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강인함이라는 함정
운동생리학과 퍼포먼스 코칭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이자 실천가인 스티브 매그니스(Steve Magness)는 『강인함의 힘(Do Hard Things)』에서 ‘가짜 강인함’(pseudo-toughness)의 신화를 해체한다. 그에 따르면, 두려움을 억누르고, 고통을 모른 척하고, 약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번아웃, 경직성, 판단력 마비를 불러온다. 그 시절 내가 두르고 있던 것이 바로 그 갑옷이었다. 강함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오히려 내 판단을 좁히고, 공동체의 지혜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총장님은 절대 흔들리시면 안 되죠”라는 기대, “지도자가 의심하면 양 떼가 흔들린다”는 암묵적 문화, “믿음이 있으면 두렵지 않아야 한다”는 신학적 오해—이것들이 겹치면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가짜 강인함의 갑옷을 두르고 광장에 선다. 그 갑옷 안에서 무엇이 닳아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안에서 닳아 없어지는 것은 몸의 체력만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솔직히 드러낼 용기, 공동체와 진실하게 소통할 힘, 처음 부름을 받던 그 소명 의식이 서서히 사라져 간다.
위기 앞에서 지도자가 빠지는 다섯 가지 패착
매그니스의 논의를 읽으며 나는, 잘못 구축된 강인함이 지도자에게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실패 패턴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감정 억압
두려움·불안이 없는 것처럼 밀어낼수록 인지 자원이 고갈되어, 정작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쓸 수 있는 정신의 여력이 줄어든다. “괜찮습니다”를 반복할수록 내부에서 경고 신호가 쌓인다. 이것은 용감함이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둘째, 과잉 통제
위기가 닥치면 모든 변수를 손에 쥐려 한다. 매그니스는 이것을 위협 반응의 전형으로 분석한다. 통제 욕구가 강해질수록 팀의 자율성은 위축되고, 지도자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낸다.
셋째, 단기 목표 고착
위기의 지도자는 ‘이번 주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만이 전부가 되는 ‘터널 비전’에 빠져든다. 터널 안에서는 출구의 한 점 빛만 보일 뿐 좌우의 풍경이 모두 사라진다. 그렇게 좁아진 시야로 지도자는 불을 끄는 동안 집의 구조를 허문다. 위기를 넘기고 나서 공동체가 더 황폐해져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넷째, 외적 확인 의존
공동체 구성원의 반응, 동료의 평가, 가시적 성과로 내면의 불안을 메우려 한다. 문제는 이때 판단의 질문이 바뀐다는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가 ‘무엇이 환영받는가’로 대체되면서, 옳지만 인기 없는 결정은 계속 미뤄지고 시급하지 않지만 박수받는 일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장기적으로는 판단력을 외부에 위탁하는 결과를 낳아, 확인이 끊기는 순간 더 깊은 공허 속으로 떨어진다.
다섯째, 소명 망각
‘이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였던 것이 어느 순간 ‘자리를 지키기 위해’로 바뀐다. 이 전환은 대부분 본인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소명으로부터 끊어진 지도자는 육체적으로는 자리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이미 광야를 헤매고 있다.
이 다섯 가지를 읽을 때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다. ‘나는 아니다’—그것이 바로 첫 번째 패착의 신호다. ‘나의 이야기다’—그것이 진짜 강인함의 출발점이다.
진짜 강인함의 네 원칙과 골방의 실천
매그니스의 ‘진짜 강인함’(real toughness)은 ‘억압’이 아니라 ‘수용’에서 시작한다.
첫째, 감정을 인정하되 지배당하지 말라
두려움·불안은 지워야 할 약함이 아니라 읽어야 할 신호다. “나는 지금 두렵다”는 말을 자신에게 솔직하게 하는 순간, 오히려 다음 걸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나는 죽겠습니다”(왕상 19:4)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꾸짖지 않고 먼저 먹이고 재웠다. 진짜 회복은 그 수용에서 시작되었다.
둘째, 자신감과 현실 인식을 함께 붙들어라
위기는 밖에서 닥치는 사건이고, 위협은 그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같은 위기도 ‘이것은 나를 무너뜨릴 것이다’로 해석하면 위협 반응이, ‘어렵지만 대응할 수 있는 도전’으로 해석하면 도전 반응이 작동한다. 다윗은 골리앗의 크기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손에 붙들린 존재인지도 알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신뢰가 함께할 때, 지도자의 말은 공허하지 않다.
셋째, 불안을 의미의 언어로 번역하라
불안과 흥분은 생리학적으로 유사하다. 차이는 해석이다. 매그니스는 이것을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 곧 몸의 신호는 그대로 두고 그 의미를 다시 쓰는 훈련이라 부른다. 학교가 어려울 때 나를 짓눌렀던 불안이, 사실은 내가 이 기관과 학생들을 깊이 사랑한다는 증거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불안이 도망의 신호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들리기 시작했다.
넷째, 깊은 동기—‘왜’—에 뿌리를 내려라
사역의 위기에서 많은 지도자들은 전략을 먼저 찾는다. 그러나 매그니스는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처음 부름을 받던 순간의 ‘왜’로 돌아가는 것, 광장의 분주함이 아니라 골방의 침묵 속에서 그 최초의 동기와 다시 연결되는 것—이것이 위기를 통과하는 지도자의 가장 근본적인 자원이다.
골방의 실천
아는 것을 살아내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두 가지를 권한다. 불안이 밀려오는 순간에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불안한가. 이것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기 때문인가. 그 두 물음에 답하는 데 90초면 충분하다. 그리고 분기에 한 번, 소명 편지를 다시 써 보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 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바라는 것—한 페이지면 된다. 뿌리가 살아 있어야 가지가 폭풍을 견딘다.
광장과 골방 사이에서
‘어려운 것을 행하라’(Do Hard Things)—그 어려운 것은 대형 집회나 담대한 선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혼자 앉아 “나는 지금 두렵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광장에서는 공동체의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골방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두 공간이 연결될 때 가짜 강인함의 갑옷은 필요 없어진다. 약함을 아는 지도자가 전하는 ‘두려워 말라’는 텅 빈 선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증언이 된다.
바울의 고백이 이것이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이것은 심리학적 통찰이기 이전에 복음의 구조다. 스티브 매그니스는, 아마도 의도하지 않은 채로, 그 구조의 인간적 차원을 과학의 언어로 확인해 주고 있다.
나는 지금 진짜 강한 것인가, 아니면 강한 척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을 붙드는 사람이 진짜 강한 지도자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