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tGPT를 설교에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초창기엔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보수주의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반응이 꽤 달라졌다. 활용해서 얻는 유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깨야 한다. 빨리 깨면 깰수록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그렇다. ChatGPT를 활용하면 설교 한 편 작성하는데 적잖은 유익이 있다.
우선 설교문 준비하는데 필요한 많은 양의 유익한 자료들을 분초 단위로 빨리 찾아준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그 결과 설교문 작성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켜 주는 유익도 크다.
물론 ChatGPT를 사용함에 있어서 문제와 한계들이 분명 있다. 한 편의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해선 많은 땀과 수고와 열정이 필요하다. 우선 본문 정하는 일에서부터 본문을 읽고 분석하고 묵상해서 영양 만점의 핵심 메시지를 추출해야 한다.
본문 속에서 성도들의 영혼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한 문장을 캐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얻어낸 하나의 원석을 가지고 연마해서 진귀한 보석이 되도록 하는 작업 또한 필요하다. '원고 작성의 과정' 말이다. 그 과정에 설교자의 소중한 시간과 정성어린 땀과 열정과 기도가 요구된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한 편의 설교문이 완성된다. 그런데 그렇게 긴 고뇌와 진액을 짜는 과정 없이 AI를 통해 한 편의 설교문을 얻어냈다 생각해보라.
웬만큼의 양심 있는 설교자라면 그런 방식에 의해 초고속으로 만들어진 설교 원고를 죄스럽게 여기거나 꺼리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AI 사용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 편의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아무런 자료나 정보를 참조하지 않는 설교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설교자 대부분이 주석이나 설교집을 참조하고 있다. 설교자가 참조하고 도움받는다고 하는 '주석'이나 '책'이나 '설교집'은 어떤 것들인가?
저자가 아니라면 모든 자료들이 다 남의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처럼 남이 연구해서 만들어놓은 자료들은 가책 없이 잘 활용하면서도, 정작 가장 도움이 되고 유익한 자료들 활용은 거부한다면 말이 되질 않는다. AI가 만들어준 설교문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범죄라는 생각을 가진 이가 많다. 당연히 그대로 사용하는 건 '죄'요 '반칙'이다. 실제로 활용해 보면, AI가 만들어준 설교문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건 불가능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만큼 부실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은 짜깁기 하거나 수정 보완해야 한다.
나는 설교문을 작성할 때 다른 이들의 설교집을 참조하지 않는다. 교만해서가 아니라, 그런 자료들 없이도 독창적이고 질적으로 구별되는 설교문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기존에 나와 있는 AI 몇 개를 후배 교수로부터 소개받았다. 'ChatGPT'와 'Perplexity'와 'Google Gemini', 이 세 가지이다. 세 가지 프로그램의 특징이 조금씩 다르기에 각기 장점을 살려서 골고루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설교할 본문이 정해지면, 우선 그 본문의 내용을 원어에 맞게 번역한다. '사역'(私譯, Private Translation) 말이다. 그 사역한 본문을 여러 번에 걸쳐서 읽은 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한다. 그다음엔 도움이 되는 주석들을 참조해서 해석상에 문제가 없는지, 혹 내가 파악하지 못한 내용이 없는지를 살핀다.
그런 과정을 다 거친 후 본문이 말하고 있는 '원포인트의 핵심 메시지 한 문장'을 추출한다. 그뿐 아니라 성경 공부 교재까지 만들어놓는다. 언제 다시 그 본문을 다룰지 모르기 때문에 공들여 본문을 연구한 김에 아예 '질문과 답이 포함된 성경 공부 교재'까지 작성해 놓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본문을 가지고 세 가지 AI를 사용하여 본문 연구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눅 17:11-19절에 나오는 '열 명의 한센씨 병 환자'에 관한 본문이었다. 이미 연구해서 성경공부 교재까지 PPT로 만들어놓은 상태이다. 본문을 연구하고 파악할 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를 잘 활용하는 비결로 늘 언급되는 게 있다면 '질문 잘하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 본문 연구를 할 때도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대부분이 잘 모른다는 점이다. 질문 잘 던지는 게 실력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성경 본문을 보는 눈이 다르고, 파악력이 남다르다는 증거이다.
눅 17:11-19절 본문은 무지 어려운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렇기에 제대로 해석해서 설교하는 이를 잘 보질 못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예수께서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 하셨음에도 모두가 군소리 않고 믿음을 갖고 갔다는 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당신께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 환자 한 사람에게만 '그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머지 아홉 명의 믿음과 감사를 표시한 한 사람의 믿음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여기서 설교자들이 첫 번째 혼돈을 일으킨다. 아홉 명은 '예수님을 기적을 베푸는 분'(Miraclemaker)으로 믿은 반면, 한 명은 예수님을 '구세주'(Savior)로 믿었음을 놓치지 말라.
두번째는 한 사람과 아홉 명의 차이를 대부분이 '감사의 차이'로 본다는 점이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에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 사람과 아홉 명의 근본적인 차이는 감사에 있지 않다. '하나님께 영광 돌림'에 진짜 차이가 있다. 예수님께 병 고침 받고 그분께 감사를 표하러 가면서 어째서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린 것일까? 그것은 그 한 사람만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에 관해서 AI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물론 내가 원하는 '최상의 답'은 얻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고의 질문을 던졌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주진 못했기 때문이다. AI를 활용하더라도 결국은 AI조차 답할 수 없는 최고의 실력을 갖추는 일이 절실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AI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내 생각에 살을 붙여주거나, 내 생각이 전혀 미치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는 소중한 역할도 톡톡히 했다.
세계 최고 수준에 있는 실력자가 5년간 할 수 있는 작업을 AI는 순식간에 해치운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 AI를 잘 활용하는 실력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것이다. 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AI를 해로운 존재로 보고 활용하지 않으면,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