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유대인’이라고 하면 누구나가 떠올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천재.’ 바로 이 단어다. 이유는 뭘까?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 중 약 0.2%(약 1,500만 명)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수는 22%나 되고, 물리학(아인슈타인), 심리학(프로이트), 정치학(키신저), 경제학(밀턴 프리드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IT·금융·예술 분야의 창의적 인물들(마크 저커버그, 스티븐 스필버그, 빌 게이츠 등)도 모두 유대계이다.

 

[2] 과연 유대인은 천재가 맞을까? ‘천재’임을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는 ‘IQ’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IQ는 유대인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걸까? 아니다. IQ로 말하면, 우리 한국인이 세계 최상위급이다. 한국인의 평균 IQ는 ‘106’이고, 유대인의 평균 IQ는 ‘92’로 한국인이 유대인에 비해 14나 많다. 그런데 어떻게 제대로 된 노벨상을 받은 게 하나뿐인 한국인에 비해서 유대인은 그렇게나 많은 노벨상을 수상했을까?

[3] 전문가들은 그 비결을 ‘독서’라고 한다. IQ가 중요한 건 아니고, 독서가 사람을 천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에게 쌓인 독서량과 독서력이 그 사람의 IQ를 활용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의 천재성은 타고난 머리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게 만드는 문화와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4] 유대 사회에서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이자 ‘생존 전략’이었다.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며 소수 민족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땅과 군사력은 미약하지만, 지식과 지혜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제1호 재산이었다. 그래서 가정마다 성경과 탈무드와 책이 있었고, 부모는 자녀에게 돈보다 책을 먼저 유산으로 물려주곤 했다.
특히 유대인의 교육법은 단순 암기가 아니라 ‘탈무드식 토론 중심’이다.

[5] 한 구절을 읽고 그것을 해석하며,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생각을 부딪치게 해서 보다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양질의 사고를 습득하게 한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사고력을 확장시키는 ‘하브루타 교육’이 유대인의 독창적인 교육 방법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유대인에게는 ‘논리력, 창의력, 상상력, 통찰력, 문해력, 비판적 사고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6] 이렇게 다져진 두뇌는 비록 평균 IQ 수치상 그들이 한국인의 그것보다 낮더라도, 실전에서 발휘되는 사고력의 질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평균 IQ가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방식이 주입식과 입시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지식의 양은 많지만, 그것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훈련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7] 그래서 국제 학술 무대나 노벨상처럼 창의성과 독창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성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차이는 IQ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그 IQ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많이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유대인은 독서를 통해 두뇌를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생각하는 습관을 평생 유지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높은 지능을 타고났음에도, 활용하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8]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IQ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처럼 독서와 토론을 생활화하여 지적 잠재력을 현실의 성취로 연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만 많이 하면 만사가 다 O.K일까?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돌프 히틀러가 의외로 어마어마한 ‘독서광’ 이었음을 아는가? 20대 초반 빈에서 가난과 무명 속을 전전하던 그는, 당시 가진 것이라곤 고작 다락방 월세와 식량값 정도였다.

[9] 그러나 그가 가장 아낌없이 투자한 것은 책이었다. 그의 동료였던 아우구스트 쿠비체크 (August Kubizek)의 회고에 따르면, 히틀러는 하루에 1~2권씩 책을 읽어치우며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히틀러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방대했다. 역사, 철학, 건축, 예술, 군사 전략, 민족주의 이론 등. 그러나 특히 그를 사로잡은 것은 ‘반유대주의 사상’과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였다.

[10] 그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과 게르만 신화를 숭배했고, 프리드리히 니체,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였다. 또한 ‘인종 위생’과 ‘우생학’을 주장하는 책들을 탐독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점점 극단적인 방향으로 세워 갔다. 그의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권력과 정책의 설계도로 변했다. 수천 권의 책을 모아놓은 개인 도서관은 그의 사상적 토대이자, 훗날 나치 독일의 참극을 낳은 정신적 무기고였다.

[11] 역사학자들은 그의 사례를 두고 “독서는 도구일 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사람을 만든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히틀러의 삶은 역설을 보여준다. 책은 사람을 자유인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편향된 독서와 왜곡된 해석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그가 책을 읽으며 길러낸 것은 지혜가 아니라, ‘편견과 증오’였다. 그 결과, 수천만 명이 희생되는 전쟁과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의 오점을 인류 역사에 남기고 말았다.

[12] 오늘날 우리는 유대인의 독서력과 히틀러의 독서 편력을 본보기와 경계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많이 읽는 것보다, 무엇을 읽고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잘못된 사상과 잘못된 열정은, 오히려 무지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소화해서 반응하느냐’가 ‘독서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유대인처럼 양서들만 골라서 읽고 선한 영향을 많이 끼치는 삶이 중요하다.

[13] 하지만 그 유대인들에게도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구약성경만 알고 신약성경은 무시해왔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권이다. 한 권만 갖고는 구원에 이르기가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 있는 독서는 세상적으론 부와 명예와 존경을 얻을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에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 수많은 양서들과 함께, 책 중 책인 ‘성경 말씀 읽기’에 최대한의 관심을 집중함이 최고의 지혜요 복이 됨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