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 북한 송환을 요구해 온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씨가 지난 20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가겠다며 파주시 통일대교 진입을 시도하다 군 당국에 의해 제지됐다. 정부는 안 씨의 북송을 성사시키기 위해 인도적 차원의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나 북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북송을 희망한 생존 비전향장기수는 안 씨를 비롯해 모두 6명이다. 이들은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이어 20일 오전엔 '북한송환추진단' 일행과 함께 통일대교 남단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민통선평화교회 이적 목사 등의 부축으로 통일대교에 도착한 안 씨는 인공기를 펼쳐들고 북 송환을 요구하다 결국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안 씨는 인천 강화도 출신으로 북한 태생이 아니다. 하지만 6·25전쟁 때 북한 인민군에 입대한 뒤 남파됐다가 1953년 4월 체포돼 이적죄로 42년간 복역하고 1995년 8월15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으나 "남한에 남아 미군 철수 투쟁을 하겠다"며 송환을 거부했다.
그랬던 안 씨가 최근 정부에 자신의 북송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건 95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북에 가서 생을 마치고 싶은 바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노인의 마지막 소원을 막을 이유는 없기에 인도적 차원에서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을 것이다.
다만 북이 우리 정부의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응해 판문점에 나올지는 미지수다. 만에 하나 나온다면 정부가 바라는 남북의 대화채널이 복원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정부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여러 가지 상황과 변수를 고려할 때 북한이 안 씨 등의 북송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북한 전문가들은 안 씨가 비전향 장기수로 오랜 기간 복역한 후 남한에서 미군 철수운동을 하는 등 북한 입장에서 내세울 공로가 있지만 그렇다고 북이 95세 노인을 데려다가 정치적 선전도구로 쓰기엔 활용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안 씨가 북한 땅에 묻히고 싶은 단 한 가지 소망 때문에 북송을 희망하는 것이라면 북한에서 그를 받아줄 이유는 더더욱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0년만 해도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적극적이었다. 당시에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돌아간 이인모 씨를 비롯해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는 평양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을 곧바로 남한을 비방하고 북 체제를 찬양하는 정치적 선전도구로 활용됐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TV에 출연한 비전향 장기수들은 "남조선 거리에 장군님이 입으신 잠바가 대유행하고, 남조선 청년 학생들 사이에서 장군님을 흠모해 장군님의 영상을 가슴에 모시고 사진을 찍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 받는다"고 말하는 등 하나같이 남한 현실과 동떨어진 증언을 했다.
2000년에 북송된 사람들이 북의 정치 선동 기구로 활용됐듯이 안 씨와 6명의 비전향 장기수들도 북에 돌아간다면 똑같은 일에 동원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북한은 2000년대 초반의 북한과 완전히 다른 체제라라는 점에서 북송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그때는 북으로 돌아온 비전향 장기수들을 이용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지만 지금 김정은 체제는 그때와는 다르다는 거다. 오히려 북한 주민들이 수십 년이나 전향을 하지 않은 사람을 살려서 북으로 돌려보낸 남한 사회를 더욱 동경하게 될까봐 걱정할 거란 거다.
그런 추정이 가능한 건 북한이 지난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선언한 이후 과거와는 다른 정책을 내세우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북은 헌법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제 북이 안 씨를 통일 투사로 추켜세우는 자체가 어색해졌다. 안 씨를 데려다가 선전으로 쓰려고 해도 '통일'을 위해 싸운 이력을 빼곤 내세울게 없으니 선전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안 씨는 정부에 북송을 요구하며 자신에게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얼마 안 남은 인생 이제는 동지들 곁에서 보낼 수 있도록 북으로 보내 달라"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보다 먼저 북에 돌아간 동지들이 북에서 어떤 일에 동원됐는지 알고 있다면 차마 그런 말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안 씨가 그들과 함께 북송됐다면 그들처럼 TV에 나와 앵무새처럼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는 꼭두각시 노릇을 했을 테니 말이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 북한을 추종하는 반체제 인사라도 법에 의해 형기를 마치면 사상과 신념을 꺾는 강제 행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은 반체제 인사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다. 수십 년을 복역하고 출옥해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남한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처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응하든 응하지 않던 정부는 안 씨를 비롯한 6명의 비전향 정기수를 그들의 요구대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설령 북이 끝끝내 응하지 않아 판문점에 갔다고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자신들이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가슴 깊이 추앙한 북한이란 조국이 자신들을 거부하는 현실을 스스로 깨닫게 해줄 필요 또한 있다.
만에 하나 북한이 이들 송환에 응한다면 우리 정부는 북한이 11년째 강제 억류하고 있는 김정국·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6명의 한국인에 대한 인도적 송환을 반드시 요구해야 할 것이다. 이전 기회에 6명의 비전향 장기수 북송과 함께 6명의 북 억류 한국인 송환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인도주의와 상호주의 실천 사례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