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 50여 년간 운영해온 대북 라디오·TV 방송을 전면 중단한 것을 두고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저버린 행위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방송을 접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자유세계 소식에 눈 뜨게 됐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이 쏟아지는 마당에 이를 중단했다는 건 북한 주민이 숨 쉴 유일한 외부 통로를 빼앗은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23일 국정원의 대북 라디오·TV 방송 전면 중단에 대해 "북한이 선제 조치를 취해서 우리도 조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지난해 1월 대남 방송 송출을 중단해 이에 따른 대응 조치 차원이란 거다.
그런데 이런 설명 자체가 궁색해 보인다. 북한이 대남방송을 중단한 시기는 지난해 1월 무렵으로 북한 김정은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다. 더 이상 남한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뜻에서 중단한 것이지 관계개선을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다.
방송의 내용과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국정원의 대북 방송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주목적이다. 대북 전단의 경우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있어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대북방송은 대한민국의 실상을 가감 없이 전달해 북한 주민들이 방송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북한의 대남 방송은 김씨 일가에 대한 찬양과 체제 선전 일색이었다. 한국 정치·사회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 데다 남파 간첩을 대상으로 한 난수 방송 기능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대남 선동 방송과 북한 주민에게 외부 소식을 알리는 대북 방송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순 없다.
국정원이 북한 전역을 청취권으로 대북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건 지난 1973년이다. 그 이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남북 대화가 활발하던 시기에도 중단된 적이 없다. 이는 대북방송이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성격이 아니란 걸 입증한다. 이런 대북방송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중단해야만 하는 중대한 사유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들 중 상당수가 이 대북 방송을 통해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자유세계 소식에 눈을 떴다고 한다. 대북 방송이 탈북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됐다는 거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 주민에게 인도적인 정보 전달하는 전파를 차단했다는 북한 주민의 알 권리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이건 여태껏 이런 가능을 담당해온 국정원의 향후 방향성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는 대북 방송 중단과 관련해 사전에 북한과 교감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이 요구하지도 않는데 우리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건데 그렇다면 김정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이런 조치를 내렸다는 말인가.
대북 방송 중단과 관련해 일각에선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증진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온 국가적 책무를 저버린 동시에 헌법 위반이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과 올바른 북한인권법과 통일을 위한 시민모임 등은 지난 23일 국가정보원의 대북 방송 중단 조치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대북 단체들의 표현의 자유, 직업 수행의 자유, 평화통일 추진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과 대북전단지 살포 금지 조치에 이어 대북방송까지 중단한 배경은 현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목표 하나로 모인다. 하지만 남북 화해와 관계개선의 지향점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아해 하고 그 속내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북이 비핵화를 선언하고 대화의 장으로 걸어 나올 거라 보나. 그런 확신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북한에 비위 맞추는 건 문재인 정부 때도 경험했듯이 부질없는 일이다.
북한 김정은과 대화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 목적이라도 북 주민들의 유일한 희망인 외부 소식통로를 끊는 비인도적 접근법을 써선 안 된다는 거다. 만약 그런 방법으로 남북 화해, 관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그건 북한 주민의 희망을 저버리고 3대 세습독재체제를 승인해주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마당에 통일부가 한 술 더 뜨고 나섰다. 지금까지 특수하게 분류하던 만화, 영화 등 북한 자료 제한을 푸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는 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북한 당국이 만든 문화 콘텐츠라는 것이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3부자 체제 선전물들이다.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이 담겨있지 않은 게 없는데 이걸 풀겠다는 건 정부 차원에서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 갑자기 친북 성향으로 돌아선 듯한 통일부의 행보에 교계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25일 발표한 논평에서 통일부의 발상을 "북한 체제 선전물들에 대한 무장해제"라고 비판했다. "북한에서 제작된 문화 콘텐츠는 1인 지배 체제 하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에 부합되도록 제작된 것들"이라며 "이런 체제선전용 자료들이 학교로 흘러 들어가 아이들에게 학습용으로 이용된다면, 그 폐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 정부 들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다각도의 방안을 검토하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체제에 비위맞추는 식의 일방통행은 곤란하다. 인도적인 대북방송을 중단하고,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시키면서, 3부자 체제 선전물에 불과한 북한의 문화 콘텐츠를 개방하려는 건 무슨 의도인가.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질식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 국민에게 북한 체제를 주입시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게 만드는 악수(惡手)를 둬선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