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설교 중에, 아버님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해 드리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들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아버님의 힘찬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이 것 저 것 여쭈어 보다가 끝내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아내에게 수화기를 넘겨주었습니다. 아내는 한 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아버님, 그런데요, 아범이 뭔가 드릴 말씀을 아직 드리지 않았거든요. 전화 끊지 마시고 기다리세요. 그리고 아버님, 사랑해요”라고 말하고는 제게 수화기를 넘겨주는 겁니다.

아버님은 “무슨 말이냐?”라고 물으십니다. 저는 궁지에 몰려 결국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 평생 사랑한다는 말씀을 못 했는데, 그 말씀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순간, 울컥 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아버님은 “그래! 니 엄마 바꿔주께”라고 말씀하시면서 서둘러 통화를 끝내십니다. 아버님도 같은 감정이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들인가? 애들, 잘 지내고? 교회, 잘 부흥되지?”라고 물으십니다. 저는 “예, 다 잘 지내고, 교회도 평안혀요”(저는 어머니와 대화할 때면 어릴 적 사투리로 돌아갑니다)라고 답하고는, “어머니, 사랑헤유”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나두 사랑허네!”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안녕히 계셔유~”라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아내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훌쩍거립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양파 때문에 매워서 그렇다고 합니다. 애꿎게 양파만 또 억울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한참 만에 가슴 울렁임을 진정시켰습니다. 덕분에, 그 날 저녁 식탁은 천상의 식탁이 되었습니다.

어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때로,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속히 치유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정에 있는 분들도 아버지를 용서하고 끌어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고 끌어안지 못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심리적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한 번 깊이 생각하시고 용기를 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님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해 드리기에 때가 이미 너무 늦어버린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애석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분들은 그 마음을 기도로써 하나님께 올려 드리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빚을 살아있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갚으면서 살면 될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퇴색하고 오염되었지만, 여전히 사랑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말의 ‘사람’과 ‘사랑’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삶’도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사랑하는 존재요, 사랑하는 것이 사람의 삶이요,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가 참 사람이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참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고 사랑합니다.