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무명(無名)」이라는 영화를 성도님들과 함께 관람했습니다. CGNTV가 개국 2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제작된 배경은 양화진에 있는 일본 선교사님의 무덤에서 시작됩니다. 서울 양화진은 외국 선교사님들이 묻혀 계신 묘지입니다. 그곳에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독일 등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일본 선교사님의 묘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던 무덤이었습니다. 제작진은 바로 그 무명의 선교사님을 추적해서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영화 「무명」에는 노리마츠 마사야스(乘松雅休)와 오다 나라지(織田楢次), 두 일본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으로서 우리나라에 와 일본인의 잘못을 참회하며 복음을 전한 분들입니다. 수많은 한국 기독교인이 일본 압제의 두려움 속에서 신사참배를 할 때도 이 두 분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두 선교사님은 다리 역할을 하신 분들입니다. 영화 속에서 선교사님의 후손이 남긴 다리에 관한 이야기가 가슴 깊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다리란 서로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다리의 역할 중 하나는 밟히는 것입니다.” 다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노면(路面, road surface)”을 제공합니다.

“노면(路面)”은 ‘길 노(路)’와 ‘얼굴 면(面)’의 합쳐진 말입니다. 다리의 노면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다리를 건널 때 노면을 밟고 지나갑니다. 밟힘을 감수해야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밟힘을 감수해야 길이 됩니다. 두 분의 선교사님은 조선 땅에서 밟히고 또 밟히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친히 밟히는 길이 되셨습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으셨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분의 선교사님을 기억하셨습니다. 때가 되어 CGNTV 제작진의 수고로 두 분의 아름다운 삶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CGNTV는 고(故) 하용조목사님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무명의 선교사님들을 섬기기 위해 시작된 방송입니다. 또한 하목사님은 일본 선교에 헌신하셨습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2007년에 ‘러브 소나타(Love Sonata)’를 시작하셨습니다. 러브 소나타는 문화 전도 집회 형식을 취했습니다. 음악 공연, 영상, 찬양과 메시지를 종합하여 복음을 전하는 집회였습니다. 하목사님은 “목숨을 건 일본 사랑”이란 말씀을 하시며 러브 소나타와 일본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러브 소나타 집회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목사님과 온누리교회의 일본 선교 사역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다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로잔 대회 산하의 공식 자료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하용조목사)와 온누리교회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깊은 간극(the deep gulf)을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목사님이 살아 계셨다면 「무명」이란 영화를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서로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4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기초(foundation)입니다. 땅속 깊이 또는 바닷속 깊이 박힌 기초가 있어야 다리가 흔들리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바람이 거세고 물살이 강해도 지금까지 안전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깊은 기초가 바다 밑에 단단히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쉽게 무너지듯, 다리도 기초가 없으면 붕괴됩니다. 기초가 의미하는 것은 신뢰입니다. 신뢰가 없다면 관계는 쉽게 무너집니다.

둘째는 기둥(pillar)입니다. 기둥은 무게를 떠받치고 양쪽을 연결해 주는 버팀목입니다. 기둥은 다리의 안정성과 지탱을 담당합니다. 기둥이 의미하는 것은 존중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길 때 관계가 지탱됩니다. 존중이 기둥이 되어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지탱할 수 있습니다. 존중은 상대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귀한 존재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노리마츠선교사님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정체성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천국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셋째는 아치(arch)입니다. 아치는 다리의 양쪽을 연결해 주는 구조입니다. 건축 용어로는 ‘보(梁, Beam)’라는 구조물입니다. 보(梁)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가로로 걸쳐져 무게를 지탱하고 힘을 분산시키는 구조물입니다. 집에서는 천장과 지붕을, 다리에서는 노면(路面)을 받쳐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치는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가로대입니다. 무거운 짐을 함께 지는 나눔의 상징입니다. 또한 아치가 의미하는 것이 공감(共感)입니다. 신뢰와 존중이 있어도 공감이 없다면 연결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공감은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롬 12:15).

넷째는 노면(deck)입니다. 노면은 길의 표면입니다. 다리 위에서 사람이나 차량이 실제로 지나가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어쩌면 다리의 역할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면은 사람들이 실제로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노면이 깔리지 않은 다리는 아무리 기초와 기둥과 아치가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면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길이 되어 주기 위해 밟히고 또 밟히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다리가 되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이를 연결시켜 주시는 다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은 우리가 다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막힌 담을 헐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다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무너진 다리를 회복시키길 원하십니다. 무명의 선교사님들처럼 우리도 이제 다리가 되어 많은 영혼을 구원하길 소원합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