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연례적으로 작성해 온 '북한 인권보고서' 발간 중단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정치권과 인권단체들의 반발이 확산하자 올해 보고서를 작성하되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하지만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19일 올해 '북한 인권보고서'를 작성은 하되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공개, 비난 위주의 공세적, 대결적 북한 인권 정책이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다만 "북한인권실태보고서 결과는 내부 자료로 계속 생산관리해 법률에 따라 법무부에 이관 보존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볼 때 그동안 논란을 부른 보고서 작성 중단 계획이 검토 단계에서 철회됐음을 시사했다. 

통일부가 올해 '북한 인권보고서' 발간 중단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인권단체들로부터 비난과 질책이 쏟아졌다. 그러자 통일부는 보고서에 추가할 내용이 많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다가 논란이 커지자 보고서를 작성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입장을 바꾼 거다. 그러고 나서 이번엔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가 매년 작성해 온 '북한 인권보고서'는 주로 북한 주민의 인권 침해 실태와 관련 탈북민의 증언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를 문재인 정부 때는 3급 비밀로 지정해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으나 지난 2023년 윤석열 정부 때부터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국제사회에까지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참혹한 인권 피해 실상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런 '북한 인권보고서'를 통일부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다시 비공개로 전환하기로 한 거다. 엄밀히 말해서 아예 보고서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다가 인권단체들이 '북한인권법'에 조사·보관·발간 의무 조항을 문제 삼자 결국 비공개 방침으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고 나서도 "보고서 공개가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를 대고 있으나 실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일 거다. 

통일부가 정권이 바뀌자 보고서 발간을 중단하려다 작성은 하되 비공개로 전환하기로 방침을 바꾼 건 당장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궁극적으론 북한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북전단지 살포 금지, 대북확성기 철거, 대북 방송 중단 조치 등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모든 대북조치는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새 정부의 의지와 연결돼 있다. 이런 노력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로 본 거다. 그런데 새 정부가 아무리 남북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더라도 북한 주민이 당하는 인권 피해 문제까지 정치적 패키지로 묶는 건 곤란하다. 

미 국무부는 지난 12일 공개한 연례 국가별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이 사형, 학대, 강제 실종, 집단 처벌을 포함한 만행과 강압을 통해 북한 주민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주민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낱낱이 기록해 역사에 남기려는 거다. 그런데 정작 통일을 지향하는 부서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그 흔적마저 지우려는 걸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통일부가 정권의 색깔에 따라 공개와 비공개를 반복하고 있는 건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스스로 결함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인권단체가 그럴 거면 통일부가 맡은 북한 인권 기록 보존 업무를 법무부로 이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최근 주간조선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상황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가 진영 대립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또 통일부가 정권 입맛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근본 이유에 대해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을 주 업무로 하는 통일부에게 북한 인권 문제는 껄끄러운 주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권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지 않으려면 북한 인권 기록 보존 업무를 법무부로 이관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제안했다. 

북한 인권단체들도 윤 소장의 생각과 결이 같다. 통일부가 북한 인권보고서를 극소수만 열람할 수 있게 비공개로 할 바엔 법무부로 관련 업무를 이관해 국제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알다시피 북한은 지구상에서 인권이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다. 김일성 3대 세습 정권의 사유물로 취급된 지 오랜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 실상을 전 세계 알리는 건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에 속한다. 

하지만 그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이런 보편타당한 인권 문제를 외면한 채 '북한 인권보고서'가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 같지 않은 핑계만 늘어놓고 있다. 전문가들이 '북한 인권보고서'가 공개된 후 UN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한 덕분에 고문과 가혹 행위 수준이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해도 귀를 닫은 채 인권 문제까지 정치적 논리에 맡기려 하니 비난이 쏟아지는 거다. 

윤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북한 인권은 결코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는 안 될 문제"라고 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한을 박탈당하고 마치 노예와도 같은 삶을 사는 북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지속 가능한 기록 보존과 피해자 구제, 가해자 책임 규명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인 새 정부에서 북한 김정은을 자극하는 '북한 인권보고서'는 예민한 사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껄끄럽다고 뭉개려 할 게 아니라 관련 업무를 법무부로 이관하는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권을 내세우는 민주당 정부라면 훗날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 북한 주민들에게 최소한의 할 도리를 했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