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기니. 세계 10대 빈국 중 하나이며, 90% 이상이 이슬람을 믿는 땅이다. 그곳 한복판에 태극기를 걸고, 특공무술을 가르치며 교회를 세운 한국인이 있다. 바로 장로교 대신측 파송 선교사인 앙드레 손 선교사다. 그는 지난 25년 가까운 세월을 이슬람 땅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왔다. 말라리아에 12번이나 걸렸고, 도복 한 벌과 성경 한 권으로 시작된 그의 선교는 지금 기니의 선교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복음이 없는 곳,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세네갈에 갔더니 선교사가 80명이나 모여 있더라고요. ‘선교사가 없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기니가 없대요. 그 자리에서 바로 기니로 향했습니다”

2010년, 앙드레 선교사는 그렇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아브라함처럼 떠났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첫날, 잘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잠을 해결해야 했다. 물도, 전기도, 사람도 없던 땅.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던 것은 가방 속 도복과 성경 한 권. 그리고 “날이 밝으면 도복을 입고 활동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성도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하나님과 대화도 하고 영적인 소통을 해서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과정이 있어야 되겠다라는 것을 느꼈어요. 이런 영적인 경험이 성도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는 태권도 도복을 입고 태양 아래에 섰다. 처음 보는 동양인, 흰 도복을 입은 모습에 마을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어느새 그는 그 마을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저희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몰려왔어요. 손을 잡고, 인사하고. 근데 손에서 냄새가 나더라고요. 화장실에 물이 없으니 손으로 대충 더러운 물에 닦고 그냥 나에게 온거에요. 그래도 그 아이들을 하나님 사랑으로 안아주며 태권도를 가르쳤죠”

특공무술, 경찰학교, 태극기… 그리고 복음

앙드레 손 선교사는 ‘스포츠 전문 선교사’로 태권도, 합기도, 특공무술, 음악까지 다양한 무술과 예술을 도구로 복음을 전한다. 특별히 그가 가르친 대상은 놀랍게도 현지 경찰 특공대였다.

앙드레 손
(Photo : ) 기니 현지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는 앙드레 손 선교사

“기니엔 한국 대사관도 없고, 완전 변방이었죠. 근데 하나님이 문을 여셨어요. 한 경찰이 ‘우리 동생이 태권도 배우는데 너무 좋아한다’며 저를 경찰 부대로 초청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가 가르치기 시작한 부대는 바로 국가 주요시설을 지키는 기니의 ‘1번 특공부대’. 이후 경찰학교의 정식 과목으로 특공무술이 채택되었고, 전국 29개 특공부대를 차례로 순회하며 훈련을 맡게 되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요나의 배가 풍랑을 만나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데, 요나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내가 이 십자가를 지고 뛰어내리겠다"며 희생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부름받은 사명을 감당해 믿음으로 뛰어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셨다라는 거에요"

“제가 경찰 부대에 가면 전 부대원이 줄을 서서 맞이했어요. 한국에서 왔다고 태극기를 걸었죠.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 순간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현실이 되었음을 느꼈어요.”

“교회 없는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선교입니다”

앙드레 선교사는 단지 체육 교육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핵심 사역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6~7년의 인내 끝에 교회가 세워졌고, 이후 또 하나의 교회도 세워졌다.

“교회는 복음의 구심점이에요. 영적 도장입니다. 교회 없이 선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교회가 있어야 예배가 있고, 훈련이 있고, 거기서 성도들이 세워지는 거죠.”

앙드레 손
(Photo : ) 기니 현지에서 무술을 가르치고 있는 앙드레 손 선교사

"그곳에 알카이다, 보코하람 등 테러단체들이 있기 때문에 특공대들이 정신차리고 훈련해야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복음을 살짝 전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가 바이블이라고 말이죠. 현지 언어 노래를 배워 부르면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고 마음이 열릴 때 예수님을 전합니다"

기니 현지에선 장로교 교회가 전무했다. 그는 최초로 기니에 장로교회를 세운 선교사로서 선교사의 ‘특공대 정신’으로 버티고 견뎠다.

학교와 복음, 전략적 선교

“도장을 먼저 짓고, 학교를 세우자 했어요. 교회 허가가 어려우니까 학교를 통해 들어간 거죠.”

기니 정부로부터 학교 허가를 먼저 받고 이어 교회 설립까지 허가를 받았다. 영어, 수학, 한글 교육을 기본으로 하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를 함께했다. 처음부터 ‘이곳은 크리스천 학교’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무술을 배운 경찰들의 도움으로 선교 역사가 이곳에 크게 일어났다고 고백한다.

그는 선교지에서 많은 생명의 위기를 넘겼다. 말라리아에만 12번 걸렸다. 눈과 어깨, 발은 운동과 격파, 훈련으로 인해 손상되었다. 미국에 잠시 들어온 것도 그 후유증 치료를 위해서였다.

지금도 이어지는 선교

현재 그는 미국에서 집회를 인도하며 기니 선교 후원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미주 대신 세계선교총회 강사로 섬겼다.

그는 지금도 웨스턴 유니언을 통해 기니에 매달 지원 받은 금액 300~400불씩을 보내고 있다. 말라리아에 걸린 친구들에게 한 사람당 20불이면 나을수 있는 치료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앙드레 손 선교사의 발걸음은 태권도 발차기보다 강했고, 그의 무기는 검이나 총이 아닌 성경과 도복 한 벌이었다. 선교사가 한 명도 없던 기니 땅에 두 개의 교회와 하나의 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예정하신 역사가 일어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에요. 저는 선교는 요나같은 심정을 가지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선교사로서 ABCD를 완벽하게 하나님이 하도록 내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