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요한계시록 13장 18절)
신약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666은 짐승의 숫자고 그것은 사람의 숫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장을 읽어 보면, 짐승 하나가 땅에 올라와서, 모든 자들의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였는데,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3:11, 16-17)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숫자 666은 짐승의 숫자일까요? 또 사람의 수가 666이라고 했는데, 그 666명은 누구일까요?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를 쓴 책으로, 이 책에 나오는 표시, 상징, 용어는 모두 신비한 뜻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계시일 뿐입니다.
따라서 666도 성경에는 짐승의 수, 사람의 수라고 기록해 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666이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이요, 멸망 받을 사람들의 숫자라면, 멸망을 받을 사람이 고작 666명 밖에 안 된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그런데 역대하 9장 13절에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드요.”라 되어 있고, 에스라 2장 13절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돌아 온 자손들 중,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명이요...”(에 2:13)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일 666이 좋지 않은 숫자라면 ‘역대하’서나 ‘에스라’서에 써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과거 필자가 한국에서 출석했던 대형교회에는 출입문이 여럿 있었는데, 문 옆에 출석 교인들을 집계(集計)하는 집사들이 서서, 교인이 문턱을 넘을 때마다 손에 들고 있는 집계기(集計機)의 꼭지를 꾹 눌러, 출석 교인의 숫자를 계산했습니다. 그럼 666번 째 찍힌 교인은 짐승의 표를 받은 교인일까요?
어떤 중소형 교회에 모이는 교인 숫자가 666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 666명의 교인들은 짐승의 숫자를 이마에 받은 사람들일까요? 대형 교회에서 여름 단기 선교를 갈 교인들을 모집했는데, 합계를 해 보니까, 666명이라면 이들 교인들이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까?
오래전, 필자가 장신대에 재직하고 있을 때, 한국 교회 안에서 666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채플 시간에 한 교수가 이 문제로 설교를 하면서 666이 마귀 숫자라면, 어느 초등하교 6학년 6반 6번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말해서 모두 웃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아파트 단지의 6동 6층 6호 아파트에 사는 가족이 만일 교인들이라면 666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성경의 666과 이 아파트의 666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같은 본문이나, 상징이라도, 성경 해석은 설교하는 목사나, 성경을 주석하는 신학자가 다 각자 다른 견해를 갖고 설교도하고 주석도 합니다. 따라서 누구의 해석은 맞고, 누구의 해석을 틀리다고 단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 각각 일리(一理)는 있겠지만, 유일한 해석은 아닙니다.
본디 성경 해석 방법은 문자적인 해석, 윤리적 해석, 역사적 해석, 영적 해석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성경을 100% 정확하게 해석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한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계시록에 나오는 666, 즉 짐승의 숫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숫자입니다. 성경에는 신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읽고 있는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신비한 부분은 누구도 알 수 없고, 훗날 천국에 가면 알게 되겠지요.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