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희인 작가의 『여행자의 독서』란 책에 있는 한 문장이 내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독서와 여행은 겉보기에 전혀 다른 행위지만, 둘 다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넘어서려는 갈망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본다.
[2] 독서는 눈과 마음으로 떠나는 여정이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지금 여기서도 과거의 사건과 인물,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 셰익스피어의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뜻대로 하세요』 등을 읽으며, 책상 앞에서 영국의 무대를 거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영국이라는 땅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3] 매년 여름, 영국을 찾는 발걸음은 단순한 유람이 아니다. 성경 속 장소와 기독교 유적지를 직접 확인하며, 책에서 알게 된 것들을 몸으로 읽는 시간이긴 하지만, 조만간 영문학자들의 흔적도 찾아서 떠나고자 한다. 영문학자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는, 영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성경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6세기의 셰익스피어 무대를 거닐고, 경험하는 묘미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4] 독서만으로는 다 알 수 없던 현장의 감동이 밀려옴을 맛보라. 독서는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동시에,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책 속 인물의 기쁨과 슬픔, 갈등과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나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실제 독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독서는 나 아닌 타인의 언어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훈련이자,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지적 순례의 길이다.
[5] 비록 동적이 아닌 정적인 자세인 듯하지만, 독서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현장 깊숙한 곳을 찾아다니는 역동적인 여행이다.
반대로 여행은 실제의 현장을 발로 밟고 다니면서 읽는 독서라 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독서를 통해 미리 현장 속을 탐구하고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 선지식 없이 떠나는 것과 풍부한 지식을 익힌 후 떠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6] 현장을 밟지 않은 독서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책으로 많은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곳을 직접 걸어보지 않으면 정치와 경제와 문화, 음식, 그리고 음악과 예술과 사람의 숨결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바다, 하늘 높이 솟은 산을 마주할 때 인간은 스스로 얼마나 작고 유한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7] 성경을 읽고, 성지와 기독교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몸으로 체험한 바가 있다.
성경을 백 번 읽었다 해도, 그 속에 나오는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않았다면 자신의 지식에 한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스라엘, 그리스, 튀르키예, 요르단, 이집트, 스코틀랜드, 영국’ 등지의 현장을 다녀보며 깨달은 바가 작지 않다.
[8] 광야가 어떤 곳인지, 들에 피는 백합화가 어떤 색인지, 요단강은 건너편과 얼마나 가까운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탄광촌의 어두운 갱도, 지하 90미터의 막장까지 내려가 보지 않고서는 18세기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가 설교할 때, 광부들의 시커먼 얼굴 아래로 흘러내린 하얀 눈물 자국의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
[9] 여행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다. ‘익숙한 세계를 넘어 낯선 진실을 만나는 일’, 그리고 ‘온몸으로 읽는 또 하나의 독서’다.
반면, 여행은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편견과 오해를 깨뜨려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온 ‘돌무화과나무와 합환채의 생김새,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의 의미가 책으로만 대해왔던 성경 지식이 얼마나 제한된 것인지를 제대로 깨우쳐준다.
[10] 책을 통한 지식은 쌓였지만, 현장 체험으로 확인한 증거가 부족해선 곤란하다. 그렇다. 현장은 독서의 깊이를 완성시킨다. 여행은 곧 상상의 나래에 옷을 입히는 독서이며, 세계를 온몸으로 읽는 행위이다.
독서는 여행을 갈망하게 하고, 여행은 독서의 필요를 일깨운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그 장소에 가보고 싶고, 낯선 땅을 밟다 보면 더 알고 싶어 책을 펼치게 된다.
[11] 독서가 사고의 지경을 넓히고, 여행이 삶의 반경을 넓힌다. 이 둘이 함께할 때, 우리는 단지 배우는 것을 넘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그래서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라고 말한 것이리라.
삶을 더 깊고 가치 있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비유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