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지난 몇 달 동안 신학교 제자들이나 지인들로부터 문의 전화를 적잖게 받은 바 있다. 오랫동안 탁월한 설교와 저서들로 존경을 받아왔던 한 목사님의 아들 목사 개척 지원금 요구 논란에 관한 질문들이었다.
그간 개인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고 존경해 오던 분이신데, 어떻게 그런 추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는 실망과 분노가 많았다.

[2] 이후에는 한 유명한 크리스천 장관 후보의 갑질에 대한 육성 녹음이 터짐으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와 정치권은 물론, 기독교계에도 큰 파장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이때도 여러 지인들로부터 실망에 찬 전화를 받은 바가 있다.
그런데 최근 그보다 더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아주 유명한 부흥사 한 분의 욕설 육성 녹음이 터짐으로 그 파장이 만만치 않게 퍼져가고 있다.

[3] 남녀 부교역자들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내용의 일부 음성이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전파되고 있다. 페북에서 육성 녹음의 내용을 처음 들은 후,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살아오면서 목사가 아닌 그 누구라도 그렇게 심한 욕설을 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수년 전, 높은 정치가 한 사람의 욕설로 인해 국민이 입은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그 또한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도를 넘은 욕설이었다.

[4] 그런데 이번 욕설의 내용은 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성이 컸다. 그것도 영향력이 큰 유명 목회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에 더욱 실망과 충격이 컸다. 당연히 제자와 지인 몇 사람으로부터 즉각 전화가 걸려 왔다.
“저런 사람을 천국 백성이라 할 수는 없지 않으냐?”“저렇게 심한 욕을 쉽게 하는 사람이 전한 메시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라 할 수 없지 않으냐?”

[5] “행위로 구원받는 건 아니라 해도, 저 정도의 욕을 대놓고 할 정도의 사람이면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 수 없지 않으냐?” 모두가 선뜻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우선 이런 내용으로부터 답을 시작했다. “그 정도로 심한 욕설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나 당신 역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의 욕설과는 다른 내용의 심한 죄를 지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6] R. C. 스프로울(R. C. Sproul)이 이렇게 말한 바가 있다.
“‘Why doesn’t God eliminate all evil?’ Because if God were to eliminate all evil, you would be dead.”
(“하나님은 왜 모든 악을 제거하지 않으시는가?” 만약 하나님이 모든 악을 제거하신다면, 당신도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매우 귀한 말이다.

[7] 어떤 이가 심한 죄 때문에 지옥 가야 한다고 한다면, 나 또한 다른 심한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 7:3–5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타인의 작은 잘못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큰 죄와 한계를 먼저 돌아보라”라는 자기성찰의 교훈을 담고 있다.

[8] 하지만 이번 일이 남의 일이라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고, 그 일로부터 어떠한 교훈도 얻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유명 목사가 깡패나 흉악범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심한 욕설을 부교역자들에게 상습적으로 해왔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 영광이 가려지고, 그러잖아도 추락한 한국 교회의 이미지가 더 크게 훼손될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9] 사과 성명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나 그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본다. 우선 우리 크리스천 모두는 이 사건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자신을 돌아보아, 더욱더 말이나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번 일을 통해 "영적 영향력과 인격적 성숙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10] 설교의 은사가 크다고 해서, 교회에 큰 성장을 가져왔다고 해서 삶의 거룩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물론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뿐 아니라 메신저의 삶도 함께 본다. 특히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창과 같기에, 반복적인 악한 언어 습관은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동시에 우리는 정죄의 자리보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11]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는 사과의 말 한마디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보다 책임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중한 한 교회 영적 지도자의 넘어짐을 바라보며 돌을 던지거나 정죄하기보다는 회복과 변화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함도 놓칠 수 없다. 교회는 '심판 공동체'가 아니라 ‘회복 공동체’다. 하나님께서도 죄인을 즉시 버리기보다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12] 그러므로 이번 사건은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자신을 돌아보는 영적 경종이 되어야 한다. 특별히 말씀 사역자들에게는 더욱 엄중한 경고가 된다.
약 3: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언어의 절제는 단순한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영성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13] 말을 다스리는 것은 곧 삶을 다스리는 것이며, 삶을 다스리는 것은 곧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다.
“남을 통해 실망하기보다, 그 일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라.” 그리고 정죄보다 회개를, 분노보다 기도를 선택하라. 그때 하나님은 넘어짐조차도 나 개인과 모든 크리스천들의 성숙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