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12/4), 우리가 사는 워싱톤에 올 겨울 들어 첫눈이 내렸습니다. 보통 첫눈은 살짝 뿌리는 듯 내리거나 내려도 금방 녹아 버리는데 비해 이번에 온 눈은 내린 눈의 양도 4인치나 될 만큼 많이 왔고 날씨도 추워서 여러 날 쌓여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눈이 오면 생활하며 겪어야할 불편보다는 그저 하얀 눈이 오는 게 좋고, 쌓인 게 좋기만 한 걸 보면 아마도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온 땅을 축복으로 덮으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바람에 흩날리며 내리는 눈조차 이 땅을 축복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이의 즐거운 발걸음으로 보이고 흥겨운 춤자락으로 보입니다. 눈으로 덮어있는 이 땅의 모습은 그야말로 은총의 흔적입니다. 모든 것들을 생긴 모양이나 색깔에 상관없이 하얗게 덮고 있는 모습은 우리 인간의 어떤 모습이나 모든 허물을 모두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눈이 오자마자 치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눈을 치우기 좋아하지 않는데는 저의 게으름도 큰 몫을 차지하지만 꼭 그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모든 것을 덮고 있는 눈을 좀 더 오래도록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의 부끄러운 허물들을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이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고, 그 은총의 포근함이 주는 평안을 소복이 쌓인 눈을 보면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제 바램을 아는 듯 소복이 쌓인 눈은 땅을 덮은 채 사흘을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이틀 전인 지난 금요일(12/7)에는 비가 왔습니다. 저는 비도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으로 여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철에 내리는 비는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럽고 천덕스럽게 조차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물론 저만의 유별난 심술인지 모르겠지만 초겨울에 내리는 비는 그냥 그렇게 별로였습니다. 사흘 전 눈이 내리던 날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은근히 마음속으로 “왜 비야, 눈이 와야지”하는 마음이 들면서 눈이 온 날과 비가 온 그날의 기온을 비교해 보니까 별 차이가 나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며칠 추운 날씨가 계속된 것은 첫눈이 온 다음부터였고, 첫눈이 오는 화요일에는 비가 온 금요일과 별 차이가 없는 비슷한 날씨였습니다. 제 기억으로 지난 화요일의 기온은 화씨 31도였고, 금요일의 기온은 화씨 33도였습니다. 제가 왜 그걸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을 하느냐하면 눈이 오던 그날 차를 타고 가면서 자동차 계기판에 있는 온도계를 읽은 기억이 나고, 비가 오던 금요일에도 같은 위치에 있는 온도계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루는 눈이 하루 종일 펑펑 내렸고, 또 다른 하루는 비가 부슬 부슬 내렸습니다. 이렇게 하루는 눈이 내리고 하루는 비가 내렸다는 기상적인 차이만이 아니라 내린 눈과 비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 가지 형편도 아주 크게 달랐습니다. 눈이 내린 날에는 여기저기서 차들이 미끄러지는 사고 소식이 잇달았는데 비해 비가 오던 날에는 비로 인한 사고 소식을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눈이 오고 비가 오므로 인한 변화는 삶의 여건만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네 마음도 (적어도 제 마음은) 크게 다르게 했습니다. 눈이 내린 날에는 그리도 좋던 마음이 비가 오는 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이 오느냐, 비가 오느냐에 따라 같은 초겨울의 날씨가 다르고, 거기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환경이 다르고, 우리 마음까지도 크게 달랐습니다.

그 두 날의 기온 차이는 화씨로 불과 2도 차이, 그러니까 섭씨로는 정확하게 1도도 되지 않는 기온의 차이가 하루는 눈이 내리고, 다른 하루는 비가 온 것입니다. 1도의 차이, 지극히 작은 차이, 사실 차이를 느끼기조차 힘든 아주 작은 차이가 세상을 다르게 만든 것입니다. 물론 비슷한 기온에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합니다. 기온이 좀 높아도 한랭한 저기압을 동반한 북풍이 몰아치면 눈이 오고, 반대로 기온이 좀 내려가도 남쪽으로부터 따스한 남풍이 불면 같은 저기압이라도 비가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물이 어는 빙점(氷點)은 하나입니다. 그 점(點)에서 조금이라도 온도가 높으면 물은 얼지 않는 것이고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낮으면 얼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0.001도보다도 더 작은, 그야말로 아주 작은 차이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가 아주 커다란 차이를 일으킵니다.

눈과 비의 차이!, 아주 작은 온도의 차이가 엄청난 자연의 변화를 일으키듯이 우리들의 삶도 조그만 이해의 차이, 작은 수고의 차이, 그리고 작은 생각의 차이가 우리들의 삶에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작은 차이로 인한 엄청난 변화의 차이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