잠할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섯째, 모든 것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 아데이 교수는 공적 인물이었고, 그의 표절 의혹 보도를 막으려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타임스 고등교육(Times Higher Education)을 위협하기도 했으나, 다른 기자들이 진실을 밝혀냈다고 그는 설명했다. 다만 그를 무비판적으로 띄운 언론의 책임도 있다며, BBC가 아데이 교수에 관해 검증 없이 10개 이상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뉴스 기사, TV 인터뷰를 제작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의 죽음이 '우파 언론' 탓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며,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가디언(the Guardian), 애틀랜틱(the Atlantic) 등이 진실을 보도한 순간 그의 경력이 끝났다고 분석했다.
여섯째, 개인의 공상과 제도적 망상을 구별해야 한다. 자기기만에 빠진 개인에게 진실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집단적 광기에 빠질 위험이 있는 제도(기관)에는 이를 내다본 이들이 반드시 경고해야 하며, 그것이 선지자와 건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일곱째, 교회는 언제나 문화의 편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리를 말해야 한다. 그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데이 교수가 사기꾼이 아니라고 주장한 교회 지도자와, 이 사건을 인종차별 문제로만 다룬 기독교 잡지를 언급하며, 이는 세상의 가치를 흐릿하게 반영한 것이거나 더 냉소적인 착취라고 비판했다.
로버트슨 목사는 진실보다 감정에 기대는 탈진실·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월터 미티' 같은 인물이 자신의 공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문 출신이라 주장하며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Trinity college Dubl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거짓이 밝혀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리 소피 힝스트(Marie Sophie Hingst)의 사례를 사무엘 루벤스타인(Samuel Rubenstein)의 기록을 인용해 소개했다.
끝으로 그는 애틀랜틱의 그레임 우드(Graeme Wood)가 쓴 논평을 인용했다. 우드는 "아데이는 사회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채용되었다. 궁극적 아이러니는 그가 그 학문에 남길 주된 기여가 하나의 사례 연구가 되리라는 점이다. 즉, 결함 있는 사람을 그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자리로 끌어올린 공동체, 그리고 자신들이 실제로는 그를 인신 제물로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개의치도 않았던 공동체에 관한 사례"라고 평했다.
로버트슨 목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에베소서 4장 15절)는 말씀이 이보다 더 적절했던 적은 없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