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설교자 레너드 레이븐 힐(Leonard Ravenhill)은 복잡한 논쟁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성경은 절대적(Absolute)이거나, 아니면 이미 쓸모없어진 것(Obsolete)이다.” ‘Absolute’과 ‘Obsolete’이란 단어의 ‘언어유희’(Word play)이다. 만약 성경이 절대적이라면, 성경은 우리를 책망할 권리가 있다. 우리의 생각을 바로잡을 권리가 있다. 때로는 우리의 가치관과 충돌할 권리가 있다.
[2] 우리가 좋아하는 구절은 받아들이고, 불편한 구절은 삭제할 수 없다. 어제 친구 목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해서 뷔페를 먹었다. 수많은 음식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가져와 먹었다. 그게 뷔페식 음식이다. 나는 해물을 아예 못 먹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시와 피시가 있는 곳은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고기 종류의 음식만 가져와 먹곤 한다. 옆에 있는 아내는 내가 싫어하는 스시와 피시 종류를 갖고 와서 먹고 있다.
[3]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 생각했다. ‘나는 왜 남들이 잘 먹는 음식을 못 먹는 것일까?’ 대인관계에 있어서 남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는 내 약점 중 하나이기에 부끄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저 수치스러운 모습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 D가 부족할 가능성이 있기에 건강에 해가 되는 면도 있다.
그게 음식에 관한 얘기로 그쳐야지 영의 양식에까지 적용되면 큰일 난다.
[4] 성경을 뷔페식 음식처럼 섭취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뷔페식 메뉴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선택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다스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만약 성경이 이미 쓸모없어진 책이라면, 그것은 수많은 고대 문헌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흥미로운 역사책이나 이야기책일 수는 있다.
[5]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권위 있는 책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감동으로 쓰게 하셔서 우리에게 주는 그분의 말씀이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성경 아래에 있는지, 아니면 성경 위에 앉아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따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읽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지를 매사에 따져야 한다.
[6]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알고 성경을 읽는다. 어떤 사람은 1년에 성경을 일독하고, 어떤 사람은 통독 계획표를 따라 꾸준히 읽는다. 성경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 읽기에도 중요한 차원이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성경을 읽는 것”(I read the Bible)을 넘어 “성경이 나를 읽는 것”(The Bible reads me)이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7] “내가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고, 원어의 의미를 연구하며, 등장인물의 삶과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위험이 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8] 나는 본문을 분석하고, 지식을 쌓고, 신학을 정리할 수 있다. 심지어 설교를 준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CT 사진을 분석하듯 성경을 연구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은 진단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설교자들에게 특히 이런 현상이 많이 일어남에 유의해야 한다. 한 편의 명설교를 위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관련 서적들을 많이 참조해서 감동적인 설교를 만든다.
[9]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설교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성경이 나를 읽는다는 것은 내가 성경 앞에 해부대 위의 환자처럼 눕는 것이다. 그때 성경은 더 이상 내가 분석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나를 분석한다. 성경은 내 생각을 드러내고, 숨겨진 동기를 밝혀내며, 내가 보지 못했던 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윗의 죄를 읽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죄를 보게 된다.
[10] 바리새인의 위선을 읽다가 내 안의 위선을 발견하게 된다. 베드로의 실패를 읽다가 내 신앙의 연약함을 마주하고 통곡하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본문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본문이 내 마음을 읽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성경을 다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이 나를 읽고 내 내면을 얼마나 많이 꿰뚫게 하고 있는가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11] 지금 당신이 갖고 있는 성경이 당신을 읽고 있는지 조용히 점검해 보라.
“성경을 읽되, 성경이 당신을 읽고 당신의 영혼을 꿰뚫기 시작할 때까지 읽으라.”
(Read the Bible until the Bible begins to read you and pierce your so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