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미츠오 후치다(Mitsuo Fuchida)는 일본인의 감동적인 얘기가 있다. 그는 1941년 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 해군 항공대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첫 공격대의 지휘를 맡았으며 “토라! 토라! 토라!” 신호를 전송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쟁 후 그는 전범재판에 대한 반감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귀환한 일본군 포로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생각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2] 특히 일본군에게 부모를 잃었음에도 일본인 포로들을 사랑으로 섬긴 미국인 페기 코벨(Peggy Covell)의 이야기는 후치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일본의 무사도 정신으로는 원수를 용서한다는 것이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후 그는 일본에서 배포되던 전도지 「I Was a Prisoner of Japan」(나는 일본의 포로였다)을 통해 제이콥 디셰이저(Jacob DeShazer)의 간증을 접하게 된다.
[3] Jacob DeShazer의 간증은 단순히 “포로가 예수 믿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복수가 사랑으로 바뀐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강력하다.
제이콥 디셰이저는 미국 오리건주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날 이후 나는 일본인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그는 군에 자원입대했고, 일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4] 1942년 그는 Doolittle Raid에 참가했다. 이 작전은 미국이 진주만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본토를 처음 폭격한 역사적인 공습이었다. 폭격 후 연료 부족으로 중국에 불시착했지만, 곧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그와 동료들은 혹독한 심문과 고문을 당했다. 수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다. 언제 처형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본인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5] 1944년 어느 날. 포로들에게 단 3주 동안 성경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디셰이저는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라니. 그가 알던 세상의 논리와 완전히 달랐다.
[6] 그는 나중에 이렇게 간증했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내 마음에 무언가가 일어났다.”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그는 특히 산상수훈에 사로잡혔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그는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일본 간수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전에는 짐승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7] 증오가 사랑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감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석방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디셰이저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본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일본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8] 그는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선교사가 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폭탄이 아니라 성경을 들고 갔다. 전투기가 아니라 복음을 가지고 일본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1948년 무렵. 디셰이저는 자신의 간증을 담은 전도지 「I Was a Prisoner of Japan」(나는 일본의 포로였다)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 전도지가 우연히 진주만 공격의 주역이었던 Mitsuo Fuchida의 손에 들어갔다.
[9] 그 책자를 읽은 후치다는 의아했다. “일본군에게 그렇게 학대를 받은 사람이 왜 우리를 용서한단 말인가?” 그 또한 전도지를 읽은 후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1949년 9월, 그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진주만 공격을 지휘한 일본군 장교와 일본군 포로였던 미국군 병사 두 사람 모두 십자가 앞에서 형제가 되었다.
진주만 공격도 디셰이저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10] 감옥의 고문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성경 한 권이 그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변화된 자신의 간증이 후치다를 변화시켰다.
이후 후치다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고, 자신의 간증을 담은 「From Pearl Harbor to Calvary」(진주만에서 갈보리까지)를 비롯한 여러 책을 저술했다.
후치다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전범이 회개했다”는 데 있지 않다.
[11] 그를 변화시킨 것은 논쟁이 아니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복수보다 강한 용서였다. 그는 일본군에게 부모를 잃은 여인이 일본군 포로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일본군에게 고문당했던 미군 포로가 오히려 일본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 결과 진주만을 공격했던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12] 이 이야기는 바울의 고백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딤전 1:15).
후치다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대사의 강력한 증언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증언자로 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