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손양원 목사가 공산당 학생들에게 두 아들을 잃은 지 2년 후인 1950년에 6.25 사변이 일어나, 부산을 제외한 남한 전체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손 목사가 목회하던 여수 애양원에까지 공산군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나병환자들이 빨리 피신하라고 권하였지만 손 목사는, “주님의 이름으로 죽는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일제 때 감옥에서 죽었을 것인데, 하나님이 보호하사 해방을 주셔서, 더 살게 된 것도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내 눈을 빼고, 내 코를 베고, 손이 잘리고, 발이 떨어지고, 내 목이 끊어져서 석 되밖에 안 되는 내 피가 쏟아지고, 내 뼈가 가루가 된들 내 주님의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는데, 나를 부모같이 원하는 이 양 떼를 버리고 어찌 피난을 가겠습니까?”라며, 의연히 강단을 지켰습니다. 손 목사는 그 해 9월 인민군들이 들이닥쳐, 체포한지 2주일 만에 총살되어 순교하였습니다. 그 때의 형편을 김린서 목사가 기록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 내용을 옮깁니다.
“6·25 때 공산군은 손양원 목사 외 120여 명을 여수 감옥에 구금하였다가, 9월 28일 밤에 모두 한 줄에 묶어 가지고, 미평(美坪:애양원 근처) 동산으로 끌고 갔다. 신발을 벗겨 40리 자갈길을 걷게 하니, 발은 다 찢어져 피의 행로였다. 손 목사는 끌려가면서도,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공산당을 따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라며 간절한 말로 전도하였으나, 공산당들이 그 말을 들을 리 만무하였다.
한 인민군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손 목사가 계속해서 전도하자, 인민군이 큰 돌맹이를 들고 와서 손 목사의 입을 내려 쳤다. 손 목사의 입에서 이가 다 빠져 밖으로 흩어졌지만, 손 목사는 피가 흐르는 입으로 계속 전도를 하였다. 그 인민군은 큰 돌을 손 목사의 입에 쳐 넣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 왔지만, 손 목사는 가련한 인민군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한 밤중에, 공산당들은 끌려온 사람들을 10여 명씩 묶어 꿇어앉히고, 따발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며, 돌로 쳐서 죽였다. 그 중에 한두 사람이 살아남아 그 밤의 참상을 전하여 주었다. 그 중에는 80세 된 목사도 있었고, 여전도사와 청년회 회장도 있었다. 불신자들의 울부짖음과 신자들의 찬송 소리와 기도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의 찬송 소리가 들리다가, 차차 10여 명, 한두 명의 소리로 가늘게 들리더니 나중에는 그 소리마저 끊어져 조용한 밤이 되었고, 희미한 달빛과 별빛이 순교자들의 시체를 조상(弔喪)하였다.
손양원 목사의 시체는 어깨와 두 손가락에 총알이 관통하였고, 그 입은 돌에 맞아 상하고 이빨이 부러져 있었다. 아마 찬송하며 전도하면서 쳐든 어깨와 손을 총으로 쏘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그 입을 돌로 친 것이리라.”
1950년 9월 28일 밤 11시, 위대한 사랑의 성자 손양원 목사는 그렇게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가 살아생전에 “땅 위에서 하루가 길면, 하늘에서 하루가 짧고, 땅 위에서 하루가 짧으면, 하늘에서 하루가 길다.”(在地一日長 在天一日短, 在地一日短 在天一日長)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의 생이 지상의 생활과 천국의 생활이 단절된 것이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일직선상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양원 목사의 생애는 우리 교회의 역사에, 이런 신앙의 선배가 있었다는 것을 후세에 남겨, 목회자들이 가야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보여 주는 시금석(試金石)입니다. 그는 ‘사랑의 성자’란 말에 어울리는 삶을 살다 간 우리의 귀감이 되는 그리스도인이요, 목사의 사표(師表)입니다. 우리 교회 역사에 이런 사랑의 순교자가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6.25 사변 동안 희생된, 목사, 장로, 교인 순교자들을 여기 일일이 기록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목사들이 납북되었고, 북한에서는 황해도 봉산의 계동교회 180여명의 교인들 중 175명이 목조 예배당에 갇혀 불에 타 순교하였고, 남한에서는 전북 옥구군 미면(米面) 원당교회 교인 73명 전원이 총살당해 순교하였습니다. 예배당 300여 곳이 불에 탔고, 부분 파손이 700여 곳이었는데, 기록에 남은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전체 훼손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위의 기록은 공산당들이 기독교인들과 교회에 행한 참혹한 사적(史蹟)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가서 얼마나 엄한 심판을 받을까요? 왜 지옥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겠지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주님을 만난 후에, 죽는 날까지 복음을 전했던 바울이 된 것처럼, 공산주의자들도 성령님의 역사로 주님께 돌아오도록 열심히 기도하며 전도해야겠습니다. 그 일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할 유일한 책무입니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